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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뚠뚠 Sep 02. 2021

멍멍이가 좋아요

이렇게 10년 키웠어요 마흔한 번째 이야기

어린 시절 우리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의 이름은 '복실이'였다.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키우게 됐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름처럼 갈색 털이 복실복실한, 어떤 종인지도 도통 알 수 없는 자타공인 순수 혈통 '똥개'였다. 그 시절 이 땅에 살던 모든 똥개들이 그러했듯이 당시 우리가 살던 집 마당에서 주로 묶여 지냈으며 요즘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료가 아닌 식구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먹었었다.    

 

내 인생 첫 반려동물이다 보니 추억도 많다. 복실이는 암컷이었는데 며칠 동안 어머니 지인  분집에 머물다 오더니 갑자기 임신을 해서 귀여운 새끼를 두 마리나 낳았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게 나름 복실이에겐 신혼여행이었나 보다. 그 새끼 두 마리를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집에 주었는데 자기 새끼를 보내고선 밤새 아우~아우~하며 울던 소리도 기억이 난다.      


이래저래 무척이나 정을 많이 준 강아지였는데 국민학교 2학년 무렵 사건이 발생한다. 학교에 다녀왔더니 복실이가 없는 것이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곤 엄마에게 물었더니 개장수에게 파셨단다. 아니 이럴 수가 가족 같은 복실이를 팔다니. 도대체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몇 시간 동안 정말 목을 놓고 울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어린 마음에 엄마가 평소 갖고 싶었던 장난감을 사주기로 하셔서 진정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반려동물과의 첫사랑은 아픔만 남기고 말았다.

    

두 번째 인연을 맺은 강아지는 '레인'이다. 세월이 한참 흘러 성인이 된 후 이야기다. 술자리를 마치고 집에 가다가 음료수를 사 마시기 위해 구멍가게에 들렀는데 마침 그 가게에 새끼 강아지들이 꼬물거리고 있었다. 너무 귀여워 주인 분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참 강아지가 이쁘다고 했더니 주인 분께서 그렇게 이쁘면 한 마리 데려가라는 것이었다. 그때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술김이었는지 뭐였는지 충동적으로 집에 데려오고 말았다. 당시 부모님과 같이 살았는데 다음 날 아침 부모님께서는 무슨 강아지냐며 얼른 데려다주라고 하셨고 나는 무슨 고집인지 키울 수 있다며 뭉개기에 들어갔다. 그때 데려다줬어야 하는 건데...   

  

이름은 레인이라고 지었다. 똑똑하라고 브레인. 성이 '브' 이름이 '레인'이었다. 나중에 동물병원에 가서 선생님께 종이 뭐냐고 물어보니 딱히 대답을 못하시는 걸로 봐서 레인이도 순수 똥개인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내가 알아서 키우겠단 초심은 사리지고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레인이를 돌보는 횟수가 줄어들어 결국 부모님의 일거리만 늘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때까지는 레인이는 우리 집에서 함께 잘살았다. 한편으로는 부모님도 적적하신데 레인이가 있으면 도움이 될 거라는 자기 합리화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얼마 후 당시 주택이었던 집을 팔고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이사를 하자마자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입원을 하실 일이 있었는데 집을 비운 며칠 동안 혼자 남은 레인이가 적응을 하지 못하고 엄청나게 짖어 대 이웃주민들의 원성을 듣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 뒤로 사람이 집에 없을 때마다 짖어서 이웃주민이 현관문에 시끄러워 못살겠다는 쪽지를 붙이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결혼을 하여 분가를 하였고 가끔 가다 부모님 댁을 찾아뵐 때 레인이 간식이나 옷을 사가는 걸로 면피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 댁에 갔더니 레인이가 없었다. 동네 분께 레인이를 입양 보냈다는 말씀을 하셨다. 연로하신 부모님께서 돌보기에 힘에 부치셨을 뿐 아니라 아파트에서 강아지를 키운다는 건 또 다른 얘기였다, 당연히 내가 책임지지 못할 짓을 했기에 속으로는 섭섭했지만 겉으로는 절대 그 마음을 드러낼 수 없었고 드러내서도 안됐다. 한동안 TV에 강아지가 나오면 레인이 생각이 나시는지 거실에서 보시다가 방으로 쓱 들어가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더욱 죄스럽기만 했다. 두 번째 반려견과의 추억도 이렇게 새드엔딩으로 끝나고 말았다.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책임감


몇 년 전 동물 자유연대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번 키우기 시작한 개를 죽을 때까지 키우는 비율이 고작 12%라고 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5년 미만이라는 답변이 무려 69%라는 것이다. 10마리 중 7마리는 무슨 이유에서건 얼마 되지 않아 첫 주인에게 버림을 받는다는 얘기다. 이런 결과에서 나 역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책임 지지 못할 짓을 했다는 죄책감. 그 죄책감이 너무 커서 한동안 꿈에서 레인이가 보일 지경이었다. 한 번은 꿈에서 레인이를 만났는데 나한테 안기더니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면서 괜찮아 괜찮아라며 위로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잠이 깨서 펑펑 울었던 기억도 있다. 그만큼 다시는 내 인생에서 강아지를 키우는 우는 범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그 얘기는 곧 책임지지 못할 짓은 다신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 모든 어린아이들이 그렇듯이 우리 딸아이도 언젠가부터 멍멍이를 키우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당연히 나의 대답은 노! 동네에서 돌아다니는 강아지를 마주치면 “멍멍이다~” 그러면서 한참을 쳐다보기도 하고 지인분이 키우는 강아지를 보러 집에 가서 한동안 강아지와 놀다 올 정도로 좋아했다.

     

아이가 제대로 이해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참 동안 강아지를 키운다는 건 어마어마한 책임감이 있어야 하는 거다, 책임질 자신이 없으면 시작을 말아야 한다, 게다가 강아지는 갖고 노는 장난감이나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다, 소중한 생명이다, 생각보다 엄청 손이 많이 간다 등의 설명을 해주었다. 어지간하면 다 받아주는 아빠가 강아지 문제만큼은 완강히 반대를 하니 나름 스스로도 일정 부분 포기를 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내와 딸에게는 모두 개털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개가 있는 곳에 조금만 오래 있으면 눈이 빨개지는 증상이 나타나는 거였다. 이 알레르기 덕분에 개를 키우며 안 된다는 나의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리기도 했다.   


아이의 갈증을 풀어준 애견카페  


그래도 매번 강아지가 보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아이가 안쓰러워 무슨 방법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집 앞에 애견카페를 알게 되어 찾아가 보았다. 가기 전에 병원에서 처방받은 알레르기용 안약을 눈에 넣고 가는 수고는 물론이었다. 애견호텔을 겸한 곳인데 본인의 강아지를 데려가지 않아도 입장이 되는 곳이었고 카페에서 원래 사는 강아지 및 투숙객 강아지들이 한데 어우러져 나름 주인분의 엄격한 교육과 통제 속에 지내고 있었다. 그곳에 가면 각양각색의 외모와 성격의 강아지들을 볼 수 있는데 이렇게라도 가끔 애견카페에 가서 아이의 갈증을 채워주니 나름 효과가 있어 당장 강아지를 키우자는 얘기는 줄어들게 되었다.   

  

아마도 많은 집에서 비슷한 양상일 것 같은데 여러 가지 이유로 강아지 키우기가 여의치 않은 집에서는 애견카페 가기를 적극 추천하고 싶다. 조금만 근교로 나가면 탁 트인 곳도 있고 각종 음료며 다양한 음식들도 팔기 때문에 하루 나들이 코스로도 적당하다. 한참 강아지를 찾는 아이를 데려가면 부모와 아이 모두 만족도가 높을 것이다. 물론 아이와 강아지 모두를 위해 정해진 안전수칙을 준수하는 것은 필수사항이다.     


언제 다시 딸아이가 강아지를 키우고 싶단 노래를 부르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회사 선배 중 한 분은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음에도 아이들이 너무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졸라서 키우게 됐는데 그 덕분에 맨날 집에만 가면 눈이 퉁퉁 붓는다는 웃픈 얘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또 주변에서 들은 말로는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엄마와 아이 모두에게 강아지를 키우는 게 차라리 도움이 된다고도 한다.   

  

나의 다짐이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만약에 아주 만약에 딸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강아지를 맞아들이게 되면 나와 우리 가족 모두 평생 책임지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강아지가 특성상 우리보다 세상을 먼저 떠나게 될 것이 분명한데 그런 일이 닥쳐도 그 아픔을 이겨낼 수 있다는 각오까지 해야 할 것이다.


요즘엔 딸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는 나중에 어른이 되면 큰집을 사서 마당에서 커다란 강아지를 키울 거란다. 아빠가 지금은 안 된다고 하니 딴에는 대안을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 아빠가 그거까지 막을 순 없겠다. 그때 되면 아빠가 너희 집에 가서 개똥도 치우고 사료도 주고 산책도 시킬게. 그래야 복실이, 레인이 한테도 덜 미안할 것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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