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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여행의 시작 파리

by 박경화

프롤로그

친구들과 만나면 여기저기 아프다는 대화를 하게 되는 나이다.


더 늦기 전에 다녀야 돼

싱가포르가 깨끗하고 좋다던데

너무 도시 아냐? 요즘 치앙마이 한 달 살기 유행 이래

한살이라도 어릴 때 멀리 가야될 거 같아

남프랑스 가보고 싶다

자유여행으로

대화의 종착지인 남프랑스에 대해 이견은 없었다.

각자의 머릿속에 나름대로 그곳의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특별하게 쨍한 햇빛, 포도밭, 고풍스러운 건물이 있는 골목길.

여유롭게 걷는 상상은 일상에서 벗어난 특별한 선물이리라.

살림하고 직장 다니며 부지런히 살아 왔다면 한번쯤 누려도 좋을 호사일 듯.어떻게 시도를 하느냐가 문제였고 매번 대화는 대화로 머물렀다.


남편과도 유럽자유여행에 대해 가끔 이야기를 나누었다.

패키지여행은 목적지를 다녀왔지만 아쉬웠다.

차타는 시간이 많고 주어진 식사를 하니 편하면서도 밋밋했다.

현지를 스스로 찾아다니며 문화와 풍습을 더 생생하게 느끼고 싶었다.

역시나 언젠가로 미루고만 있었다.

남편이 제2의 직장 퇴직을 앞둔 2019년 봄.

남편 친구 부부는 남프랑스와 이태리 여행을 함께 하자고 제의해 왔다.

6개월 후 파리 왕복 비행기 티켓을 덜컥 끊었다.


준비기간 동안 BAND를 만들어 정보를 공유했다.


자유여행 경험이 많은 남편친구 부부의 도움으로 남프랑스 이태리 여행이 시작되었다.

아비뇽, 엑상프로방스, 니스, 라스페치아. 베로나, 피렌체, 밀라노.

들어본 듯한 도시이름도 실감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단편적으로 떠올랐던 이미지들이 얽혀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1. 여행의 시작, 파리


뮌헨까지 11시간, 환승해서 1시간 반 걸려 파리에 도착했다. 드골공항의 무빙워크는 경사지게 오르거나 내려가게 돼있었고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어렸을 때 선생님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프랑스에는 가만히 서있어도 움직여서 편하게 가는 장치가 있다.

꿈같이 들렸던 말이 발밑의 감촉으로 다가왔다. 이제 우리 나리도 에스컬레이터는 당연하고 변화의 속도는 엄청나다. 하지만 파리의 무빙워크는 오랜 상상으로 인해 특별하게 다가왔다.

파리공항


공항에서 숙소가 있는 리옹 역 근처로 이동하기 위해 직행버스를 타기로 했다. 티켓 판매용 자동기계는 신용카드를 사용해야했다. 남편 친구(혜진 아빠)가 첫 번째 넣은 카드가 작동이 안 되서 남편이 다른 카드를 넣고 실갱이를 했다. 무거운 배낭을 멘 백인 아가씨가 옆에 있다가 자기가 이중으로 산 티켓 중 하나를 현금으로 사달라고 했다. 탑승시간이 촉박해서 미안하지만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고 간신히 표를 사서 차에 올랐다. 누군가를 배려하기에는 여유가 없었다.

예전에 단체 여행일 때는 공항에 도착하면 당연하게 가이드가 인도하는 대로 이동했다. 이제 모든 것을 선택하고 더 긴장해서 여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 피부로 와 닿았다.

낯선 세계로 가는 서막인 듯 차창 밖으로 파스텔 톤의 붉은 노을이 환상적으로 펼쳐졌다.


리옹 역 근처 호텔은 도심에 있어 숙박비에 비해 방 크기는 작았다. 어둑해 졌지만 저녁을 해결하러 밖으로 나왔다. 근처 음식점엔 사람들이 노천 테이블에 앉아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실내보다는 밖을 더 선호하는 분위기였다. 우리 일행도 자연스럽게 합류해서 야외테이블에 자리를 잡아 현지 식으로 늦은 식사를 했다. 예전 여행에서는 숙소가 주로 시외였고 밤이 되면 돌아다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피곤했지만 어둑해진 상태에서 포도주를 마시며 여행시작 첫날의 살짝 들뜬 기분에 젖어들었다.


파리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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