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보는 의미- 니야마

안으로 향하는 감각

by 김덕분

나에게 머무는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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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조용한 시간, 70도의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며 매트를 편다.

스탠드 조명을 켜고, 공간을 정돈하고, 오일 향을 내며, 숨을 고르고, 몸의 중심을 세운다.

이 단순한 반복이 하루를 지탱하는 의식이 된다


요가는 나를 꾸미는 행위가 아니라

나를 깨끗하게 비워내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비워야 다시 채워지고, 멈춰야 비로소 흐른다.



비우면 맑아진다. - 사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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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차(Śauca)는 깨끗함의 미학이다.

몸을 씻듯 마음을 닦는 일, 공간을 정리하듯 생각을 정돈하는 일이다.


책상 위의 먼지를 닦아내듯, 나는 마음의 먼지를 하나씩 턴다.

어제의 말, 미묘한 감정의 찌꺼기, 사소한 불만들…

그 모든 것은 쌓이면 탁해지고, 호흡의 흐름을 막는다.


요가는 말한다.

“깨끗함은 상태가 아니라 선택이다.”

청정은 완벽한 맑음이 아니라, 다시 맑아지려는 의지다.



충분함은 이미 내 안에 있다. - 산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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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사(Santoṣa)는 ‘만족’을 뜻한다.

하지만 그것은 무기력한 체념이 아니라, 지금의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적극적인 평화다.


요가 수련 중 흔들리는 자세를 붙잡으려 애쓸 때, 나는 가끔 멈춘다.

균형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지금의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 본다.


하루 중에도 그런 순간들이 있다.

아이의 웃음소리, 한 잔의 허브티 향, 바람이 커튼을 흔드는 미세한 움직임.

그 사소한 감각 속에서 나는 “이미 충분하다”는 문장을 배운다.



열정과 꾸준함, 나를 단련하는 불 - 타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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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파스(Tapas)는 ‘불의 수련’이다.

게으름과 두려움을 태워내는 내면의 열정, 매일 같은 자세를 반복하면서도 어제와 다른 감각을 발견하려는 끈기의 불꽃이다.


나는 새벽마다 수련을 한다.

때론 몸이 무겁고, 때론 마음이 지쳐도 매트를 펴는 그 순간, 불씨처럼 의지가 되살아난다.


타파스는 무리한 의지가 아니라 스스로를 단련하며 부드럽게 타오르는 에너지다.

꾸준함 속에 나를 단단히 세우는 불. 그 불이 식지 않도록 나는 매일 나를 깨운다.



나를 읽는 시간 - 스바드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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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드야야(Svādhyāya)는 자기 탐구, 즉 ‘나라는 책을 읽는 일’이다.


명상 중 떠오르는 생각, 몸의 저항, 숨의 흔들림 하나하나가 모두 나를 알려주는 문장이다.


요즘 나는 일기 대신 ‘감각 기록’을 남긴다.

오늘 내 마음이 머문 곳, 어떤 말이 나를 멈추게 했는지, 어떤 향이 나를 웃게 했는지.

그 작은 기록들이 모여 나의 이야기책이 된다.



통제 대신 신뢰 - 이시와라 프라니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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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와라 프라니다나(Iśvara Praṇidhāna)는 삶의 흐름에 자신을 내어 맡기는 믿음이다.

요가 수련 중, 힘으로 자세를 완성하려 할수록 몸은 더 굳어지고 숨은 짧아진다.

그러나 한 번의 완전한 내쉼으로, 나는 배운다.


통제하려 하지 않아도 삶은 자기 리듬으로 흐른다는 것을.


모든 것을 내려놓고 호흡을 맡기면, 몸은 자연스럽게 정렬되고, 마음은 그 자리에 머문다.

그때 나는 깨닫는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멈춤이 아니라, 삶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허락하는 일임을



덕분에, 나를 돌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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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는 나를 꾸미는 일이 아니라,

나를 다시 만나는 과정이다.

사우차로 마음을 씻고,

산토사로 오늘을 감사히 품고,

타파스로 나를 단단히 세우며,

스바드야야로 내면을 탐구하고,

이시와라 프라니다나로 삶을 믿는다.

<나를 돌보는 길>

나를 돌보는 일은

결국 세상을 부드럽게 돌보는 일과 다르지 않다.

내 안의 평온이 흘러나와

누군가의 하루를 따뜻하게 덮을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는 숨을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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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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