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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화 Feb 06. 2022

찻잔 너머 두물머리가 바라보이는 절

운길산  수종사



 경의중앙선을 타고 망우역 근처에 갔다가 내친김에 운길산역으로 가서 수종사로 향했다. 전에 가족들과 승용차로 간 적이 있었지만 대중교통으로 혼자 가보고 싶어서였다.      

 운길산역에서 내려 걷다가 가파른 아스팔트길을 한참 올라가다 보니 땀도 나고 심장 박동 수가 빨라졌다. ‘차로 쉽게 올라갈 수도 있는데 굳이 걷는 게 좋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힘들게 걸어 올라가면 목적지에 도착해서 감흥이 더 클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게 되었다. 어떤 장소를 갈 때 “사전지식을 지니고 가는 것과 무작정 가는 것 중 무엇이 나은 가?‘ 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전에 수종사를 왔을 때는 신문에 나온 기사와 사진을 보고 끌려서 왔었다. 전망이 탁 트인 다실 ’삼정헌‘에서 흐린 날에 스님과 담소하는 여행객의 뒷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여행 장소는 언제 누구와 어떤 상태로 가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기에 상상과 일치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아무 생각 없이 갔을 때 예기치 않은 느낌들을 만날 수 도 있다.     

 ‘차로 가는 것과 걸어가는 것’, ‘사전지식을 갖고 가는 것과 무작정 가는 것’ 등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아까 딸에게서 온 문자가 생각났다. 딸은 내게 도서관에서 ‘’나음보다 다름‘이라는 책을 빌려다 달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무엇이 나은가를 따지기 보다는 다른 것을 인정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올라가지만 맹숭할 수도 있고 어렵게 올라가지만 감동이 클 수도 있다. 미리 알고 가면 알차게 보지만 무작정 가면 예기치 않은 것을 보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뭐가 나을 것도 없이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제목에서 ‘보다’라는 단어를 써서 이미 비교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음과 다름’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듯했다. 그러다 보니 책 제목에 대해 판단하는 자체도 내 스스로 비교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데 어디서 ‘딱 딱’ 소리가 들렸다. 근접한 거리의 나무 위에서 딱따구리가 나무껍질을 쪼아대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딱따구리를 처음 보았다. 딱따구리는 인기척도 못 느꼈는지 머리를 뒤로 젖혔다가 앞으로 미는 것을 반복했다. 한번 정해진 지점을 정해 끝장을 내겠다는 식으로 부리로 열심히 나무를 찍어댔다. 딱, 딱 하는 소리가 세서 부리가 아플 것 같았다. 딱따구리를 볼 때는 ‘무엇이 낫다, 다르다’라는 생각을 떠나서 그냥 딱따구리를 볼 뿐이었다. 딱따구리를 볼 것이라는 기대와 상상이 전혀 없었기에 아무 생각 없이 봤던 것 같다.     

 좀 더 걸어 올라가다보니 수종사 일주문이 나왔다. 거기에서도 좀 더 가파른 흙길을 올라가야 절에 다다를 수 있다. 입구에 있는 스피커에서 불경을 독송하는 소리가 들렸다. ‘집착하게 되는 의심과 생각‘에 대한 내용이었다. 걸어 올라오며 비교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기에 불경에 귀를 기울였다.     

 수종사에 다다라서 대웅전과 팔각오층석탑 등을 둘러봤다. 세조께서 오대산 상원사에서 피부병을 치료하고 오시다가 이 지점에 이르러 바위굴에서 떨어지는 청명한 종소리의 약수를 발견하고 ‘수종 (水種)’이라 이름 짓고 절을 세우게 했다고 한다. 한편에는 500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웅장하게 서있었다. 수종사는 운길산 610미터 중턱에 있기 때문에 탁 트인 전망이 인상적이다. 멀리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 물 머리가 한눈에 보인다. 이모든 것을 사진에 담고 싶었지만 핸드폰 밧데리가 없어서 찍을 수가 없었다. 아침에 여유 밧데리를 챙겨 나온다고 했지만 충전이 안 된 상태여서 핸드폰은 감감 무소식이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표지판의 설명을 읽거나 경치를 제대로 보기도 전에 스마트폰을 눌러대며 사진 찍기에 바빴을 것이다. 어차피 포기하는 마음으로 표지판도 더 자세히 읽어보고 경치도 차분히 바라봤다. 그러면서 ‘사진을 찍는 다면 많이 기록을 남기지만 느낌에 충실하지 않고 사진을 못 찍으면 아쉽지만 현실에 충실하다’라는 생각을 했다. 또 나는 어느 것이 나은가 비교를 하고 있었다. “나음과 다름”을 다시 한 번 새겨 보았다.     

 수종사를 찾은 것은 ‘삼정 헌’에 대한 기대가 더 큰 비중이 있었다. 그 전망이 탁 트인 찻집에 혼자 앉았을 때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여럿과 혼자’라는 것도 역시 다르다. ‘혼자’라는 것을 선택해서 온 나는 용기를 내 차를 주문했다. 차 마시는 법을 설명해주시던 친절한 보살님은 ‘삼정 헌’의 녹차는 무료라고 했다. ‘아 그렇구나.’ 나는 배운 대로 차를 다기에 따라 마시며 벽에 기대서 넓은 창밖의 강 풍경을 바라봤다. 겨울 오후의 햇빛이 따사로웠다. 나중에 이날을 생각하면 오후 햇빛을 느끼며 다실에서 혼자 넓은 창밖을     바라보던 따뜻한 기억이 한 컷의 이미지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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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종사는 세조 5년(1459년)에 창건된 절이다. 



some days are diamonds  (AWESOME BOOKS)     

#드로잉 # 여행 #여행드로잉 #수채화 #수종사 #두물머리 #CANSON 300g #SHINHAN water co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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