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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yee Jan 06. 2019

First Love...

첫사랑에 하아파이브

가게 단골 중에 캔덜 이라는 부동산 중개업자가 있다.   성격 때문인지 직업 때문인지 모르지만 그분은 한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날 줄을 모른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내가 이 가게를 인수하기 훨씬 전부터 이 가게의 단골이었다며 가게의 전 주인들은 물론 그 가족들 사정까지 내게 속속 드리 얘기해 주었다.   물론 지금의 내가 하는 가게의 음식 맛이 그중 제일 최고라는 칭찬도 잊지 않는 기분 좋은 손님이다.   어느 날 가게에 들어와서는 조금 전에 자신의 첫사랑을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다면서 흥분하고 있었다.   항상 새우 크림소스요리를 시키는 그는 그날따라 홍합 와인 찜 요리를 시키고 창밖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무언가 먼 기억 속에 빠져 있는 듯했다.   가게에 머무는 내내 얼굴에 홍조가 가지지 않은 모습을 보며 까마득히 잊고 있던 나의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 내게 되었다.   첫사랑은 기억이 가물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전생에 경험한 전설 같은 이야기이다.   첫사랑 이란 뭘까?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대상?   내 마음을 처음으로 빼앗긴 상대?   헤어진 후 깊은 후유증을 앓게 되는 첫 인연?


그녀의 이름은 E이다.   E를 만나기 전에도 내겐 여자 친구라는 존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머니의 친구 딸로 유치원에 같이 다니며 그 후로도 친구처럼 지낸  H도 있었고, 초등학교 때 3년 동안 같은 반 옆자리 짝이었던 K도 있었다.   하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중학교를 다니는 동안 또래의 여자를 만날 기회는 없었다.   그건 굳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빡빡 민 머리에 같은 교복 같은 모자 같은 가방을 들던 때였다.   비좁게 서서 가는 등굣길 버스 안에서도 여학생들과는 몸이 부딪혀서는 안 될뿐더러 눈도 마주치지 않을 때였다.   간혹 같은 반 친구들 중 흔히 말하는 ‘잘 나가는’ 아이들이 ‘잘 나가는’ 여학생을 만난 얘기를 하며 마치 광개토왕 시절의 용사처럼 자랑하던 때였다.   나 같은 그저 평범한 백성들은 어디선가 구해온 일본 잡지 (스크린이나 로드쇼라고 했던 것 같다) 속에 숨어있는 올리비아 핫세와 피비 캐츠 같은 여신의 사진을 손가락으로 문질러 보는 것으로도 야릇한 느낌이 들던 때였다.   고등학교를 진학한 후에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배지가 바뀌었을 뿐 빡빡 민 머리에 같은 교복 같은 모자 같은 가방이었다.   그 당시 공부가 시원치 않았던 나는 몇몇 친구들로 편성된 과외수업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 친구들 중에 놀라운 비밀을 간직한 녀석이 하나 있었다.   겉으로는 어리숙 하게 보였던 것으로 기억되는 녀석은 여기저기 여자 친구들을 만들어 놓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이후로 여학생을 사귀어 본 적은 물론이고 우연한 기회에 얘기라도 해본 경험이 없던 나는 그놈의 연애 행각이 신기하고 부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소개팅이었는지 미팅이었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원래는 그 녀석이 나가게 되어있던 약속 장소에 내가 나가게 되었다.   광화문에 있는 어느 빵집 앞에서 만난 그녀는 조그마하고 피부는 약간 검고 눈이 유난히 크고 귀여운 모습이었다.   무슨 말들이 오고 갔는지 모르지만 그날 우리는 광화문 거리를 오랫동안 함께 걸었다.   내 옆에서 가족이 아닌 여자가 나와 걸음걸이를 맞추며 걷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난 세상을 얻은 듯 기쁘고 떨렸다.   그 당시 이성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탈선이었다.   우리가 처음 만나 함께 거리를 걷고 있다는 것 하나로 이미 선을 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E이다.    당대에 잘 나가던 여배우 이름과 동명이었다.   나이는 중학교 3학년으로 나보다 한 살이 어렸다.   처음 만나선 광화문 거리를 함께 배회한 것이 끝이었다.   난 용기를 내어 다음에 만날 약속을 정해 얘기했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을 때 난 이미 우리의 금지된 사랑과 향긋한 비밀을 온몸으로 느꼈다.   당연한 얘기이겠지만 E와 내가 만날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었다.   교복을 벗고 제아무리 사복으로 멋을 내어 본들 누가 봐도 우린 고딩과 중딩 이었다.   그 흔한 카페도 드물었을뿐더러 우리의 입장을 허용하지 않았다.   빵집도 한두 번이지 내 자금능력이 여의치 못했다.   우리는 주로 걸었다.   카페 앞을 걸으며 커피를 얘기하고 옷 가게 쇼윈도를 보며 패션을 얘기하고 영화관 앞을 지나가며 배우들의 사생활을 씹었다.    무엇보다 우리를 설레게 했던 것은 전화와 편지였다.   물론 전화라고 함은 집 전화를 얘기한다.   이 시대는 휴대폰은 물론이고 가정용 컴퓨터도 아직 발명이 덜 되었을 때이다.   빌 게이츠의 인터넷 아이디어도 아마 겨우 그의 머릿속에서 상상만 하던 단계였을 것이다.   8시 반 두 번… 이것은 우리의 암호였다.   정확히 저녁 8시 반에 전화벨이 울리고 두 번째 울리고 끊어지면 그것은 그녀인 것이다.   그럼 나는 전화기 줄을 최대한도로 늘어뜨려 내방으로 가지고 들어가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편지지에 최대한 글씨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안부를 묻거나 시를 베끼거나 해서 교환했다.   


그 당시 내가 왜 그랬는지 기억이 불가능하지만 용기를 내어 그녀를 집에 데려와 어머니께 보여드린 적이 있었다.   아마도 우리의 ‘건전한 이성관계’를 인정받고 싶어서였다고 생각된다.   차가운 눈으로 우리를 번갈아 보시던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는 아무 말씀 없으셨으나 우리 관계를 인정하지 않으셨다.   그때부터였다.   그녀를 향한 내 마음은 더더욱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그들을 막아서는 시련이 항상 존재하고 결국 그 결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거나 ‘그러기에 어쩔 수 없이’라는 결말을 맺는다.   우린 그때부터 영화 속 주인공이었다.   어머니의 반대는 세상의 반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우리를 클라이맥스로 이끌고 있었다.   그녀는 주로 헤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세상의 모든 미사여구를 총동원해서 긴 편지로 내게 전했지만 막상 ‘우리 이제 그만 만나’는 아니었다.   나 역시 우리가 헤어질 수 없는 내 수많은 감정을 글로 표현하면서도 ‘오빠가 책임질게’는 아니었다.


결국 우리를 갈라서게 한 것은 아주 간단한 이유에서였다.   우리 가족이 부산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고2, 그녀가 고1 때의 일이다.   건드리면 터져버릴 것 같던 내 사춘기의 가장 위험한 순간에 우리 아버지는 나를 생전 아무 연고도 없는 부산의 어느 학교 교실에 집어넣었던 것이다.   우리를 갈라놓는 이 비극적 현실에 적어도 나는 세상을 잃어버린 비운의 주인공이었다.   사실 부산으로 전학을 간 그날부터 난 흔히 말하는 불량학생이 되어가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런 맘을 먹는 내 주변으로는 급속도로 그런 친구들만 꼬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처구니없는 과거다.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중요하다면 중요한 시기에 동대문에서 서대문도 아니고 고속도로 상으로 만도 450km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적응을 시작해야 했던 나는 반항의 구실을 찾기에 너무나도 충분한 조건이었다.   새로운 학교에의 적응은 몇 개월이 지나도 어려웠지만 그 당시 잘 나가는 아이들과의 ‘우정’은 금방 불이 붙었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렇게 부산으로 전학을 가서 반년 정도 지났을 때였다.   그 당시 난 급격하게 문제아 양아치로 전락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녀를 생각하면 애틋한 사랑의 조그만 불씨가 가슴속 어딘가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급기야 용기를 낸 나는 학교를 간다고 집을 나와 서울행 기차를 탔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난 전문용어로 도리구찌 라고 불렀던 납작모자에 가죽잠바를 걸친 전형적인 양아치 모습을 하고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변한 것이 없었다.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그녀는 나를 반가워하지 않았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고 또한 무서워했다.   무언가 할 말을 찾던 나는 너 공부 열심히 해서  나 같은 사람 되지 말라는 무슨 귀신 시 나락 까먹는 얘기를 들려주고 부리나케 부산으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 내가 공부를 열심히 했다거나 나쁜 친구들을 멀리했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나의 사랑스러운 첫사랑은 기억 속으로 묻히고 말았다.   


옛날 기억에 빠져 멍하니 카운터에 서있는 내 앞으로 캔덜이 계산을 하러 걸어왔다.   너의 음식은 오늘도 최고였다며 칭찬해 주는 목소리에 오늘따라 힘이 실려있다.   나도 모르게 하이파이브를 건네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캔덜 덕분에 잠시 향기로운 기억 속에 머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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