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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yee Jul 25. 2019

아퀴 바바 와의 인연

아퀴 바바라는 사람이 있다.   알리바바도 아니고 자이언트 바바도 아니지만 이름에서부터 벌써 신비함이 느껴진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3년 전쯤 우리 가게에서 오픈 마이크 음악 이벤트를 할 때였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어느 민족의 검은색 전통의상 차림에 검은색 선글라스, 그리고 카다피를 연상시키는 검은 베레모를 쓴 사람이 커다란 기타 하드케이스를 들고 들어왔다.   3년 전 그 당시만 해도 이벤트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그저 몇 안 되는 뮤지션들이 반복적으로 와 주던 때였다.   행사를 주최하는 나로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와주길 기대하고는 있었지만 이 새로운 인물의 등장은 우리 모두를 긴장시켰다.   몇몇 다른 뮤지션 들과 인사를 나눈 그는 조용히 앉아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기타 케이스에서 밤색 기타를 꺼내 들었다.   언뜻 보아도 클래식 임을 알 수 있는 전형적으로 목이 두터운 기타를 꺼내 든 그는 고개를 숙이고 조율에만 집중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그가 무대에 섰다.   아니,  의자를 사용했으니 앉았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음향 테스트를 간단히 끝낸 그는 곧바로 연주를 시작했다.   어디선가 들어 본 기억이 있는 듯 하지만 도무지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 멜로디의 기타 연주가 길게 이어졌다.   라틴계의 남미 음악 같기도 하고 블루스 같기도 하고 재즈 같기도 한 선율의 기나긴 전주가 그의 날렵한 핑거링 주법으로 전해져 왔다.   거의 5분은 족히 걸린듯한  멋진 전주가 끝나고 시작된 노래는 “Ain’t no sunshine”이었다.   Bill Withers의 대표곡인 이곡을 평소에도 좋아하고는 있었지만 노래가 시작될 듯 말 듯 하염없이 이어진 그의 멋진 전주 끝에 흘러나왔을 때는 관객들 사이에서 탄성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Ain’t no sunshine이라면 나 역시 코드 흐름을 잘 알고 있던 터라 재빠르게 피아노를 열고 그와 함께 연주를 이어갔다.   노래가 끝나고 악수를 나눈 우리는 그때서야 인사를 나누었고 그렇게 아퀴 바바 씨와의 긴 인연이 시작되었다.


이곳 캐나다에서는 개인적인 일이나 가족관계 같은 것은 물어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 그저 그에게서 들은 것만을 종합해보면 그분은 말레이시아 출신의 이민자이다.   직접적으로 자신의 소개를 하지는 않았지만 복장이나 음식을 먹는 취향, 그리고 술을 입에 대지 않는 것들을 종합해 보건대 무슬림일 가능성이 높다.    석유 관련 회사를 다니다 은퇴했다고 했는데 어떤 일을 언제부터 어느 정도의 위치에서 하였는지 역시 알 길이 없다.   자식들은 5명 정도 (처음에 들었었는데 잊어버려 정확하지가 않지만, 참 많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다)인데 그중 미모의 딸 하나가 가끔 아빠의 공연을 응원할 겸 자신의 스테이지도 가질 겸 해서 가게를 찾는다.   정확하진 않지만 그녀 역시 미스 캐나다에 참가했던 경력까지 가지고 있는 신비한 뒷얘기를 가지고 있었다.   부인에 대한 언급은 처음부터 없었고 짐작도 가지 않는다.   어쨌든 바바 씨는 시내 캔싱톤 마을에 혼자 사는 것 같았다.   은퇴한 후 줄곧 음악생활을 하고 있다는 그는 도시 여러 군데에서 펼쳐지는 음악 이벤트에 참가하고 있다고 했고 실제로 그분이 진행을 맡고 있는 이벤트도 꽤 된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이민자의 나라에서 나름 독특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지만 이분은 그중에서도 아주 진한 개성을 소유한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그날 이후 가게 이벤트에서 종종 만나게 된 바바 씨는 처음 느꼈던 신비함과는 대조적으로 아주 따뜻한 인물이었다.   그분은 무엇보다도 인간관계를 맺는 기술이 남달랐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그의 모습이 풍기는 강한 인상과 특이함 때문에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단번에 기억한다.   하지만 그런 외적인 인상 이전에 바바 씨 자신이 한번 만난 사람의 이름은 모두 기억하는 듯했다.   나는 그런 면에서는 정말 소질이 없어서 적어도 두세 번 이상 만나고 그것도 상대방이 나를 기억해 준다는 사실을 알지 않는 이상 그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매치시키기가 어렵다.   특히나 술을 한잔 하거나 식사를 함께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모이는 파티나 이벤트에서 그저 우연하게 인사를 나누게 될 경우라면 이름은커녕 얼굴도 기억해 내지 못한다.   하지만 바바 씨는 다르다.   그는 한마디로 사람을 만나자마자 순식간에 인간관계를 성립한다.   처음 보는 사람으로부터 어떻게든 연관성 있는 에피소드를 끌어내 그 도구를 가지고 대화를 주도해 가며 어떻게든 다음에 다시 만날 수 있는 정확한 스케줄을 알린다.     물론 그 스케줄은 바바 씨 자신이 참가하는 이벤트 계획을 일방적으로 알리는 것이지만 사람들에게 자신의 일정을 정확히 전달하여 상대방과의 구체적인 연대감을 쌓는다.   지난번에는 길에서 우연히 우리 딸이 바바 씨와 마주쳤는데 그 짧은 순간에 함께 있던 딸아이 친구들의 이름과 인상 등이 바바 씨에게 입력되었고 그는 그 얘기를 나와 그다음에 만나게 되었을 때 화제로 삼았다.   우리 딸은 자신의 친구들 얘기를 사진과 함께 내게도 종종 하는 편인데 사실 매번 들을 때마다 누가 누군지 구분이 안 간다.   어쩌면 그것이 내 기억력의 탓이 아니라 친화력과 관심의 문제 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바바 씨를 보면서 느끼게 된다.


언젠가부터 바바 씨는 우리 가게의 이벤트 호스트 일을 맡고 있다.  가게의 모든 음식을 내가 직접 만들어 내는 상황이다 보니 누군가 나 대신 이벤트의 진행을 맡아 주는 건 여간 마음이 놓이는 일이 아니다.   다른 커피숍 같은 곳에서도 정기적으로 오픈 마이크의 호스트를 하고 있는 바바 씨는 선뜻 나의 제안을 받아주었다.   사실 이런 이벤트는 그 성공 여부가 당일날 문을 열어 보아야 알 수 있다.   그리고 식당을 하는 나로서는 아무리 내가 개인적으로 음악을 사심 없이 사랑한다지만 이벤트와 매출을 따로 떼어 생각하기는 어렵다.   바바 씨나 나나 그저 음악이 좋고 사람들과 함께 연주하는 무대를 즐기는 부류이지만 결국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가 성립되었다.   이벤트 호스트를 맡게 된 첫날, 바바 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주방에 서있는 나의 눈치를 읽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나 역시 밀려들어오는 주문을 치러 내느라 좁은 주방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도 내 모든 신경 안테나는 바바 씨가 진행하는 무대를 향하고 있었다.   사전에 고용계약을 맺은 것도 아니고 사례금의 액수도 정하지 않은 상황이라 약간은 어색한 느낌이 있었지만 무사히 그날의 이벤트는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결국 내가 임의로 정한 금액을 봉투에 넣고 바바 씨의 식사를 공짜로 제공하는 것을 포함하여 제안했고 바바 씨는 흔쾌히 받아주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손님이 많아 정신을 못 차리던 날도, 비바람이 몰아쳐 바바 씨와 나의 몇몇 친구들 이외엔 아무도 찾아주지 않던 날도 항상 같은 사례를 해 오고 있다.

오픈 마이크의 호스트는 그저 이벤트의 진행을 맡는 일 만은 아니다.   무대의 음향 셋업이 끝나면 호스트가 우선 첫 순서로 연주를 시작한다.   뮤지션들이 하나둘씩 가게에 들어오면서 미리 준비해둔 칠판에 자신의 이름을 기입한다.   어느 정도 이름이 채워지는 것을 기다려 호스트는 그날의 뮤지션들의 라인업을 정하고 순서대로 그들의 무대를 마련해 준다.   언뜻 보기엔 아주 간단한 일이다.   특별히 재미있는 입담이나 멋진 사회를 볼 필요도 없고 그저 처음 오프닝을 하고 그다음엔 순서대로 올라오는 사람들의 악기와 마이크 음향을 맞춰주는 일만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거기엔 미묘하고 애매한 일들이 많이 섞여 있다.   흔히 뮤지션이라는 사람들은 자신의 음악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오픈 마이크에 참여한다는 것은 남들의 음악을 들어주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음악을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자신이 직접 만든 자작곡이던 혹은 다른 아티스트의 음악을 커버하는 것이던 비록 몇 명 안 되는 관객들 앞이지만 각자 집에서 열심히 준비해온 곡들을 가지고 처음으로 무대에 오르는 것이다.   사실 이런 것이 오픈 마이크가 갖는 매력이다.   누구든 자신의 음악을 선보이고 공유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 하지만 이런 바람직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칠판에 명단을 올린 그날의 연주자들이 많고 적음에 따라 배열을 적절히 하여 정해진 시간 안에 모든 사람이 자신의 무대를 갖게 하는 것이 호스트의 가장 큰 역할이다.   하지만 연주를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특히나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션들의 경우 가능한 남들과는 차별화된 좀 더 많은 곡들을 연주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벤트의 진행자 입장에서는 모든 연주자에게 공평한 시간을 제공해야 한다.   자칫 미숙한 진행에 의해 명단에 이름을 올린 연주자가 무대에 서보지도 못하고 돌아갈 경우가 발생하면 큰일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은 좋은 평가보다는 악평일수록 그 여파가 빠르다.   여기에 호스트의 중요한 역할이 있다.   무대의 진행을 순조롭게 하기 위해선 호스트의 단호함과 어느 정도의 카리스마가 필요하다.   뮤지션을 자청하는 사람들 중에는 음 이탈이 심해 들어주기가 힘든 경우도 간혹 발생한다.   그럴 때는 인간적으로 잔인하지만 연주 도중 호스트가 음향시스템을 조작해 마이크를 꺼버리는 무례함(?)을 저지르지만 사실 이것도 이벤트의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바바 씨는 이 모든 악역(?)을 맡아 책임지며 어떻게 서든 이벤트를 조금씩 발전시켜온 장본인이다.   그분 덕분에 우리 가게는 이곳 캘거리의 뮤직 씬에서 아주 조그맣지만 한몫을 하는 곳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벤트를 하다 보면 커피 한잔만 시켜놓고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뮤지션들도 있다.   그들은 아주 싼 비용으로 자신의 무대를 선보이는 호강을 누리는 셈이다.   식당을 하는 사람으로서 밥 한 공기라도 더 파는 것이 중요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눈에 보이는 그날의 매출보다는 가게에 모여드는 사람들과의 연계가 무엇보다도 소중하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운영 하는 서비스업은 결국 Hospitality, 즉 접객을 통해 이익을 취하는 일이다.   한 사람과의 인연이 가지고 올 수도 있는 어마어마한 여파를 무시할 수는 없다.   

오늘도 커다란 기타 케이스를 메고 카혼 박스를 들고 씩씩하게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바바 씨를 보며 새삼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지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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