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설레임의 시작, 아비뇽 역
리옹 역으로 가기위해 서둘러 나왔는데 거리는 새벽부터 활기찼다. 동트기 전인데도 정장차림으로 부지런히 빵집을 찾는 사람들도 많았다. 환하게 불이 켜진 리옹 역은 TGV를 타기 위한 사람들로 붐볐다. 역 내의 PAUL이라는 빵집은 프랑스의 인기 있는 체인점인지 사람들이 줄을 많이 서 있었다. 앉을 곳이 마땅치 않아 다른 곳으로 가서 간단히 차와 빵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매장 내 탁자에서도 종이봉투에 받아온 빵을 꺼내 먹는 방식이었고 비닐봉지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환경 보호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았다.
대합실 모니터에서 승강장 번호가 뜰 때를 기다렸다가 기차에 올랐다. 여행캐리어 보관할 곳을 못 찾아 우왕좌왕하다가 좌석 뒤 공간에 놓고 한 숨 돌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열차 칸 사이에도 짐을 두는 곳이 있었다. 분실 우려도 있어 가까이 두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대로 두기로 했다. 일행은 마주보고 앉았는데 통로 옆 좌석에는 장발에 수염을 기른 청년이 혼자 앉아 있었다. 모자 아래로 길게 흘러내린 금발머리가 예사로워 보이지 않았다. 휴대용 스케치 용구를 이용해서 드로잉 하는 모습으로 봐서 예술가인 듯싶었다. 나도 그림을 배우고 있는 중이어서 스케치 북을 꺼내고 싶었지만 쑥스럽고 망설여졌다. 여행 드로잉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도구를 펼치고 시작하는 것이라는 말이 생각나서 용기를 내어 종이를 펼쳤다.
창밖으로는 프랑스의 농촌 풍경이 스쳐지나갔다. 9월 말, 너른 평야는 푸르기보다는 누런 색조로 탈색되어 가고 있었다. 드문드문 나무들과 붉은색 기와지붕 집들이 보였다. 2시간 30여분 동안 이동하면서 지나간 시간들이 떠올랐다. 32년간의 교직생활을 명퇴하고 4년이 지났다. 사회생활에서 벗어나면 여행다운 여행을 해보고 싶었다. 그런 여행의 정의가 애매했지만 시간적 여유도 있고 좀 더 자유로운 일정일 것이다.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이 외국여행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여행자유화가 되면서 선생님들도 학교에서 방학 중 연수형태로 외국을 다녀왔다. 하지만 아이 셋을 낳고 키우며 시간을 내기는 쉽지 않았다. 처음 해외여행을 한 것은 1996년 선생님들과 서유럽 5개국을 15일간 가는 일정이었다. 가족들을 동행한 분들도 있었다. 나도 그때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첫째 딸과 함께 영국,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를 다녀왔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가 봤다고 말할 수 있지만 파리와 로마의 유명한 관광지 몇 군데를 찍고 오는 식이었다.
이번 여행은 남프랑스와 이태리의 한 도시에서 3박 또는 4박을 하며 인근 도시도 가는 일정이었다. 꼼꼼한 계획보다는 한 곳에서 머물다 떠날 때쯤 다음 장소에 대한 일정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큰 틀은 작년에 딸과 남프랑스 자유여행을 했던 혜진 엄마가 잡았다.
남프랑스 여행에서 처음 도착할 아비뇽은 어떤 곳일지. 떠나오기 전에 여행책자를 샀지만 자세히 읽지는 않았다. 미리 조사하면 아는 만큼 보이는 효과가 있지만 모르고 가면 예상치 못한 느낌을 경험하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니 게을렀다는 생각도 들었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는데 그림의 아비뇽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거리 이름이라고 하니 가는 곳과는 관련이 없었다.
아비뇽 역은 투명하고 높은 천정을 통해 채광이 비쳐 들어와 밝았다. 긴장도 풀고 본격적인 남프랑스 여행에 대한 대화도 나눌 겸 카페로 들어갔다. 창 밖 건너편 벤치에 모자를 눌러쓰고 핸드폰을 보는 아가씨가 앉아 있었다. 그 앞에는 강아지가 주인을 온통 믿고 편안하게 납작 엎드려 있었다. 길 위에서 어떤 여행이 펼쳐질지 미지수일지라도 둘이 의지할 수 있어 힘이 될 것 같았다. 역사 안에 놓여 진 피아노로 한 남자가 다가가더니 연주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모여들어 음악을 감상했다. 열린 문 사이로 아름다운 곡이 흘러 들어왔다. 남자는 아쉬움을 남긴 채 자연스럽게 일어나 가방을 들고 가던 길을 갔다. 역 안에서 펼쳐지는 광경들은 자유로웠다.
아비뇽 역 밖으로 나선 순간 강렬한 햇빛의 느낌은 좀 선선했던 파리와 완전히 달랐다. 계속 품어왔던 남프랑스의 햇빛에 대한 궁금증이 떠오르면서 바로 이런 느낌인가 싶었다. 아주 커다란 화분들에 심어진 분홍색 유도화는 낯선 도시에 대한 긴장감을 풀어주었다. 여렸을 때 집에서 봤던 꽃을 먼 도시에서 만나서 였던 것 같다.
여행계획을 세울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려 했지만 렌터카를 빌리기로 했다남 프랑스 내에서는 차로 이동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출발 직전 계획을 변경했다. 하루 120유로(1유로는 약 1,310원)정도로 네 명이 움직이니까 경제적일 수도 있었다. 운전은 남편이 기꺼이 ‘김기사’를 하겠다고 자처했다. 혜진 엄마는 서울에서 네비게이션을 예약해서 들고 왔는데 한국말로 안내가 나와서 더 편리하게 쓸 수 있었다. 세세하게 준비를 많이 해서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