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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yee Jan 02. 2019

쌀에 대한 단상

밥을 위한 밥에 의한 밥집

음식장사를 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노동이고 어떨 때는 중노동이라고 생각될 때도 한두 번이 아니다.  TV에서 보이는 스타 셰프들의 현란한 손동작과 접시에 펼쳐지는 거부하기 힘든 식용 예술작품들 역시 중간중간 여러 단계의 노동이 숨겨져 있다.   다른 아이템과 마찬가지로 음식 역시 소비자에게 전달되고 일정한 퀄리티를 항상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프로세스를 거친다는 얘기일 것이다.    아주 심플한 요리라도 그 안에는 장보기, 손질하기, 씻기, 조리하기, 보관하기, 치우기, 버리기가 숨어있다.   그것이 재료 하나하나의 생산과정과 유통과정, 음식물로서 손님들을 만족시킨 후 남은 쓰레기 들의 행방까지 생각하면 마치 하나의 생명체가 엮어내는 생로병사가 그 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새벽같이 출근하는 이곳 회사의 직장인들이 아침 업무를 마치고 커피 브레이크를 찾을 아침 10시경에 난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간다.   오랫동안 몸에 밴 습관은 주방에 들어가기 전의 절차를 무의식적으로 진행시킨다.   신발을 갈아 신고 가운을 입고 앞치마와 두건을 쓰고 화장실을 점검하고 홀의 불을 켠다.   주방에 들어가면 우선 냉장고, 버너, 프라이여, 디쉬 워셔 등이 밤새 안녕한지 점검한다.   예약 손님들의 수를 확인하고 손질할 재료 들을 냉동고에서 꺼내 해동시킨다.  그러고 나서 밥을 할 준비를 한다.  


우리 가게는 메뉴의 특성상 두 종류의 밥을 지어야 한다.   크림소스나 토마토소스가 베이스가 되는 새우나 생선 요리에는 ‘재스민 쌀’이라고 하는 태국산 쌀을 쓴다.   가늘고 길쭉한 이 쌀은 칼로리와 맛이 가뿐하여 밥이 고슬고슬하게 지어지는 특징이 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겐 다소 특이할 수 있으나 사실 이 종류의 쌀이 전 세계 쌀 생산량의 90%라고 한다.   한국과 일본, 대만, 이탈리아 만이 우리에게 익숙한 단립종의 쌀을 먹는다고 하니 사실 알고 보면 우리 입맛이 더 특이한 것 일수도 있다.   어쨌든 이 재스민 쌀의 은은한 향과 식감은 우리 가게 간판 메뉴 소스와 잘 어우러지는 관계로 큰 밥솥에 밥을 짓는다.   그리고 작은 밥솥에는 흔히 경기쌀이라고 부르는 캘리포니아산 우리 쌀로 밥을 한다.   돈가스와 회덮밥 같은 메뉴는 아무래도 찰지고 윤기 나는 우리 쌀이 최고이다.


쌀통을 열고 쌀을 계량하는 일을 시작할 때는 항상 무언지 모르는 경건한 공기가 감돈다.   바깥 소음이 갑자기 차단되는 도서관 연람실이나 절에서 대웅전으로 들어가 부처를 마주할 때의 엄숙함이 느껴진다면 좀 과장일까… 한 컵 두 컵 주문을 외우듯 옮겨 담은 쌀을 가지고 개수대로 향한다.   적당한 온도의 물을 맞추고 쌀을 씻는다.   손목을 돌려 우선 건조했던 쌀에 수분을 공급한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쌀알들을 느끼며 살며시 정성껏 쌀을 씻는다.   흿뿌연 쌀뜨물을 어느 정도 투명해질 때까지 몇 번이고 개수대로 흘려보낸다.   밥솥에 그어져 있는 선에 맞추어 밥 물을 잡기는 하지만 항상 마지막은 손을 펼쳐 쌀과 물의 높이를 재어보아야 한다. 재스민 쌀과 경기쌀은 쌀의 생김새뿐만 아니라 물을 머금는 상태도 다르기 때문에 손바닥에서 손등까지의 물높이라는 다소 원시적이지만 감각적인 방법을 포기하지 못한다.   전원을 꼽고 밥을 안치고 나면 본격적인 영업준비가 시작된다.


단위 면적당 얻을 수 있는 칼로리가 아주 높은 곡류인 쌀은 그 잉여생산물을 이용해 세계 문명을 발전시켜온 귀중한 농경 작물이다.   여기서 쌀의 역사를 논하거나 영양가치를 얘기할 생각은 없다.   어찌 되었든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쌀을, 그러니까 밥을 먹어왔고 먹을 것이다.   흔히들 먹는 것이 그 사람을 결정한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쌀을 주식으로 삼는 우리들은 어느 정도까지는 닮아 있다고 봐야 한다.   외향적이던 내성적이던 느긋하던 신경질 적이던 밥을 먹고사는 우리는 결국 어딘가에는 닮은 구석이 있으리라.   수십 가지 반찬이 차려지는 일류 코스요리에도 결국 밥이 함께하고 날계란 하나와 간장 한 방울을 가지고도 어떻게 해서든 밥을 먹는다.   밥 먹고 살기 위한 일상이라기보다는 그 어떤 삶을 살기 위해서도 우선 밥부터 먹어야 한다는 말이 옳은 것 같다


사실 모든 것은 밥을 안치는 순간 내 손에서 벗어난다.   밥솥에서 증기가 배출되고 뜸이 들여지고 쌀 한 톨 한 톨이 저마다의 찰짐과 꼬들꼬들함을 머금고  일정한 부피로 팽창한다.   하지만 쌀이 밥이 되는 과정을 하나하나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고 할 시간도 없다.   식당의 아침 준비는 전쟁이다.    재료를 손질하고 소스를 보충하고 오일을 갈고 설비를 가동하는 가운데 밥솥은 주방 구석에서 열심히 밥을 짓고 있다.   취사가 완료되고 어느 정도 뜸 시간이 지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밥솥을 연다.   아침에 쌀을 꺼낼 때의 엄숙함과 마찬가지로 완성된 밥을 저어 섞을 때에도 다시금 경건해진다.   내가 만드는 음식이 오늘 지은 밥과 좋은 합이 이루어 지길 바란다.   내 가게를 찾아주는 손님들에게 부디 좋은 기운이 전해지길 기원한다.


우리 가게는 다운타운에 위치한 특성상 점심때가 바쁘다.   12시에서 1시 사이에 몰려드는 직장인들은 비교적 빠른 속도로 한 끼를 마쳐야 한다.   같은 메뉴의 음식이라도 밥을 먹는 방법은 제 각각이다.   음식이 서브되면 소스에 바로 밥을 마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조금씩 섞어 먹는 손님과 밥은 밥대로 간장에 비벼 먹는 손님들도 있다.   점심 러시아워가 끝나고 뒷마무리가 끝나는 오후 3시경에 우린 늦은 점심을 만들어 먹는다.   밥은 주로 전날 남은 밥을 데워먹는 일이 많다.   전자레인지라는 놀라운 기기 덕분에 찬밥 신세를 면하는 것이다.   우리는 밥을 먹으며 밥 얘기를 한다.   3번 테이블 손님이 밥을 어떻게 먹었고 하는 약간의 반성회 비슷한 얘기부터 새로 생긴 식당에 밥은 어떻게 나오고 하는 정보 아닌 정보 얘기들과 함께 나는 밥 한 공기를 비운다.   심지어 밥을 지금 잘 먹으면서 요즘 경기가 안 좋아 밥 먹고 살기 힘든다는 얘기를 하고 식당 창밖으로 우연히 지나가는 아랫배가 심하게 나온 아저씨를 보고 밥맛 떨어진다고 까지 한다.   밥을 맛있게 먹고 있으면서 말이다.


이제 차 한 잔을 마시고 낮잠을 자고 다시 저녁밥을 제공할 준비를 해야 한다.   매일 반복되는 나의 심플한 일상이다.   이 일은 ‘사람들이 먹고사는 일’ 덕분에 ‘내가 먹고사는 일’이다.   나는 우리 가게가 최고의 맛으로 평가되는 것도 좋지만, 그냥 가끔씩 생각나고 들려보고 싶어 지는 평범한 가게 이길 바란다.   “거기 이번에 새로 오픈했는데 인테리어가 장난 아니래…” 같은 곳보다는,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오늘은 그냥 그 집 가서 카레라이스나 먹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문득 드는 그런 집이었으면 좋겠다.   물론 내 욕심이다.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이 쏟아지는 각종 식당 정보와 리뷰 등을 검토하고 조금이라도 평이 안 좋은 곳은 가급적 피한다.   가장 1차원적인 일이기에 가장 민감한 일이기도 한 것이다.   모든 음식재료가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쌀 한 톨에도 자연과 인간과 과학이 압축되어 있다.   내게 주어진 쌀로 밥을 짓는 일이 경건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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