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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뚠뚠 Sep 01. 2021

체험 삶과 육아의 현장

이렇게 10년 키웠어요 마흔 번째 이야기

지금은 방송에서 자주 볼 수 없는 데다가 본인의 이름보다는 아카데미상 수상 배우 윤여정 씨의  전 남편으로 더 유명한 조영남 씨가 오랜 시간 동안 MC를 봐온 프로그램이 있다. 한때 <TV는 사랑을 싣고>와 쌍벽을 이루며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온 프로그램, 바로 <체험 삶의 현장>이다. 이 글을 쓰기 직전까지 <삶의 체험 현장>인지 <체험 삶의 현장>인지 헷갈렸으나 검색 결과 정확한 프로그램명은 <체험 삶의 현장>이었다.     


연예인 출연자들이 전국 각지의 일터로 가서 일을 하고 받아온 일당으로 좋은 일을 하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인데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건 조영남 아저씨가 "여기는 대한민국~ 어쩌고" 하면 출연자들이 유니콘 모형을 타고 올라가 위에 있는 모금함 안에 일당 봉투를 넣는 것으로 끝나는 엔딩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회사 홍보 차원에서도 그렇고 좋은 곳에 쓴다는 명분 때문에도 그랬겠지만 보통의 경우 시세보다 조금 더 후하게 쳐주는 경우가 많아 용돈이 넉넉지 않았던 대학생 시절 TV를 보며 저런 데서 아르바이트하면 돈도 많이 벌고 좋겠다, 요즘 말로 꿀이겠다는 철없는 생각도 했더랬다.     


프로그램의 핵심이자 재미 포인트는 바로 연예인들이 평소에 해보지 않은 육체노동을 하며 손에 익지 않은 일을 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며 개고생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는데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는 땀의 의미나 노동의 신성함을 배운다 뭐 그런 것이었겠지만 방송가에 입문하고 나서 선배들에게 듣기론 그 당시 땡땡이치며 대충대충 일하는 척만 하는 연예인도 많았다는 카더라 통신을 듣고 실망했던 기억도 있다. 그러고 보니 이 프로그램의 전성기는 주로 90년대였으니 젊은 아빠들은 저 아재가 무슨 소린가 싶을 수도 있겠다.


각설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그동안 경험을 돌아보건대 육아에 있어 이러한 현장 체험 놀이가 무척 재미있고 의미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딸아이는 특히나 예전부터 어디를 가면 꼭 '체험'할 게 있는지 물어보는 편이다. 엄마 아빠가 경치 좋은 데라고 데려가서 “봐봐 멋지지 거기 좀 서봐 사진 좀 찍게. 웃어야지 활짝 웃어야 사진이 이쁘게 나오지~ ” 하면서 끌고 다니면 얼마 안가 이미 입이 대빨 나와 있다. “하나도 안 멋있어. 하나도 재미없어.” 이렇게 툴툴거리면서. 그래서 아이를 꼬드길만한 요소가 꼭  있어야 하는데 주로 무엇을 만들거나 경험해보는 것을 나들이 코스 중에 하나로 꼭 집어넣었었다.         

 

그래서 어떤 체험이 있냐고? 이쯤에서 10년 육아 노하우를 대방출하겠다. 가성비, 접근성, 만족도 등을 고려해 육아 체험 현장 BEST 3를 꼽아보았다.     


우선 첫 번째는 '피자 만들기' 체험이다. 말 그대로 피자를 만드는 것이다. 아이가 비교적 어릴 때인 5~6살 때 하면 적당한 체험이라고 할 수 있다. '피자 만들기 되게 어렵고 복잡할 거 같은데 어떻게 애가 만들지?' 란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TV에서 봤던 것처럼 밀가루 반죽을 해서 공중에 휘휘 돌려서 도우를 만들고 그런 건 절대 없다. 가보면 정말 딱 애가 만들기 좋게 준비를 해놓았다. 그분들은 돈 받고 영업하는 프로들이다. 괜히 프로가 아니다. 믿으면 된다. 양파며 햄이며 올리브며 토핑 할 재료들도 종류별로 딱 적당한 크기로 잘려있는데 그저 아이와 함께 준비된 도우에 토핑을 '마음대로' 올리면 된다. 여기서 마음대로가 중요한데 아이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피자를 만드는 거다 라고 설명을 해주면 더 집중해서 하는 것 같기도 했다.   

   

토핑이 끝난 후 화덕에 넣어 구워 나오면 피자가 완성되게 되는데... 갓 구운 피자의 맛이란 배달해서 먹는 피자랑 차원이 다르다. 물론 남으면 싸서 집에 갖고 올 수도 있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피자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에는 치즈체험도 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 치즈의 역사나 만들어지는 원리에 대해 설명해주기도 하고 스트링 치즈를 직접 만들어볼 수도 있어서 그 역시 유익하고 신기한 체험이었다. 사실 아이 아니었으면 내가 어디 가서 피자나 치즈를 직접 만들어보겠는가 아니 만드는 걸 구경이나 해보겠는가?     


또 이런 피자 체험을 하는 곳은 보통 교외에 자리 잡은 경우가 많은데 또 보통 그런 경우 토끼나 양 같은 동물들이 주변에 있어 먹이주기 체험도 가능한 곳이 많다. 이것도 아이들이 좋아하니 '저거 당근 마트에서 사면 얼마나 한다고' 같은 생각하지 말고 이왕 나온 거 아이에게 먹이주기 체험도 시켜주자. 참고로 케이크 만들기 체험도 이와 유사한 점이 많으니 아이가 피자 만들기에 재미를 느꼈다면 만족도가 높을 가능성이 크므로 한번 도전해볼 만하겠다.          


두 번째는 '비누 만들기' 체험이다. 비누 만들기 체험은 아이가 비교적 좀 큰 다음, 그래도 초등학생은 되어야 적당하다고 할 수 있는데 피자의 경우와 달리 집중력과 섬세함이 꽤나 요구되기 때문이다. 만드는 방법은 역시나 무척 간단하다.     


기본적으로 비누 용액에 색과 향을 첨가하고 원하는 틀에 조심스레 부은 다음 굳히면 끝! 너무 간단해서 재미없다 싶을 수도 있는데 다양한 모양의 틀을 골라 만드는 재미도 있고 색이나 향을 여러 가지로 혼합하여 만들 수도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만들게 된다.      


그리고 비누 만들기 체험의 결정적인 장점은 바로 극강의 실용성을 자랑한다는 점이다. 사실 피자의 경우 어떻게 보면 돈 주고 사 먹는 것보다 직접 만들어 먹는 편이 훨씬 비싸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먹으려고만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데 비누 만들기는 이와 유사한 천연비누를 살 경우 값이 만만치 않아 직접 만드는 게 경제적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아닌 말로 비누 안 쓰는 집 없지 않은가. 집에 갖고 와서 알뜰살뜰 한참 동안 참 잘 썼다. 방부제를 넣지 않은 천연 비누라 빨리 써야 한다고 해서 열심히 썼는데 아빠들을 위한 박하향 잔뜩 때려 박은 비누는 특히 여름에 강추한다. TMI지만 샴푸 쓰는 걸 줄여보고자 일반 비누로 머리를 감으면 금세 간지러워져 못 참는 편인데 이 비누로는 여름 내내 별 탈 없이 머리를 잘 감았다. 꽤 많은 양의 비누를 만들게되니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일 것이다.     


마지막 체험은 '블루베리 따기' 체험이다. 농사가 힘든 건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고 물을 주고 하는 지난한 과정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수확 체험은 이런 모든 과정은 다 생략하고 오로지 결실을 얻는 과정만 진행되니 압축적으로 농사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블루베리 체험 농장에 가면 먼저 투명 플라스틱 포장용기를 나눠주는데 그 안에 담을 수 있을 만큼 블루베리를 따서 담으면 된다. 솔직히 100% 믿지는 못하겠지만 농약을 뿌리지 않았으므로 중간에 얼마든지 따먹어도 된다고 했다. 다 비슷하게 생겼는데 나무마다 블루베리 맛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 신기했다. 하나씩 하나씩 똑 똑 따는 재미가 나름 있다. 그것도 농사일이라고 힘들긴 하지만 힘들다 싶으면 어느새 한통이 다 채워져 있어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역시나 블루베리 따기로 끝나지는 않는데 현장에서 딴 블루베리로 빙수를 만들어 먹을 수 있어서 참 맛있고 시원하게 먹은 기억이 있다. 아 노동 후에 먹는 새참의 맛이 이런 것인가!     


이와 유사한 체험으로는 딸기나 귤 따기 등이 있는데 경험해본 바로는 블루베리 따기 체험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다른 과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흔하지 않고 어쩐지 유니크하다고나 할까? 그나저나 이러한 과일 따기 체험 상품은 꽤 괜찮은 아이디어란 생각이 들었다. 체험의 명목으로 내 손 하나 까딱 않고 사람들이 돈까지 내고 직접 따러 오는 것이니 일석이조일 것이고 또 사람들이 직접 따서 가져가니 유통까지 한 번에 해결되는 것 아닌가 싶은 것이다. 무식해서 하는 소리이니 관련 업계 종사자분들은 널리 이해해주시길.     


이외에도 더 많은 체험들이 있겠지만 우리 아이가 경험해본 것 중 베스트 체험은 이 정도인 것 같다. 이러한 체험놀이의 장점은 교육 목적을 비롯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리 아빠들이 가장 솔깃해할 만한 것은 바로 시간이 잘 간다는 것이다. 일단 차를 타고 어딜 멀리 가야 하고 거기에 체험하는 시간까지 합치면 보통 3~4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체험시간이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데 그 시간 동안 다른 사람이 아주 정성껏 아이를 대신 봐준다고 해도 무방하니 편하게 쉴 수도 있다. 아!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 아빠가 마냥 뒷짐 지고 놀아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때그때 즐거워하는 아이의 소중한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야 하니 긴장들 늦추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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