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유난히 후배 하나가 시무룩했다. 평소 이뻐하던 후배라. 맘이 쓰여서 둘이 점심 먹자고 제안했다. 근처 돈가스 집에 가서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친구는 두 달 전 결혼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싱글벙글했는데. 그늘의 정체는 바로 어머니였다. 아들만 있는 후배 집과 딸만 있는 후배 아내의 집. 딱 보아도 견적이 나온다. 후배는 처가댁의 밝은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본가에 가서도 자랑도 많이 했는데 어느 순간 어머니의 차가운 공기를 느꼈다고 했다. 평소에는 그냥 데면데면했던 어머니가 '요즘 전화는 안 하냐', '아예 그 집 사람 되었네' 하며 서운함을 자주 표현하고, 그 영향이 아내에게까지 미친다고 했다.
최근에 후배 어머니가 아내에게 연락했는데, 바빠서 연락을 못 받아 나중에 연락하니 전화를 안 받으셨다고 했다. 자기 딴에는 중재한다고 어머니가 일이 있었겠지 했다가 불벼락이 내려쳤다고 했다. 이쪽 편을 들면 저쪽 편이 난리 나고, 저쪽 편을 들면 이쪽 편이 난리 나고 중간에 힘들어 죽겠다는데, 왠지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예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일단 후배에게는 이쪽에는 이쪽 편을, 저쪽에는 저쪽 편을 들으면 좋겠다는 말을 건네고 결혼하면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안심을 시켰다. 그때 후배가 "계장님도 그러셨어요?"라고 물었다.
나? 나야말로 결혼 초부터 갈등이 시작되었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어머니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장모님(지금은 목사님이 되셨다) 어쩌면 갈등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교회를 다니겠다는 약속을 하고 처가댁에 간신히 결혼 허락을 받았다. 나는 종교 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 결혼하면 다 이해하고 해결될 줄 알았다. 나의 큰 불찰이었다. 결혼 후 첫제사. 아내는 절을 할 수 없다고 했고, 어머니는 절대 해야 한다고 했다. 중간에 낀 나는 이쪽에서 저쪽 입장을, 저쪽에서 이쪽 입장을 이해시키려 하다 결국 양쪽에서 욕만 잔뜩 얻어먹고 관계만 더욱 악화시켰다. 미리 사전에 조율하지 못하고, 어물쩍 넘어가려고 했던 전적인 나의 잘못이었다.
한동안 본가에는 가지도 못하고, 집에서는 갈등의 골만 깊어졌다. 그러다 혼자 곰곰이 생각했다. 선택을 해야 했다. 아내와 어머니. 왜 결혼하면 남자에게는 '효자' DNA가 발동되는지. 당연히 아내를 택해야 하는데, 어머니께 불효하는 마음이 자꾸 들어 괴로웠다. 결국 나는 아내의 입장을 택했다. 그날로 집에 가서 아내는 절은 할 수 없고, 교회도 함께 다닌다는 말씀을 드렸다. 당장 호적 파고 나가라는 험한 말을 들은 채 집을 나섰다. 그렇게 몇 년간 갈등은 지속하였고.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어머니도 받아들이고, 아내도 나름 어머니와 잘 지내고 있다. (전적으로 내 생각이다) 지금이야 흘러간 추억 같지만, 그때는 어디 한강이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지금도 어머니는 서운할 일이 있으면, "나는 이미 너에 대한 마음 다 비웠다." 하시는데. 나는 속으로 '아직도 포기 안 하셨나.' 하며 놀란다.
아들은 결혼하면 남편이 된다. 그 시기가 되면 어머니와 독립이 필요하다. 나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물론 부모와 자식 간의 연을 끊으라는 것은 절대 아니고 건강한 분리가 필요하다. 그 과정이 매끄럽고 자연스러우면 좋으련만 진통은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퇴근 무렵. 또 다른 후배가 시무룩했다. 그 후배는 다음 달 결혼할 예비 신랑이다. 무슨 일 있냐 물어보니, 혼수 문제로 어머니가 지나가는 말로 한소리 했는데 그 얘기를 듣고 예비 신부가 나중에 노발대발했단다. 그 후배는 어머니의 견해를 대변하려다 핵폭탄을 맞았다고 했다. 오빠는 누구 편이냐며 결혼도 다시 생각해봐야겠다는 말에 본인도 화내면서 큰 싸움이 되었다고 했다. 오늘 다들 왜 이러는지. 퇴근 무렵이라. 긴 얘기는 나누지 못했지만 나는 속으로 '너도 이제 시작되었구나.' 하며 내일 점심을 같이하기로 했다.
결혼 후 어머니와 아들. 시어머니와 며느리. 그로 인한 아내와 남편. 어쩌면 이 관계는 얽기고 설킨 실타래 같다. 풀려고 노력하면 더 꼬이고. 그렇다고 안 풀 수도 없고. 그러나 한 가지 깨달은 점은. 아내와 있을 땐 아내의 입장을 최대한 이해하고. 어머니와 있을 땐 어머니의 입장을 최대한 들어주고. 섣부른 대변은 하지 않기. 늘 그 사이에서 아슬한 줄타기를 하지만, 이 또한 남편이자 결혼한 아들의 숙명이 너리 하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