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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화 Feb 02. 2022

기록의 승리, 수원화성 정리의궤

정조의 숨결이 깃든 수원화성


내리는 비로 나뭇잎들이 생기를 더해가는 5월의 수원 화성. 수원행궁 나지막한 뒷산의 정자 ‘미로한정’에서 행궁 쪽을 바라보았다. 한 무리의 초등학생들이 한옥건물의 마루에 자리를 잡았다. 문화해설사가 설명을 하자 학생들은 초반에 집중해서 듣더니 동작들이 흐트러지며 지루해 했다. 그 내용이 어린 학생들에게 얼마큼 기억될지 모르지만 나중에  큰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딸아이가 초등학생 때 유치원생인 아들까지 데리고 함께 견학을 온 적이 있었다. 학부모와 함께하는 행사였는데 학교에서 대절한 버스 안에서 선생님은 설명을 하셨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세상을 뜨는 비극을 어린 나이에 본 정조는 당당하게 왕이 되어 융릉을 조성하고 수원 화성을 축조했다. 정조의 아픔과 효심을 상상하며 우리 아이들도 감동하면 좋겠다 싶어 바라보니 둘 다 입까지 벌리고 잠에 빠져있었다. 기대한 내가 과욕이었나 싶어서 웃음이 났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아이들은 그때 수원 화성에 갔었던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견학을 끝내고 단체로 식당에 들어가 먹었던 갈비탕이 맛있었다는 것은 인상적이었나 보다.     

 초등학생들이 형형색색의 우산을 펴고 자리를 옮기자 빗물이 바닥에 고인 행궁은 잠시 호젓한 느낌이 들었다.      

 행궁을 나와 남문인 팔달문에서 서장대 쪽으로 성벽 안쪽을 따라 걸었다. 길 왼쪽엔 정교하고 아름다운 성곽을 따라 돌계단이 놓여 졌고 오른쪽으로는 곧게 뻗은 소나무 사이로 오솔길이 이어졌다. 안개가 드리워진 오르막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며 역사 속으로 빠져드는 듯 했다. 수원 화성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때 많은 부분이 파손되었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수원화성(정리의궤) 기록에 의해 복원이 가능했기 때문이라니 기록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정조가 ‘장용영’을 직접 지휘한 서장대를 지나 화서문으로 향했다. 내리막언덕길에서 바라본 서북공심돈 쪽 풍경은 아름다웠다. 수원화성은 옛 건물과 현존 건물이 공존해서 성 안과 밖을 구별하기 어려웠다. 여러 번 걸어야 익숙해 질 것 같다.     

 정조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큰 뜻을 접어야 했던 아쉬움이 깃든 수원화성. 개인의 삶이든 나라의 운명이든 예정대로 되지는 않는다. 수원화성을 걸으며 시간여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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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22대 왕 정조는 실학을 중시했고 당파를 초월한 혁신정치를 실행했다. 화성행궁의 ‘노래당’(老來堂)은 왕위에서 물러난 후 어머니를 모시고 노후를 보내려 지은 것이다. 봉수당’(奉壽堂)은 혜경궁 홍씨를 위해 회갑연을 연 곳이다. 수원화성은 200여 년 전에 정조의 명령으로 2년 만에 채제공과 정약용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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