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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yee Jan 07. 2019

"I am a Regular!"

단골손님 유지하기

가게를 하다 보면 단골이라는 고정고객이 생긴다.   고속도로 휴게소나 병원의 보호자 식당 같은 곳이 아닌 이상 식당은 단골들의 많고 적음에서 성패가 좌우될 정도로 중요하다.    그들은 우리 가게를 편안하게 왕래하는 그들만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   나 역시 내 머릿속에 아니면 내 습관 속에 자리 잡은 단골 식당이라는 곳이 있다.   내가 그 식당을 찾는 이유는 중독성 있는 국물 맛이다.   정말 그것 이외엔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사실 그것 이외엔 아무 바램도 없다.   허름한 테이블과 낮은 의자, 식욕과는 관계없는 식기들과 의미 불명의 메뉴판, 현금만을 고수하는 주인의 행패(?)와 주방에서 만든 음식을 만든 사람이 직접 가지고 나와 공급하는 서버의 부재 등 객관적으로는 지적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 그런 허름한 식당이다.   하지만 국물 맛이 보장되는 한 내게는 상관없다.    그리고 그 국물 맛은 카운터를 지키는 주인아주머니와 눈을 마주치면서 그 신뢰를 쌓아왔다.   만약 그 국물 맛이 변하는 날이 오면 난 그날로 뒤도 안 돌아보고 그 식당과 그 아주머니와의 관계를 끝내게 될 것이다.   따라서 단골 관계란 고마우면서도 철저한 약속 이행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 해산물 식당에도 단골들이 있다.   그들은 제각기 그들만의 이유나 사정으로 우리 가게를 찾는다.   그 이유 중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아이템은 아마도 우리 가게에서만 맛볼 수 있는 칼라마리 메뉴일 것이다.   가게 영업을 시작한 30여 년 전의 첫 오너 때부터 시작되어 나에게까지 전달된 메뉴이다.   그 맛은 오랜 세월을 이어 왔고 많은 고객들에게로 연결되어 왔다.   그리고 내가 처음 이 가게를 인수하면서 걱정했던 전통의 맛은 오래된 손님들의 평가로 그 동일함이 인정되었다.   수많은 고객들의 습관적인 입맛을 만족시키기 위한 전통의 유지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어쩌면 내게는 그런 아이템을 팔 수 있는 권리가 생긴 것이 무엇보다도 행운인 샘이다.   가게가 오래된 만큼 소위 말하는 단골층도 두껍다.   가게가 생긴 이래로 어느 일정 기간 동안 자주 찾다가 뜸해져 이제는 1년에 한 번이나 5년에 한 번 심지어 내가 인수를 한 후 한 번도 본 기억이 없는 손님들도 예전에 위치했던 자리를 화제로 삼으며 자신을 단골이라 소개한다.   그렇게 오랜 기간에 걸쳐 잊지 않고 아주 가끔씩 찾아주는 손님들이 있는 반면,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을 마치 출석부에 도장을 찍듯 들려주는 단골 중의 단골들이 있다.    물론 가게가 단골로만 운영될 수 있을 만큼 바쁘지 않기에 지금도 새로운 메뉴와 전략이 필요하다.   또한 오피스들이 즐비한 곳에 위치한 특수성 때문에 고객들의 유동이 주택가의 그것과 많이 다르고 일반적인 경기와 맞물리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결국 음식장사는 손님들 각각의 마음속에 우리 가게에 끌리는 무언가가 자리 잡게  하고 그런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면 가게가 자리를 잡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가게를 인수할 당시 이미 전 주인으로부터 소개받은 찰리라는 단골손님이 있다.   유명 석유 회사에 중역이었던 만큼 그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움직였고 이분에게 있어 식당이라는 곳은 우리 가게 이외엔 없는 것처럼 보이는 단골 중의 단골이다.   그분이 먹는 메뉴는 항상 똑같다.   그리고 오며 가며 던지는 농담도 언제나 똑같다.   “칼라마리 오징어 한 조각 더.. 알지?” “다음번엔 공짜로 주는 거지?”   나 역시 항상 같은 대답으로 마주하지만 그 짧지만 의미 있는 눈빛 교환이 오랜 세월 그를 단골 중의 단골로 자리매김했다.   주로 점심 고객들은 저녁에까지 찾아주는 일이 드물지만 찰리의 경우 저녁에도 일정한 간격으로 아내분과 함께 들리곤 한다.   영어가 짧은 나는 깊은 대화는 못 나누지만 가족들의 안부와 취미 생활, 여행 계획 등을 주제로 한참 동안 얘기를 주고받는다.   몇 년 전 회사에서의 파견으로 뉴질랜드에 1년간 떠나 있을 때는 무언가 많이 허전한 느낌이었고 지금은 사실 은퇴하여 점심때에 몰려오던 찰리의 군단들은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도 꾸준히 아내와 함께 우리 가게를 찾아주는 고마운 인연이다.


단골 이야기에는 셜리라는 아주머니도 빠질 수 없다.    그녀의 주변은 남편인 뢉 과 친구 쥴리, 그리고 쥴리의 남편과 셜리의 어머니 가 있다.   이분들 역시 메뉴가 필요 없다.   항상 같은 메뉴, 같은 와인을 같은 방법, 같은 타이밍에 서브한다.    가게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그들에게 있어서 우리 가게는 저녁시간을 보내는 최적의 장소인 것 같다.   그녀와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와인을 즐기기에 항상 재고가 떨어지지 않도록 준비해 둔다.   모임이 끝나고 돌아갈 때마다 오늘 음식은 최고였다며 찬사를 보내 준다.   정말 음식의 맛 인지, 취기가 오른 상태 인지,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 뒤의 기분 인지는 모르지만 그녀의 한마디 칭찬이 단골 관계를 이어주는 유일한 원동력이라 믿는다.   


직접 가게를 찾지 않고 항상 배달 주문을 시키는 카렌 씨도 단골 대열에서 빠질 수 없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항상 같은 메뉴를 주문하는 그녀의 얼굴을 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곳에선 배달 전문 회사가 있어 모든 주문은 그 회사로부터 인터넷 앱을 통해 들어오게 되어있다.   주문 아이템에는 고객의 특별한 요구 사항 등을 기재할 수 있는 난이 있다.   대부분 소스를 더 많이 달라던가 포장을 따로따로 해 달라던가 하는 내용이 대부분인데 카렌 역시도 소스를 많이 부탁하면서 마지막에 ‘지난번 음식 너무 잘 먹었어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라는 메시지를 남겨 주신다.   혹시 음식이 식지 않을까 한 번이라도 더 손이 가는 소중한 단골손님이다.


흔히 일본 같은 나라에서는 100년 혹은 심지어 200년이 넘게 대를 이어 장사를 하는 오래된 가게들이 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물론 가업을 잇는 일이겠지만 자손들이 지켜내야 하는 특정 사업의 핵심을 고집스럽게 이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식당일 경우 두말할 나위 없이 음식의 맛이다.   그리고 그 맛은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어온 힘에 의해 만들어진 두터운 단골들과의 인연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자산일 것이다.   오래된 식당은 대를 이어온 맛뿐만 아니라 대를 이어온 단골들이 존재한다.   우리 식당 역시 어릴 적 부모님 손을 잡고 오던 사람들이 성장하여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고 또 그들의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오는 풍경은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캐나다에 와서 시작한 장사를 나름 오랜 시간 계속해 오면서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사실 즐거웠던 일보다는 괴로웠던 순간이 훨씬 많았다.   항상 자본에 쪼들리고 시간에 얽매이고 피곤함에 허우적거렸다.   한국에서 나름 잘 나가던 직장 팽개치고 이곳에 와서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자책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 가게를 최고로 생각하는 단골들과 그들을 지켜주기 위해 유지해야 하는 음식을 생각하면 이 산골마을의 해산물 식당은 나만의 것이 아닌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와 그 인연을 이어주는 끈은 모든 비즈니스에 해당되는 핵심일 것이다.   오랜 기간 얽히고설켜있는 가게와 손님들의 관계를 내 마음대로 팽개칠 권리는 내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식당을 운영하는 중요한 핵심은 단골을 만드는 일과 유지하는 일이다.   그 기본을 지켜나가는 것 이외에는 모두 부수적인 일 일뿐이다. 새삼스럽지만 내가 만들어 가는 고객들과의 소중한 인연에 감사한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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