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eyee Jan 01. 2019

고마운 오징어

칼라마리 최고

산골의 해산물 식당은 아침이 분주하다.   그날그날 사용할 재료들을 매일 아침 냉동고에서 꺼내어 해동해야 하므로 무엇보다도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이곳에서 기대할 수 있는 신선한 해산물 이란 신선한 상태에서 급속 냉동된 해산물을 칭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중에도 새우와 오징어는 사용량이 많기 때문에 일찌감치 개수대 가득 흐르는 물에 담가진다.   해동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안치고 야채를 다듬고 소스를 채운다.    해동이 된 새우는 튀김용과 조리용으로 나눠 껍질을 벗기고 등에서 까만 실을 제거한다.   껍질이 덜 벗겨지거나 까만 실이 몸속에 남아 있을 경우 식감과 맛이 완전히 바뀌므로 빠르게 일처리를 하는 가운데에서도 하나하나 확인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오징어 역시 몸통 안의 이물질을 제거하고 안쪽에 칼집을 넣어 일정한 크기로 잘라 놓는다.   칼집을 넣을 때는 많이도 적게도 아닌 두께의 반 까지만 들어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재료의 손질이 끝나면 그날그날의 예약 손님 수에 따라 1인분씩 요리 재료들을 담는 것으로 영업준비가 끝나게 된다.


우리 가게 애피타이져 메뉴 중 대표 격인 칼라마리(Calamari)라는 음식이 있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오징어를 튀겨내는 지극히 단순한 요리이다.    칼라마리가 요리의 형식인지 오징어의 종류인지는 의견들이 다 다르다.   어쨌든 칼라마리는 오징어 튀김이다.   뜬금없이 칼라마리 얘기를 꺼내는 이유가 있다.   믿거나 말거나 이겠지만 우리 식당의 칼라마리는 내가 사는 캘거리에서는 베스트로 손꼽히는 명물이다.   그 집에 가면 그건 먹어 봐야 한다는 식의 소문이 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물론 내가 개발한 레시피는 아니고 가게의 전 전 주인 때부터 있었던 메뉴이고 난 그저 그대로 전수받은 것뿐이다.   어쨌든 우리 가게에 오는 손님들 대부분이 메뉴판도 볼 필요 없이 애피타이저로 오랜 전통의 이 칼라마리를 주문한다.   심지어 어떤 분들은 애피타이저로 칼라마리를 시키고 메인을 먹은 후 디저트로 다시 칼라마리를 시키기도 할 정도다.   오징어를 주인공으로 글을 쓰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은 없지만 우리 가게의 대표 해산물인 만큼 칼라마리를 빼고는 산골마을의 해산물 식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징어를 링처럼 썰어 튀기는 다른 가게들과 달리 우리는 칼집을 넣은 넉넉한 크기의 오징어를 튀겨내면서 동그랗게 말리는 모양을 만든다.   또한 튀김옷은 우리 가게 만의 비법이 깃들어 아주 가벼운 튀김을 만든다.   두껍지 않은 튀김옷 덕분에 입안에서 칼라마리의 바삭함과 쫀득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 준다.   적당히 간이 베인 오징어는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을 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칼라마리와 함께하는 소스이다.   흔히들 핫 소스라고 얘기하는 이것은 나름 미묘한 중독성을 지니는 우리 가게만의 독특한 소스이다.   단골들 중에는 매운 음식 애호가들이 많아 칼라마리를 소스에 찍는 것이 아니라 소스에 칼라마리를 말아먹다시피 하는  분들도 계시다.   간혹 캘거리에서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는 사람들이 소스 레시피를 가르쳐 달라는 부탁을 해올 때도 있는 것을 보면 분명 마법이 깃든 소스임에 틀림없다.   물론 소스는 영업비밀이므로 그런 분들께는 레시피 대신 이별 선물로 큰 통에 소스를 가득 담아 주고 떨어지면 다음에 다시 찾아오라고 한다.


내가 운영 중인 지금의 해산물 식당을 인수한지는 벌써 10년이 넘었다.   이민 와서 처음 몇 년간 가게를 렌트해서 장사를 하다 보니 건물주와의 분쟁이 잦았다.   하루하루 열심히 번 돈은 월 말이면 렌트비 명목으로 쏜살같이 빠져나갔다.   그 밖에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여러 가지 문제들 속에서 어떻게 해서든 내 소유의 가게를 갖겠다는 꿈을 꾸어왔었다.   때마침 이곳 차이나타운의 상가건물 안의 매장이 매물로 나왔고 우린 앞뒤 가릴 것 없이 계약을 하고 말았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었지만 그 당시의 나는 내 소유의 매장을 갖는 것이 지상과제였고 집을 담보로 끌어모을 수 있는 모든 자금을 마련하여 가게를 매입하게 되었다.   

인수 과정에서 가게의 전 주인과는  이런저런 문제가 얽혀 마음고생을 꾀나 했으나 결국 나는 가게의 소유주가 되었다.   전 주인으로부터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몇 가지 메뉴의 레시피를 전수받았다.   처음에는 내가 원래 하고자 하는 메뉴가 어차피 메인이 될 거라는 위험한 생각에 트레이닝을 무시하려고 했었으나 혹시나 해서 배워둔 것이었다.    만약 그때 메뉴를 전수받지 않았다면 난 지금쯤 이미 망했거나 아주 힘든 상황에 직면했을 것이 틀림없다.    가게를 인수하고 나름 내가 해오던  메뉴를 전면에 내세우며 문을 열었으나, 가게를 찾는 손님들의 90% 이상이 메뉴판 자체를 보려고 하지 않았다.   가게의 첫 주인 때부터 줄곧 제공해오던 그 메뉴들, 그중에서도 결코 빠져서는 안 되는 칼라마리가 그것이었다.


식당을 해오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손님들이 그 식당 하면 떠올리는 메뉴를 가지는 것은 식당의 승패를 가를 정도로 중요하다.   그 메뉴야말로 손님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언제든 그들의 식욕을 자극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러한 대표 메뉴가 없을 경우 이 가게에 콩나물이 없으면 다른 가게에서 콩나물을 사듯 그냥 배고플 때 찾아가는 음식점에 지나지 않게 된다.    우리 가게는 내가 인수하기 전에도 이미 30년 정도의 전통이 있는 가게이고 그 30년 동안 어떤 식 으로든 손님들 입맛에 각인된 메뉴는 내가 보존해야 할 최우선 순위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런저런 일로 전 주인과는 안 좋은 인수인계가 이루어졌지만 지금은 그들이 쌓아놓은 성 안에서 누릴 수 있는 보물에 감사하고 있다.


아무래도 단가가 센 해산물을 다루다 보니 가격이 비싸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일반적인

먹거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우리 가게는 문턱이 높다.    대부분의 단골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고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요리를 하는 우리 가게를 홍보해 주는 전령들이다.   그들이 

있어 어렵게나마 가게가 생존하고 있다.   따라서 언제 맛 보아도 일정한 품질의 칼라마리를 

유지하는 것이 가게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   오징어 소재의 신선도는 말할 것도 

없고 잘 섞인 튀김가루와 깨끗한 기름의 유지 등을 반복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분주한 아침 준비 시간 중 거의 반 이상은 오징어 손질과 그 밖의 준비에 할애되고 있다.   가게에서 사용하는 대만산 오징어는 육질이 쫄깃하면서도 부드럽게 끊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런치가 바쁜 날은 1시간 동안에 10Kg짜리 박스 하나가 전부 동이 난다.   칼라마리에 따라가는 핫 소스 역시 끊임없이 만들어 놓아야 하는 목록이다.   매운 음식이라면 어느 정도는 자신 있는 한국 사람인 내게도 상당히 매운 소스인데 아무렇지도 않게 그릇을 비우는 백인들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하얀 오징어튀김과 빨간 핫 소스, 이 홍백의 페스티벌에 힘입어 오늘도 가게 문을 자신 있게 연다.

이전 03화 모모 카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