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나는 아들과 격투기 놀이를 한다. 말이 격투 기지 소위 말하는 막 싸움이다. 주먹치기, 발차기, 씨름, 레슬링, 목조르기는 기본이고 꼬집기, 머리 잡아당기기, 똥집은 선택사항이다. 방에 이불 깔아놓고 한 판 시작하면 선반 위에 놓인 장난감이 폭포처럼 떨어지기도 하고, 베개와 이불은 순식간에 그 형태를 잃어버린다. 늘 마지막은 나의 필살기 목조르기로 아들의 항복을 받아냈다.
어제저녁 식사를 마친 후 아내의 명령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왔다. 집 문을 열자마자 아들이 달려왔다.
“아빠. 오늘 한판 하자. 내가 준비 끝냈으니 따라와!”
아들의 눈에서 불덩이가 이글거렸다. 살짝 두려웠다. 방학 사이 훌쩍 키가 커서 어느새 내 목까지 차올랐다. 밥도 매끼 두 공기를 해치우더니 몸집도 곰처럼 커졌다. 그러나 나는 절대 물러설 수 없다. 이것은 아버지의 자존심이다. 요즘 ‘나이 듦’ 현상으로 인해 급격히 체력이 저하되었지만, 애써 감추며 링 안으로 걸어갔다.
방 안에는 이불이 두 겹으로 깔려 있었다. 주변 거추장스러운 물건들은 이미 다 사라졌다. 이불 위에서 둘 다 공격 자세를 취했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나의 공격이 먼저 시작되었다. 늘 그렇듯 나는 두 손으로 아들의 어깨를 잡았다. 발 걸기 위한 사전 작업이다. 어라. 그런데 아들이 바로 양팔을 펼치더니 어깨에 놓인 내 손을 쳐냈다. 순간 당황했다. 하지만 전열을 가다듬고, 이번에는 양팔을 뻗어 아들 몸통을 감싸 쥐었다. 그리고 춤추듯 좌우로 흔들었다. 중심을 잃고 넘어뜨리려는 시도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들이 팔꿈치로 내 등을 사정없이 내려쳤다. 나는 ‘악’하는 비명을 내지르며 잡은 손을 놓고, 스프링처럼 튕겼다. 두 번의 공격이 모두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위기였다. 곧바로 이어지는 아들의 공격. 강제로 내 손을 깍지 끼더니 나를 벽으로 세차게 밀어냈다. 나는 ‘쿵쿵’ 소리와 함께 벽에 부딪혔다. 등에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이대로 당할 순 없었다. 유연하게 사이드 스텝을 밟고, 아들 등 뒤로 돌아서서 옆구리를 잡고 발을 걸어 그대로 넘어트렸다. 그리고 연결 동작으로 목조르기를 시도했다. 온 힘을 팔에 집중했다. 아들은 성난 황소처럼 저항했지만 결국 항복을 외쳤다. 팔을 놓으며 ‘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얼굴에 송송 맺힌 땀방울을 걷어내고자, 화장실로 향하다 아내를 만났다.
“여보. 윤성이가 장난 아니네. 언제 저리 컸을까. 이제 내가 못 당하겠어.”
“아니. 벌써? 하긴 요즘 아주 듬직해졌지. 덩치도 커지고. 쯧쯧. 잘 되었네. 이제 싸움 놀이는 그만 해요. 다칠까 늘 걱정이야.”
아들은 늘 아버지를 이기고 싶어 한다. 굳이 오래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꺼내지 않아도. 나도 그랬다. 어릴 적 아버지가 팔씨름하자고 할 때면 언제나 이기고 싶어서 안달 났었다. 중학교에 올라갈 무렵, 어느새 나의 힘은 아버지와 대등해졌다. 아니 이상이었다. 나의 커진 힘을 확인한 이후부터 아버지는 더는 팔씨름하자고 안 하셨다. 아들은 점점 힘이 세지고, 아버지는 점점 힘이 약해진다. 이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다. 아들의 성장을 기뻐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묘한 감정에 빠져든다. 힘 다 빠진 늙은 아버지를 이제는 아들이 따르지 않을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걱정이다. 겉모습만 사람이지, 어째 생각은 아프리카 사바나에 있다. 나를 봐도 여전히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그것은 힘의 문제와는 별개이다. 아들과의 격투기 놀이 이후 엉뚱한 상상 속 바다에 빠져본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온몸이 뻐근했다. 손에 힘도 잘 들어가지 않고, 다리도 아팠다. 옆에서 자는 아들을 쳐다보았다. 색색대는 모습이 아직 어린아이 같았다. 언제 저렇게 많이 컸을까. 한강대교처럼 쪽 뻗은 다리를 보며 한편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곧 나도 아버지처럼 아들과 격투기 놀이는 그만할 때가 오겠지. 슬쩍 서운한 감정이 몽실몽실 떠올랐다. 그러다 ‘아니야. 아직은 아니지.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는 해야지.’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오늘부터 열심히 운동해야겠다. 아직은 ‘힘’에 밀리고 싶지 않다. 나는 ‘그때’란 녀석을 최대한 늦게 만나고 싶다. 그것이 늙어가는 아버지의 부질없는 소망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