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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우아한 도시, 엑상프로방스

by 박경화

06. 우아한 도시, 엑상프로방스


1. 세잔의 숨결이 스며있는 도시

아비뇽에서 3박을 하고 엑상프로방스로 갔다.


“ 왜 계속 등이 깜빡이지?”


남편의 말에 모두 긴장을 했다. 차로 1시간 정도 걸려 이동하는 중에 자동차에 경고등이 켜졌다. 도착해서 찾아간 Herts 렌터카회사에서 좀 더 큰 새로운 차로 교체해주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숙소입구를 찾기 어려워 차로 골목을 몇 번 씩 돌면서 새로운 도시와 대면을 했다.


엑상프로방스는 그동안 갔던 아비뇽, 아를, 님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좀 더 규모가 크고 활기찬 느낌이 들었다. 다함께 도보로 거리를 나서니 커다란 분수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로통드 분수는 큰 규모로 시원스럽게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1860년에 세워졌으며 최초로 주철지지대를 사용한 분수다. 우아한 세 개의 석상은 법, 농업, 미술을 상징하며 미라보 거리, 마르세유, 아비뇽 방향을 향해 서있다. 분수 옆으로 넓게 펼쳐진 미라보 거리는 활기찼다. 높게 자란 가로수들 옆으로 수많은 상점과 까페가 들어서있었다.


남프랑스 주요 관광지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노천 테이블에서 담소를 나누며 먹고 마시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해 보였다. 실내보다는 실외를 선호해서 햇빛과 바람을 최대한 즐기려는 듯했다. 차나 술을 마시며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도 많았다.


엑상프로바스-로통드분수.jpg 엑상프로방스-로통드 분수



엑상프로방스거리.jpg 엑상프로방스 거리



엑상프로방스거리-1.jpg 엑상프로방스 노천 카페


일행은 관광청 사무소에 들러서 지도와 팜플렛을 받고 여행정보를 얻었다. 세잔(1839년~1906년)의 초기작품이 탄생한 저택인 '바스티드 뒤 자스 드부'는 관광청가이드와 돌아볼 수 있는 코스인데 인원이 제한되어 관람하기 힘들었다. 세잔의 화실이었던 '아틀리에 세잔'을 추천받아 5번 버스를 타고 그곳으로 갔다. 1901년 노년에 세잔이 엑상프로방스 외곽에 스튜디오를 차려 작업에 전념한 장소다. 관람은 정해진 시간에 제한된 인원이 2층에 있는 화실에 들어가 오디오로 설명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한국말 설명은 없어서 아쉬웠지만 한글로 설명을 간략히 쓴 종이를 받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남쪽으로 난 두 개의 창과 북쪽 벽 전체를 차지하는 큰 창, 북쪽 끄트머리에 정원을 향해 난 좁은 문을 통해 자연이 우리를 감싸는 채광을 재현한다.’


설명문에 나온 내용대로 아틀리에는 그림을 그리기 위한 최선의 설계가 고려된 것이다. 물병, 과일 등 소품들과 생전의 옷, 화구, 사다리 등이 그대로 비치되어 있었다. 사과가 담긴 접시와 하얀 천이 놓여 진 탁자는 세잔의 그림을 떠올리게 했다.


세잔아틀리에-1.jpg 세잔 아틀리에



화가 모리스 드니는

‘역사상 유명한 사과가 셋 있는데 첫째가 이브의 사과이고, 둘째가 뉴턴의 사과이며, 셋째가 세잔의 사과이다’라고 했다.


세잔은 사과를 많이 그리기도 했지만 마음을 담아 그렸다. 자신만의 형태와 색채로 사물의 본질 자체를 표현하기 위해 같은 대상을 반복해서 그렸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고 오르기도 했던 생트 빅투아르 산을 20여 년 동안 여러 차례 그렸다. 다양한 감정을 담아 그린 유화 44점, 수채화 43점이 남아 있다. 세잔은 탐구하는 자세와 성실함을 바탕으로 근대 회화의 길을 열었다.


아를이 고흐의 도시라면 엑상프로방스는 세잔의 도시다. 세잔은 엑상프로방스에서 태어나 성장한 후 파리와 고향을 오가며 그림을 그리다 엑상프로방스에서 생을 마감했다. 경제적 궁핍으로 처절했던 고흐와 풍족한 아버지의 후원을 받았던 세잔은 환경이 달랐지만 예술혼은 후세에 길이 남아 있다.


정원 테이블 의자에 앉아 가을바람을 느끼며 예술가의 삶을 생각해보는 시간도 좋았다. 그동안 숨 가쁘게 달려온 여행에서 잠시 쉼표 같은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긴장하며 운전을 했던 남편도 잠시 대중교통으로 다니게 되어 조금 느긋해 보였다. 혜진 아빠와 엄마도 아틀리에 관람을 하고 나와서 함께 음료수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다. 딱히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편안한 분위기 였다. 오후의 햇빛이 건물 벽에 나뭇잎 들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그곳에서 마냥 앉아 있어도 좋을 듯 싶었다



세잔아틀리에.jpg 세잔의 아틀리에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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