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에서 파리로 와서 이틀째. 아침 일찍 남편과 오르세 미술관으로 갔다.
예약을 못해서 직접 가기위해 서둘러서 지하철을 타러 갔다.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복잡하게 오고 가는 무리의 사람들 표정을 보고 순간 놀랐다. 어디서 많이 본 표정들이었다. 우리나라 지하철에서 본 무표정한 사람들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인종은 다르지만 분위기는 마찬가지였다. 일하러가거나 공부를 하러가거나 일상을 유지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여행지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밝고 웃음을 지고 있다. 카메라 앞에서는 모두 입꼬리를 최대한 올리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이른 아침 지하철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피곤하고 무겁다. 어쩔 수 없는 삶의 무게인가 보다.
지하철 환승이 복잡해서 가는데 시간이 걸렸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전철을 타고 가다가 국철로 환승하기 위해 동선이 어려운 상태였던 것 같다. 노선표를 살펴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쉽지가 않았다. 마음 좋아 보이는 흑인 아저씨가 가르쳐준대로 갔다가 아니어서 시간이 지체되기도 했다. 한 젊은이가 휴대폰으로 검색을 하더니 알려주어서 층과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는 탑승구간을 간신히 찾아갈 수 있었다.
그래도 여유 있게 도착해 오르세 미술관이 개장하기 한시간전쯤 부터 기다렸다. 이미 줄선 사람들도 있지만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다.
밀레, 세잔, 마네, 모네, 르노아르, 고흐, 고갱 등 미술교과서에서 봤던 화가들의 작품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기다릴 각오가 단단히 돼있었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 기계가 있어서 설명을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때 철도역으로 건설되었다가 1980년 미술관으로 개조되어 주로 19세기 인상파 및 후기인상파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오르세 미술관. 규모도 엄청 크고 훌륭한 작품들도 많았다.
어린 학생들이 작품 앞에 모여앉아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메모하는 모습들은 인상적이고 부러웠다. 그토록 생생한 현장수업을 할 수 있으니 프랑스인들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할 것 같다.
오디오기계로설명을 들으며 작품들을 보니까 기대가 되면서도 힘들었다. 거의 다섯 시간을 봤는데도 못 본 게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다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는 장소에 앉아있었다. 쉬어가며 관람을 해야 할 만큼 그림 감상을 위해 에너지가 필요했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북두칠성이 반짝이는 강가 현장에 있는 듯 환상적인 느낌이 들었다.
‘지나간 역사에 가정이 없다’지만 고흐에 대해서 ‘만약에’라는 생각을 안 해볼 수 없었다. 이렇게 지금 많은 사람들이 고흐의 작품을 사랑하고 그의 삶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으니 말이다.
‘고흐가 자살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오래 살아서 작품성을 인정받고 부를 누렸더라면’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은 그의 일생을 생각해 본다면 그런 상상을 하게 된다. 만약에 그가 힘든 시기를 극복하고 성공을 맞이했다면 개인적으로는 다행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후세 사람들이 애틋한 마음으로 고흐의 작품들을 더욱 사랑하는 것은 그의 불행했던 삶이 한 요소를 제공하는 것도 같다. 아이러니와 감탄이 뒤섞인 마음으로 ‘별이 빛나는 밤’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말로만 듣던 작품들을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었다. 파리에 오면 꼭 들러볼만한 곳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