바르셀로나에서 소매치기를 만났을 때
다들 그러더라 바르셀로나에서 소매치기 조심하라고.
"아빠, 여기서 한국처럼 다니면 안 돼. 소매치기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가져가버릴 거야."
중요한 물건. 여권, 현금, 카드 등은 모두 복대를 차고 다니기로 했어.
도착한 첫날. 긴장감을 안고 잘 다녔지.
둘째 날 아빠가 미쳐 챙겨 오지 못한 슬리퍼를 사고, 아주 아주 많이 걸은 날이었어.
광장에 앉아서 비눗방울 공연도 보면서 간식도 먹고 버스킹도 구경하면서 세상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
오렌지도 까먹고 우리의 사랑 호밀빵도 먹으면서 아빠는 사진 삼매경에 빠졌고, 내가 카메라를 잘 챙기라고 했지.
한 시간쯤 앉아있었을 거야. 성당을 마주 보고 다들 간식도 먹고 여유롭게 앉아있어서 우리도 거기에 오래 앉아있었지.
내 옆에 슬리퍼를 넣은 종이백을 내려두고, 종이백 위에 아빠의 작은 가방을 올려두었어.
그때 등 뒤에서 손이 쑥 나오더니, 쇼핑백에 얹어진 아빠의 작은 손가방을 훅 낚아 채 가는 거야.
바로 이거 소매치기다 싶어 어!! 소리를 지르고 바로 뒤를 돌아봤어. 어떤 젊은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는 거야. 다들 이런 상황에 어떻게 할 것 같아? 나는 정말 바로 뛰쳐나가려고 했어.
그때, 아빠가 "왜 왜!" 하면서 내가 뛰어가니까 "어디가! 안돼!"라고 외치는 거야.
"아빠 가방 소매치기 당했어! 저기 내가 따라가면 잡을 수 있는데!"
"깜짝 놀랐네에. 가져가버렸어? 그래도 중요한 게 있어도 절대 따라가지 마잉?"
내가 소리 질러서 아빠는 너무 놀랐던 거지. 갑자기 아빠 두고 따라가려고 하니. 여행 둘째 날이니 얼마나 무섭겠어. 다행히 준비를 단디 해놔서 가방에는 중요한 건 하나도 없었어. 고작 치약, 휴지, 작은 보조배터리 정도가 들어있었지. 아마 그 소매치기는 허탈했을 거야. 누가 봐도 여권이나 지갑이 들어있을 것 같은 보조가방이었는데. 안일한 아시아인 2명이 정신 놓고 있구나 싶었겠지.
나는 정말 따라가고 싶었는데 아빠는 그 사람이 칼이나 흉기를 들고 있을 수도 있으니 아무리 중요한 게 있어도 그냥 놓아버리라는 거야. 나는 아직 세상 무서운 지 모르나 봐. 정말 바로 쫓아가고 싶었거든.
바꿔서 생각해 보니 내가 아빠였어도 무서웠을 것 같아. 아빠가 갑자기 날 두고 누구 쫓아간다고 하면 혼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겠지. 걱정되었을 거야.
인생도 이런 생각으로 살아야 하나 봐. 이미 내 손을 떠난 걸 죽기 살기로 쫓아갈 필요가 없지. Let it go. 놔주는 것도 배워야 하나 봐. 어쩌면 내가 오히려 이 계기로 아빠에게 이 인생의 진리를 배우게 되었어.
아빠는 눈 뜨고 코베인다는 유럽을 느꼈는지 그 이후로는 더 분리불안이 심해졌어. 그래도 다행히 내가 조심하라는 것들을 이제 피부로 느꼈는지 내 말에 절대 신뢰를 보내더라고.
10년 전 남동생과 첫 유럽여행 때도 한 개도 잃어버린 게 없었는데, 여행 이틀 만에 소매치기를 만나다니.
아무도 다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느끼면서 여행을 계속했어.
여권, 카드, 현금은 복대에 카메라는 항상 목에 걸고, 핸드폰도 주머니에 넣거나 손에 잘 잡고 있기.
명심하면서 여행 이틀차 놀란 가슴을 부여잡았어.
하지만 소매치기 이게 끝이 아니었다는 거.
세계 3대 소매치기 위험 도시. 바르셀로나, 파리, 로마 중 아직 로마 여행이 남아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