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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고대 유적도시

by 박경화

05. 고대 유적도시 님


1. 이름도 몰랐던 도시를 알아가는 경험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도시의 몰랐던 모습을 알아간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아를에서 마주쳤던 혼자 여행 중인 한국인 아줌마는 아를보다 '님'이 좋았다고 했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고대유적이 남아있는 깨끗하고 여행하기 알찬 도시 님.

오래된 건물과 좁은 골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상점들은 세련되게 꾸며져 있어 조화를 이루었다. 석조건물 중간 중간에 설치된 다양한 간판들과 예쁜 등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포도주처럼 붉은 색 외관의 상점 앞 돌 위에 앉아 작은 엠프를 틀고 기타연주를 하는 악사. 그 모습과 노래 소리는 거리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었다.


님-2.jpg 님의 거리악사


‘브랑다드’를 먹어보기 위해 여행책자를 들고 레 알 시장을 찾아 나섰다. 대구를 우유에 으깨어 약간의 간을 해서 빵에 올려 먹는 요리. 님에서 만 맛볼 수 있다니 일행은 기대를 하며 책에 나온 추천 음식점을 찾아 헤맸다.


그때 자전거를 타고 가던 분이 멈추더니 우리가 보던 책을 보며 도움을 주려고 했다. 마른 체격에 베레모를 쓴 검소한 분위기의 아저씨는 미소가 순수하고 밝았다. 말은 잘 안 통했지만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식당 까지도 얘기해주면서 직접 시장 안으로 안내를 해주었다. 한 사람의 환한 웃음과 친절한 태도가 낯선 도시에서 커다란 고마움으로 다가 왔다.

레 알 시장은 실내에 자리 잡고 있었고 신선한 과일과 가공육 등 먹거리들이 많았다. 시장 안의 푸드 코트 스타일의 식당에 자리를 잡고 메뉴를 살펴봤다. 음식을 준비하고 서빙 하는 아가씨들의 패션과 분위기도 다양했다. 그 중에 한 명이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는지 주문 받을 때마다 대표로 왔고 나머지는 어색한 웃음만 띄었다. ‘브랑다드’는 대구 살 으깬 것을 빵 위에 살짝 바른 것이어서 생각과 달리 푸짐하지는 않았다.


님-브랑다드.jpg 님의 브랑다드



대표관광지인 아레나, 메종카레와 마뉴 탑의 입장을 묶어 할인해주는 티켓을 13유로에 샀다. 아레나 10유로, 메종카레 6유로, 마뉴 탑 3.5유로 인 입장료를 따로 구입하는 것 보다 저렴했다. 님 아레나는 1세기에 세워진 원형경기장이다. 약 2천 년 전에 검투경기장으로 지어진 건축물이 견고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대형 석조 아치들을 통과하면 가파른 계단식 좌석들이 배치된 타원형의 경기장이 나타났다. 지금도 투우경기와 공연 등 다양한 행사장으로 사용된다니 과거의 유산을 지속적으로 보수하면서 활용하는 지혜가 대단하다.


님원형경기장.jpg 님의 원형경기장


메종카레는 BC 16년에 석회암으로 지어진 직육면체 형태의 신전이다. 옛 모습을 온전히 보존한 고대 로마 신전으로는 세계에서 유일하다. 프랑스에 있는데 그리스의 파르테논을 떠올리게 하는 로마시대의 건물이라니 혼돈이 왔다. 건축 당시 님은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다. 아그리파의 아들들에게 헌정되었던 신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예배당, 거주지, 시청으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박물관이 되었다. 님의 역사와 함께 한 그 곳은 시민들의 휴식 공간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건물기둥 주변과 돌계단에 앉아 자유롭게 쉬고 있었다. 학생들이 모여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는 모습들도 눈에 띄었다.


우리 일행도 그늘에서 쉬면서 다음 일정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남편 친구가 좀 피곤하니 천천히 둘러보고 싶다며 각자 움직이면 어떻겠냐고 했다. 차를 렌트한 이후로 네 명이 함께 다녔지만 오후 시간은 두 집이 각자 원하는 대로 다녀도 좋을 것 같았다.


님-메종카레.jpg 님의 메종카레


남편과 나는 퐁텐 정원 쪽으로 갔다. 물길을 따라 걷는 길은 커다란 가로수 그늘이 드리워져 있어 시원했고 한가로웠다. 공원 안에는 18세기에 제작된 분수가 여러 개 있었는데 조각의 장식들이 화려했다. 9월 말인데 햇볕은 뜨거웠지만 백조들이 떠다니는 호수 풍경은 시원하게 느껴졌다. 공원 한 편에 있는 디안느 신전은 한 눈에 봐도 아주 오래된 석조 건물이었다. 무너진 돌들이 일부 쌓여져 있기도 했다. 2세기에 축조된 건축물을 보존하려는 프랑스인들의 노력이 느껴졌다.

메종 카레 앞에서 남편 친구 부부를 다시 만나 짧은 시간이지만 서로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혜진 아빠와 엄마는 그 근처에 있는 카레 다트 미술관을 다녀왔다고 했다. 유리로 된 현대식 건물인 미술관의 맨 위층 카페에서 시내 전경을 바라보며 쉴 수 있어서 좋았단다. 각자의 방식대로 시간을 보낸 후 통합권의 마지막 입장 장소인 마뉴 탑으로 향했다.

마뉴 탑 근처 마을에 차를 주차하고 언덕을 올랐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의 집 돌담장위로 나무들이 그림자를 만들었다. 이름 모를 나무에 달려있는 자잘한 빨간 열매들은 오후 햇빛을 받아 빛났다. 고즈넉한 마을에 유적지가 어디 있을 까 싶었는데 조금 더 올라가니 마뉴 탑이 보였다. 고대 성곽의 일부로 기원전 3세기에 카빌리에 산에 지어진 망루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권력을 드러내기 위해 지은 탑은 윗부분이 손상되어 현재는 32미터 높이다. 벽 틈에는 간간히 풀들이 자라있어 세월의 풍파를 드러내고 있었다. 내부 관람도 가능해서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갔더니 님의 전경이 한눈에 보였다.

마뉴 탑을 찾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았다. 높이 있는데다 아레나나 메종 카레에 비해서 지명도가 덜 한 탓도 있을 거다. 그래서 통합권을 끊어야 오게 되는 것 같다. 덕분에 마뉴 탑을 왔고 님 시가지를 바라보며 예상하지 못한 광경과 느낌을 받았다.


님-마뉴탑.jpg 님의 마뉴탑


‘밀리언 달러 베이비’라는 말이 있다. 영화제목이기도 한 그 단어는 ‘1센트짜리 물건을 파는 상점에서 예기치 않게 백만 달러 가치의 대상을 만난다’는 뜻이다. 그 대상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여행에서 만난 풍경이나 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름을 못 들어봤고 기대도 안 하고 간 ‘님’에서 고대 유적과 친근감 드는 풍경을 만난 시간들도 지워지지 않는 소중한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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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아레나는 긴 폭이 133미터, 짧은 폭이 101미터며 높이는 21미터인 타원형. 2만 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 1840년 프랑스 역사문화재로 등재.



2. 배려 또는 거리를 두며 함께 하는 여정


아비뇽에서 머물며 이틀째는 아를, 3일 째는 님을 다녀왔다. 저녁엔 숙소에서 성 안으로 걸어 들어가 교황청 앞 광장 부근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교황청 앞은 아비뇽에서 중심이었고 여러 번 오가니 익숙하게 여겨졌다. 여행 4일 째가 되니 음식을 시키는 것도 버스킹을 보는 것도 조금씩 적응이 됐다.


남편 친구 부부와 함께 여행하는 것도 별 마찰이 없었다. 약간의 의견 차는 있었다. 두 집이 공동 경비를 100불 씩 내서 식사비를 쓰다 보니 메뉴를 함께 통일 시켜야 했고 현금을 쓰는 대로 자주 채워 넣어야 했다. 혜진 아빠는 여행 경비를 거의 현금으로 가져왔지만 남편은 신용카르를 쓸 생각으로 와서 현금이 충분하지 않았다. 남편은 공동경비 사용하는 방식보다 각자 계산하자고 했다. 한 테이블에서 식사하며 두 집이 각자 시키고 계산도 별도로 한다는 것이 어색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여행을 앞으로 20일 이상 해야 하니 의사를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필요한 방법인 것 같았다. 남편 친구는 상황을 이해해 주었다. 주문을 각자 했고 남편은 신용 카드로, 혜진 아빠는 현금으로 계산 했다.

남편의 친구는 대학 동창이자 직장동료였다. 우리 부부 약혼식 때 사회를 봐준 절친이기도 하다. 직장 다니며 2년여 동안 주말을 이용해 친구 몇 명과 함께 벡두 대간을 종주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친구여서 서로 성격도 잘 파악하고 이해도 해주었다. 아이들 어렸을 때는 두 가족이 가끔 여행도 해서 자녀들도 친하게 지냈다. 혜진 엄마가 나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마음이 넓고 성격이 밝아서 만나면 편했다. 혜진 아빠가 해외지사 근무할 때부터 그 가족은 여행을 자주 다녔고 그 이후 부부가 해외 자유여행을 여러 번 다녔다. 혜진 엄마가 이번 여행에는 우리 부부와 동행하자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 성사된 여행에서 서로 상황에 맞추어 가면서 여행을 하게 되었다. 아비뇽에서 마지막 밤, 성곽길을 따라 걸으며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서로는 여행 동반자로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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