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으로 향하는 감각
요가의 길 위에서 감각은 언제나 세상을 향해 열려 있다.
빛을 보고, 냄새를 맡고, 소리를 듣고, 촉감을 느끼며 세상과 끊임없이 만난다.
그러나 프라티야하라는 그 반대의 길이다.
바깥으로 흘러가던 감각의 흐름을 잠시 멈추어, 다시 안으로 돌려보는 연습이다.
이 수행은 세상을 외면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을 온전히 느끼기 위한 준비다.
세상의 소음 속에서도 내 안의 침묵을 들을 수 있는 감각…
그게 바로 프라티야하라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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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수많은 자극 속을 살아간다.
핸드폰의 알림, 도시의 불빛, 사람의 목소리…감각은 쉼 없이 바깥을 향해 출렁인다.
그 파도는 어느새 마음을 흔들고, 생각을 번잡하게 만든다.
나는 특히 ‘사람의 목소리’에 예민하다.
소리의 높낮이, 말의 결, 말 사이의 공기까지 …그 모든 것이 나의 감각을 자극한다.
최근 짝꿍과의 대화에서도 그 감각은 쉽게 감정으로 이어졌다.
중재적인 말 한마디가 자존심을 스치고, 그 여운이 길게 남아 침묵과 냉담으로 번져갔다.
그럴 때 나는 잠시 입을 닫는다.
목의 무거워짐, 부풀어 오름, 뜨거움이 느껴진다.
감정의 표면이 일렁이는 동안, 그 밑에서 무엇이 나를 움직였는지를 바라본다.
이럴 때마다 비슈다 차크라를 진정시키는 부장가사나를 한다.
때로는 음악을 틀고, 한 줄의 글귀를 찾아 나를 달랜다.
감각이 감정으로, 감정이 사유로 이어지는 그 길 위에서 나는 다시 나의 호흡을 찾기보다 짝꿍의 호흡을 먼저 더 올린다. 그 호흡의 속도를 느끼며 내 마음의 리듬을 낮춘다.
조용히 눈을 감고, 크고 깊고 느린 호흡을 한다.
들려오던 소리가 멀어지고, 감정이 천천히 골반 아래로 흘러내린다.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잠시 쉬게 하는 일….
그렇게 내 안의 파도는 잔잔해지고, 마음의 호수에는 다시 고요가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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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은 문(門)이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다섯 개의 문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드나든다.
프라티야하라는 그 문을 닫는 일이 아니라, 문턱에서 감각에 잠시 쉼을 주는 일이다.
눈을 감으면 시선이 안으로 향하고, 귀를 닫으면 심장의 박동이 들린다.
혀끝의 맛은 사라지고, 피부의 온기가 살아난다.
감각의 방향이 바깥에서 안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때 몸 안에는 또 다른 ‘공간’이 드러난다.
숨이 드나드는 폐의 리듬, 심장이 고요히 두드리는 박자, 내장과 근육이 움직이는 미세한 진동들…
그 모든 것이 나의 내면의 ‘자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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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티야하라의 순간은 잠시 세상과 거리를 두는 시간이다.
그 거리는 단절이 아니라, 회복의 틈이다.
요가 수련 중에, 사바아사나를 취하면 몸의 무게가 땅으로 천천히 내려앉는다.
피부의 경계가 사라지고, 몸의 중심이 다시 숨결 속으로 녹아든다.
감각이 제자리를 찾아가며, 마음은 부드럽게 풀린다.
감각을 안으로 모은다는 건 세상으로부터 멀어지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과의 관계를 새롭게 짓는 일이다.
프라티야하라의 고요는, 모든 감각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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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을 향하던 감각이 안으로 향할 때,
그 안에는 나의 본래 목소리가 들린다.
그건 크지 않다.
아주 잔잔하고 투명한 울림이다.
덕분에요가의 수련은
그 미세한 울림을 듣는 일이다.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가 맞닿는 지점…
그곳에서 몸은 쉼을 얻고, 마음은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한다.
감각을 안으로 모은다는 건,
결국 다시 세상을 느끼기 위한 숨 고르기다.
오늘 나는 잠시 세상을 뒤로하고,
내 안의 고요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