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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화 Feb 25. 2022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   

6월, 수국이 탐스러운 천리포수목원



애틋하게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은 아름답다. 비록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닐지라도. 나무를 사랑한 사람 민 병갈. 그 분은 이국땅에서 일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수목원을 조성하셨다. 민병갈 박사는 바닷가 황무지에 전 재산과 시간을 쏟아 부어 자신의 정원을 가꾸었다. 세계 곳곳에서 식물 들을 구해와 나무들의 천국을 만들었다. 각양각색의 목련, 무궁화, 동백나무, 호랑가시나무, 단풍나무 들. 그는 외로우면서도 행복했을 것이다. 천리포 수목원은 그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인 것이다.     

 그 분의 어머니는 아들이 한국인으로의 귀화하는 것을 처음에는 반대하셨다. 한옥을 연상시키는 기념관에는 결국 아들의 뜻을 받아들여 함께 한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기념관 앞으로 수국이 탐스럽게 핀 6월의 호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푸른빛과 보랏빛이 감도는 수국의 빛은 신비로웠다.      

 누구나 한번쯤 마당 있는 집을 꿈꾸었으리라. 나 역시 중학교 때 살았던 부암동 집을 떠올리면 나무가 있는 그런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언덕을 한참 올라가면 주택가와 뚝 떨어진 산 밑에 자리 잡은 노란색 일식집. 마당 입구에는 두 그루의 소나무가 있었다. 하나는 곧게 높이 솟아 있었고 하나는 멋스럽게 굽어져 있었다. 봄이 되면 담장 따라 심어져 있는 개나리 나무에서 노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어서 분홍빛의 앵두나무 꽃들이 환하게 피어났고 보랏빛 라일락 꽃 들이 강한 향기와 함께 피어났다. 지붕위의 연 보라색 등나무 꽃들이 주렁주렁 늘어졌고 집 건물 앞에 아치를 이룬 찔레꽃이 장미꽃 보다는 작은 올망졸망한 모양으로 피어났다. 감나무도 작은 하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는데 비가 오면 감꽃들이 떨어지고 햇빛이 나면 감잎들은 참기름을 발라놓은 쑥떡처럼 윤기 나게 반짝였다. 복숭아꽃도 꽃분홍색으로 예뻤고 작은 열매를 맺으며 익어갔다. 대학생이 되어 한번 찾아가 봤더니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마당엔 잔디를 깔았고 관상수들이 심어져 있어 자연미가 없어졌다. 더 나중에 갔을 때 그곳에는 연립주택이 들어서 있었다. 그 집은 내 추억 속에서 한 페이지로 남아있을 뿐이다. 지금도 나지막한 남향 언덕땅이 주어진다면 그때 있었던 나무들을 심어서 그런 마당을 가꾸고 싶다.     

 민병갈 박사는 유난히 목련을 좋아하셨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다양한 목련나무들을 심으셨다. 2002년 세상을 떠나며 ‘라즈베리펀’ 목련나무 아래 수목장으로 묻히셨고 수목원을 우리나라에 조건 없이 물려주셨다. 수목원 서편의 바닷길에서 그 분의 사랑이 바람결에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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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Carl Ferris Miller라는 미 해군장교 청년은 한국의 풍광과 문화를 사랑하게 된다. 1962년, 태안반도 서북쪽 천리포 해안 3천 평에 나무를 심기 시작해서 18만평 규모의 수목원을 조성했다. 천리포 수목원에는 16,000여종의 식물이 자라고 700여 종류가 넘는 목련 속 나무가 있다. 2000년에는 국제수목학회로부터 아시아 최초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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