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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고흐의 도시 아를

by 박경화

04. 고흐의 도시 아를

1. 올곧고 처절했던 화가에게 꿈을 꾸게 한 도시

아비뇽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아를. 강렬한 햇빛을 받으며 도시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오래된 나무들이 늘어선 강둑 위로 캐리어를 끌고 걸어가는 여행자의 모습이 실루엣으로 보였다.


론강의 저기쯤이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그렸던 곳일까?


고흐 그림의 모델이 됐던 곳들의 실제 모습은 어떨지 내심 흥분되었다.


고흐가 머물렀던 도시라는 선입견이 강했지만 아를은 로마시대에 세워진 도시다. 옛 모습이 남아있는 작은 도시의 골목길은 많이 낡았지만 정겹기도 하고 예뻤다. 오래 된 건물들은 누추해 지기 쉬운데 돌로 지어서인지 세월의 흔적이 깃들어있어 자연스러웠다. 1세기부터 로마인들이 도시를 지배하며 건설한 아레나와 고대 극장, 목욕탕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유적지를 둘러봐도 좋겠지만 반나절 동안 고흐의 흔적을 찾아다니기도 버거울 것 같았다.

기대로 마음은 급했지만 점심 식사를 먼저 해결해야 했다. 야외 테라스에 자리 잡은 많은 사람들 틈에 자리를 잡았다. 메뉴판에는 불어만 있고 사진도 없어서 고르기가 아주 난감했다. ‘쿠스쿠스’라는 게 뭔지 모르고 시켰는데 막연히 상상했던 음식과 달랐지만 괜찮았다. 좁쌀알갱이와 야채, 고기완자 등을 재료로 한 음식이 질그릇에 담겨 나왔고 푸짐했다

미술관 ‘폰타시온 빈센트 반 고흐 아를’(고흐 재단)은 투명 창으로 지어진 현대건물이었다. 고흐 초기 작품들과 ‘씨 뿌리는 사람’ 이 전시되어 있었다. 고흐는 자신이 존경하는 화가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을 모작한 이후 자신만의 색감과 터치로 여러 점의 ‘씨 뿌리는 사람’을 그렸다. 경제적으로 힘들고 외로운 가운데서도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싶은 심정을 담았을 것이다.

고흐는 26세에 화가로 입문했고 35세인 1888년에 파리에서 아를로 왔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과거에 이런 행운을 누려본 적이 없다. 이곳의 자연은 정말 아름답다. 모든 것이 모든 곳이 그렇다. 하늘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파랗고 태양은 창백한 유황빛으로 반짝인다. 천상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푸른색과 노란색의 조합은 얼마나 부드럽고 매혹적인지. 도저히 그렇게 아름답게 그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 광경에 어지나 열중했던지 규칙 따위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은 채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자신을 지원하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두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고 했다.

하나는 색채에 대한 탐구이고 다른 하나는 물질적인 어려움이라고.

1프랑의 우유 한잔 값에 연연하고 물감 값을 걱정하며 동생에게 마음의 빚을 갚고자 했지만 그림은 팔리지 않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그림을 그린 캔버스가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캔버스보다 더 가치가 있다.’


편지에서 독백처럼 외치던 말은 지금 고흐의 그림 가치를 생각할 떼 안타깝게 여겨진다. 그의 평생에 유일하게 팔린 유화작품은 ‘안나 보흐’라는 여인이 400프랑에 산 ‘붉은 포도밭’이다. 언젠가 자신의 그림이 물감 값과 생활비보다 더 많은 가치를 지니게 될 거라고 스스로 주문을 걸었지만 출구는 보이지 않았고 몸과 마음은 피폐해져 갔다. 화가공동체를 꿈꾸었고 고갱과 공동생활도 시도했지만 정신병까지 겪게 되었다.

‘에스파스 반 고흐’는 고흐가 머물렀던 병원으로 지금은 문화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노란 기둥이 있는 흰색 건물과 잘 가꾸어진 정원 풍경이 ‘아를의 병원에서’ 그림과 거의 유사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밤의 카페 테라스'를 그렸던 카페 앞에도 그림 모사품이 놓여있고 관광객도 많았다. 원래 벽은 노란색이 아니었지만 불빛으로 그렇게 보였다는데 지금은 아예 노란색 칠을 했다고 한다. 밤이 아니어서 그런지 실제는 건물 앞에 놓여진 그림과는 느낌이 달랐다. 같은 장소라도 언제 누가 어떤 마음으로 봤는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알리스캉의 가로수길'과 '아를의 랑그로와 다리'의 배경이 된 곳도 그림 속의 배경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실망스러울 정도로 평범하게 느껴졌다.


‘내가 더 못나고, 늙고, 아프고 가난해질수록 나는 잘 배치된, 눈부시게 빛나는 훌륭한 색채로 그 복수를 하고 싶어진다.’


편지 글처럼 그는 어려운 현실에서 더욱 환상적인 색채의 세상을 화폭에 담았는지도 몰랐다. 좋은 계절은 예술 활동에 더 영감을 주는 것 같다. ‘밤의 카페 테라스‘,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은 1888년 9월에 그려진 작품들이다. 마침 그 곳을 갔을 때가 9월 말이어서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20190918_171007.jpg 밤의 카페 테라스


고흐는 아를에 15개월간 머물며 200여점의 역작을 남겼다. 예민하고 올곧아서 고독하며 생각이 깊었던 천재화가 고흐는 시대를 앞서갔다. 그의 작품들은 그가 죽은 후 11년 뒤 71점의 작품이 파리에서 전시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살아생전 ’화가는 그림으로 말을 한다‘고 했듯이 그는 별을 보며 꿈꾸었던 세계에 공감해주는 후세의 사람들과 뒤늦게 소통을 하고 있다.


고흐의 발자취로 아를은 수많은 관광객이 사랑하는 도시가 되었다. 지독한 절망감에 자기 독백처럼 남겼던 편지들도 그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데 많은 자료가 되고 있다. 예술가의 기록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되새겨보게 되었다


고흐정신병원.jpg 고흐가 입원했던 아를의 정신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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