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경화 Feb 04. 2022

선명한 색을 품은 호수 같은 바닷가

이국의 바다가 연상되는 시산도


섬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다. 풍랑이 가로 막으면 속절없이 돌아서야 한다.백령도를 가려다 3시간을 기다리고 발길을 돌린 적이 있었다. 섬 여행 동호회에서 주최한 거문도와 백도 여행도 그랬다. 비가 와서 배가 못 뜨자 대신 여수에서 묵게 되었다. 섬을 좋아해서인지 사람들 마음이 너그러웠다. 한 회원은 숙소를 내어주고 몇몇은 회를 사다 저녁상을 차렸다. 기존 회원들 끼리 친숙했지만 처음 합류한 사람에게도 푸근하게 대해주었다. ’레인보우님‘, ’카라님‘ 하며 서로 아이디를 불렀는데 내 명칭은 ’그린티‘였다. SNS상의 명칭을 부르는 것이 어색하면서도 재미있었다.     

 여행에는 변수가 있다. 비가 그치자 고흥 녹동 항에서 차로 갈 수 있는 소록도를 갔다. 말로만 들었던 소록도는 소록대교로 쉽게 갈 수 있었다. 곳곳에 한센병 환자에 대한 아픈 과거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다음 행선지로 배로 갈 수 있는 가까운 섬을 찾다가 시산도를 가게 되었다. 연륙도인 거금도의 오천 항에서 페리 호를 타고 25분 걸리는 섬이었다.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지만 바닷바람을 맞으며 가는 동안 기대감이 들었다. 선착장이 가까워지자 정박된 배 들이 많이 보였다. ’샛구무 마을‘ 입구에는 ’詩山어서오십시오‘라고 새겨진 커다란 안내 석이 맞이해주었다. 섬 주위를 둘러보기 위해 걷다가 방파제로 연결된 살푸섬 쪽으로 갔다. 거의 바위로 이루어진 척박한 작은 섬에서 꿋꿋하게 자라나는 몇 그루의 소나무들이 애처롭기도 하고 가상하기도 했다. 건너편에는 소나무가 우거진 송도(솔섬)가 보였다. 방파제 끝에 설치된 등대들도 인상적이었다. 빨간 색과 노란 색, 흰색 등대들이 어우러진 섬 풍경은 ’시인의 섬‘이라는 명칭과 어울렸다.     

 일행들은 조금은 가파른 길을 띠라 봉오산 정상을 향해 걸었다. 5월, 섬에서 부는 바람은 육지와 느낌이 조금은 달랐다. 걷다가 뒤돌아보니 선명하게 푸른 바다가 보였다. 바람에서 바다가 느껴졌다. 맑은 하늘 아래 신록을 벗하며 걸으니 저절로 노래를 흥얼거리게 되었다. 모두 한 마음이었나 보다. 정상의 정자에서 쉬어 가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 자연이 주는 너그러움 속에서 여행 하루 만에 오랜 친구들처럼  하나가 되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완만했다. 마을이 가까워지자 곳곳에 김 양식 도구들이 눈에 띄었다. 대나무 기둥들이 쌓여 있었고 사람들은 모여 앉아 그물 손질 작업을 했다. 한 할머니에게 어떤 일을 하시느냐고 여쭤보니 포자를 붙일 김발을 손보고 있다고 하셨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꽤 있었다.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이 어촌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생소하게 느껴졌지만 변화의 한 현상일 것이다. EBS 방송에서 했던 ’아빠 찾아 삼만 리‘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캄보디아 농촌에서 초 중생 자매와 엄마가 강구 항 어선에서 일하는 아빠를 찾아오는 내용이었다. 선천적으로 다리에 장애가 있는 작은 딸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아빠는 타지에서 고된 바닷일을 했다. 새벽 2시에 나가 깜깜한 겨울 밤바다에서 그물을 걷으며 가족 생각에 눈물을 글썽거렸다. 먼 길을 달려와 서로 부둥켜안고 울던 가족들의 눈물. 8년이란 세월을 떨어져 살다가 또 4년 후를 기약하는 가족들의 애환에 가슴이 먹먹했다. 김 양식 도구들을 손질하는 이 들도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일을 하고 있으리라.      

 시산도에서 생산되는 김은 품질이 좋다고 한다. 어렸을 때 엄마가 연탄불에 석쇠를 놓고 김을 구워주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참기름을 발라 소금을 솔솔 뿌려 연탄불에 직접 구운 두툼한 김. 요즘은 인스턴트 김도 많은데 그 맛이 안 난다. 최근에는 김을 이용한 김부각 같은 다양한 제품들도 개발되었다. 먹는 것은 쉽지만 완제품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가 있을 것인가? 문득 교사 초년시절, 완도에서 서울로 고등학교 유학을 온 한 여학생도 생각이 났다. 면담 중 부모님이 김 양식을 하시는데 겨울에 손이 다 트도록  엄청 고생을 하신다고 했다. 방학 중에 고향으로 내려간 학생의 부모로부터 소포가 왔다. 누런 봉지 속에 담긴 것은 손수 만든 김이었다. 그 분들이 얼마나 힘들게 만든 것일까? 귀한 김을 먹으며 그 분들의 정이 느껴졌고 수고를 생각하면 미안하기도 했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비봉 길을 따라 상산 재 쪽으로 내려와 다시 바닷가 쪽으로 향했다.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했다. 오후의 선명한 바다 빛은 이국에 온 느낌을 주었다. 푸른색과 녹색의 조화. 내해에 떠있는 배들. 그 배들은 김 양식 어장 관리선 들이었다. 처음 배에서 내렸을 때 얼핏 봤던 창고와 바닷가에 쌓여진 김 양식 도구들도 새롭게 여겨졌다. 아름다우면서도 한편 삶의 현장인 곳. 잠시 들른 사람은 낭만적인 곳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치열한 생존의 장소인 것이다. 배는 다시 오천항을 향해 떠났다. 예정을 바꾸어 간 그 곳에서 뚜렷한 이미지의 바다풍경 기억을 지니게 되었다.          

-----     

시산도는 송도에서 바라본 마을 지형이 활모양으로 생겨서 활 시(矢)자를 써서 ’矢山島‘로 불리다 1995년 군의회의 의결을 거쳐 ’詩山島‘로 개명이 되었다 ’시인의 섬‘이라는 뜻을 지니며 40여 가구가 있다. 시산도의 동쪽에는 샛구무 마을이 있고 서쪽에는 섯금 마을이 있다 시산도 주민들은 김을 대량생산하여 소득이 높다고 한다. 김 양식은 기둥을 설치하는 지주식과 그물을 띄우는 부류식이 있다 시산도에서는 부류 식을 많이 사용한다. 시산도의 봉오 산은 높이가 179m이다. 비봉 길은 샛구무에서 봉오산 정상을 지나 상산재에 이르는 1,560m의 길이다.      



이전 04화 기록의 승리, 수원화성 정리의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