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비뇽의 중심, 교황청
짐을 풀고 다 함께 거리로 나와 천천히 걸으며 성곽 안쪽으로 들어갔다. 건물들 옆에 늘어서서 하늘을 가릴 정도로 잎이 무성한 아름드리 가로수들은 도시의 연륜을 말해주는 듯했다. 오래된 석조건물의 1층은 상점으로 세련되게 꾸며져 지나간 시간들과 현재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차가 다니지 않는 한적한 도로 가운데는 나무로 된 네모 틀의 화분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안에 심어진 하늘하늘한 보랏빛 라벤더가 발길을 멈추게 했다. 화려하기보다 잔잔하고 옅은 색상의 꽃을 선택한 주민들의 마음은 여유로울 것 같았다.
아비뇽의 대표 건축물인 교황청의 규모는 압도적이었다. 건물은 아비뇽유수기간 중인 1335년부터 20년에 걸쳐 지어졌고 유럽전체에서 가장 큰 고딕양식 궁전이다. 프랑스 왕권과 로마교황청의 세력다툼으로 대립했던 시기에 아비뇽은 상업과 예술의 도시로 거듭났었다. 종교의 중심지였던 교황청에서 지금은 예술전시가 열리고 여름에는 대규모의 연극축제 ‘아비뇽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하니 도시는 시대에 맞추어 진화한다.
교황청 부근 시청 앞 광장에서는 많은 관광객들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둥글고 큰 회전목마가 자리 잡고 있어 정겨운 분위기다. 저녁이 되자 기분 좋은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 감촉의 바람이 미스트랄인가.
머릿속의 단어를 구체화된 느낌으로 대입시켜보았다. 레스토랑 야외테이블은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활기를 띄었다. 어떤 메뉴를 골라야할지 사진을 살펴보다 매콤할 것 같은 빠에야와 국물 있는 해산물요리를 시켰다. 버스킹을 하는 남자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고 아이들은 그 가까이 앉아 음악을 들었다. 사람들은 기타 케이스에 동전을 넣었다. 우리 일행도 자리를 뜨며 동전을 넣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남프랑스 저녁 분위기에 익숙해져 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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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뇽 유수
1309년부터 1377년까지 교황청이 로마에서 아비뇽으로 피신한 일이다. 프랑스 왕 필리프 4세는 교황 보니파시오 8세와 충돌을 하고 우위를 점하게 된다. 교황은 프랑스 왕의 견제를 받아 로마에 입성하지 못하고 아비뇽에 머물게 된다. 아비뇽 유수 기간 동안 7명의 교황이 머물렀으며 4대 클레멘스 6세가 교황청을 호화롭게 건조했다. 프랑스 혁명으로 크게 파괴되었던 교황청은 외젠 비올레 르뒤크에 의해 복원되었다.
미스트랄
겨울에서 봄 사이 남프랑스에서 지중해 쪽으로 부는 차고 건조한 지방풍.
2. 아비뇽의 아침
‘아비뇽 다리’로 불리는 생 베네제 다리는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한산했다. 론강의 시원한 바람도 상쾌했다. 중간에 끊긴 돌다리는 오랜 세월의 흔적을 드러내고 있었다. 1117년 베네제와 그의 제자들이 14년에 걸쳐 지은 다리는 22개의 아치 중 4개만 남아있다. 다리 중간에 있는 예배당은 베네제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건물은 낡았지만 성스러운 분위기였다. 지붕에는 비둘기가 엄청 많았다.
입장권과 함께 받은 오디오에서 ‘아비뇽다리 위에서’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다리가 생긴 후 만들어졌다는 경쾌한 리듬의 노래는 프랑스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민요가 되었다. 지명이 노래와 연관되어 더욱 의미를 지니게 되나보다.
신선한 바람을 느끼며 다리 위에서 탁 트인 론강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강변에 버스 여러 대가 도착하더니 관광객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여유로웠던 분위기는 본격적으로 단체 관광이 시작되기 전이어서 였다.
교황청 내부관람을 위해 이동했다.
전날 교황청 외부를 둘러봤지만 아침에 보는 교황청 주변은 더 차분한 느낌이 들었다. 교황청 옆의 노트르담 데 돔 성당의 종탑위의 황금빛 성모상은 아비뇽 시내를 보살피듯 바라보고 있었다.
베네제 다리관람권과 통합으로 끊어 할인을 받았던 입장권을 내고 교황청 안으로 들어갔다. 교황청은 유네스코문화 유적으로 등재되었다. 어둑하고 커다란 홀의 높은 천정아래 의자에 앉아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을 받으며 고개 숙여 무엇인가 보고 있는 모습은 웅장한 종교건축물 안에서 사람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실감나게 했다. 다른 공간에서는 관람객들이 VR 기기를 벽에 대고 바라보고 있었다. 기기를 번호가 매겨진 QR코드에 대면 예전의 교황청내부를 재현한 화면이 나타났다. 각방 기능에 맞추어 식탁과 책장과 커튼과 벽난로 등이 보였다. 지금은 틀만 남아있지만 색조가 있는 기물들이 진열되어 활기차게 운영되었을 과거가 상상되었다.
아비뇽 거리는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평화로워 보였다. 까페, 빵집, 음식점등에 실내보다는 바깥의 파라솔 아래 테이블에 자리 잡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어디를 가나 자연스런 모습이었다. 눈에 띄는 빵집이 있어 그냥 가기 아쉬워 들어갔다. 나이 드신 친절한 여주인이 열정적으로 일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빨간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은발이 되가는 금발머리를 동여맨 할머니의 얼굴은 주름이 예쁘게 잡혀 있었다. 직접 칼을 들고 빵을 자르며 하이 톤의 목소리로 즐겁게 일을 했다. 다음 행선지로 가려다 빵과 차, 음료를 시켜 테이블에 앉은 우리에게 서빙하며 상냥하게 대해주셨다. 기분 좋게 오전시간을 보내며 다음 행선지인 아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