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으로 향하는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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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를 하며 깨달은 건, 몸이란 단순히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머무는 첫 번째 집이라는 사실이다.
몸은 의식이 깃드는 내면의 공간이며, 세상과의 접점이다.
하루 중 가장 나와 가까운 공간은 내 몸이다.
호흡이 드나드는 문, 감정이 머무는 방, 기억이 쌓인 벽들.
몸을 돌보는 일은, 결국 나의 삶 전체를 돌보는 일이다.
아사나는 그 집을 단단히 세우고, 때로는 고요히 비우는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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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의 가훈은 “바르게 걷자, 함께 걷자, 세상아 걷자.”
이 문장에는 ‘바름’의 소중함이 담겨 있다.
삶에서도, 수련에서도 바름은 중심을 세우는 힘이다.
요가의 자세를 이야기할 때, 많은 이들이 형태를 떠올린다. 하지만 자세는 ‘모양’이 아니라 태도다.
몸을 세우면 마음도 곧게 선다.
균형을 잃으면 중심이 흔들린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서 있는가가, 내 자세의 본질을 결정한다.
타다아사나는 ‘산’의 자세이고, 브릭샤아사나는 ‘나무’의 자세다.
산의 단단함 위에 한 다리를 들어 올려 허벅지 안쪽에 올리고, 두 팔을 하늘로 합장할 때, 나는 산과 나무의 친구가 된다.
“자세를 바로 세우는 일은, 삶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그 한마디가 내 하루의 중심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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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카아사나(까마귀 자세)를 처음 배웠을 때, 나는 자꾸 중심을 잃고 앞으로 넘어졌다.
두 손으로 몸을 지탱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마음의 균형’을 요구했다.
어느 날 인왕산 바위 위에서 수련하던 중, 나는 문득 그 중심을 찾았다.
손바닥 아래로 느껴지는 차가운 바위의 결, 그 위를 바쁘게 오가는 개미, 살짝 스치는 바람의 방향.
모든 감각이 하나로 모였을 때 몸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균형은 근육의 힘이 아니라 감각의 깨어 있음에서 온다는 것을.
몸이 대지를 느끼고, 마음이 그 흐름을 따라갈 때 비로소 안정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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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나 수련은 단순한 동작이 아니다.
그건 몸이 생각하는 언어이자, 감각으로 사고하는 철학이다.
몸이 열리면 마음도 열린다.
어깨를 부드럽게 풀어내면, 그동안 움켜쥐고 있던 감정이 스르르 풀린다.
척추를 세우면, 마음속의 불안이 조금씩 가라앉는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오늘의 피로, 슬픔, 기쁨이 모두 그 안에 기록된다.
그래서 요가의 자세는 단순히 ‘동작’이 아니라
자기 인식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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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멈춤’과 ‘흐름’이 동시에 존재하는 찰나를 만난다.
움직이고 있지만 고요하고, 정지해 있지만 살아 있는 듯한 순간.
그때 나는 안다.
아사나는 멈추는 동작이 아니라 현재의 흐름 안에 머무는 일이라는 것을.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나를 채우고, 내쉴 때마다 나를 비운다.
그 단순한 리듬이 몸과 마음의 경계를 천천히 허물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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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는 몸을 다스리는 훈련이 아니라
몸을 통해 나를 만나는 수행이다.
몸의 무게를 느끼며 땅과 연결되고,
호흡의 흐름을 따라 삶과 이어진다.
아사나를 통해 몸을 가꾸고,
몸을 통해 감각을 깨우며,
감각을 통해 나를 자각한다.
오늘의 몸이 곧 오늘의 나다.
굳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 몸이 나를 지탱하고 있으니,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