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딸바보로 태어난다.

by 실배

나에게 딸은 보고만 있어도 눈가에 꿀 떨어지는 존재다. 요즘 아들의 강한 저항을 수시로 접하며 딸의 솜사탕 같은 마음에 더 빠져든다.

사실 딸은 나에게 애증의 존재이기도 하다. 딸로 인해 몇 년째 아내와 각방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독수공방 중이다. 앗. 아니구나. 어제도 물 떠 달라고 괴롭히고. 자면서 발차기 날리는 시커먼 녀석이 옆에 있었네. 이 말 한 것 알면 엄청 삐지겠는 걸.

지금 딸에게 엄마는 인생 전부이다. 아니 사랑 그 자체이다. 유독 어릴 때부터 엄마 껌딱지여서 내가 들어갈 틈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잠도 꼭 엄마랑 둘이 자야 한다. 가끔 내가 온갖 감언이설로 둘이 자자고 해도 늘 거절한다. 그 좋아하는 인형을 사준다고 해도. 물을 때마다 내일 꼭 같이 자겠다고 약속은 하는데. 그 내일이 다시 내일이 된다. 언젠간 그 내일이 오늘이 꼭 되었으면.

토요일 오전 9시쯤 아내는 직장으로 향한다. 엄마가 사라진 공간. 딸은 이내 감정 하나를 툭 꺼낸다.

'엄마 보고 싶어.... 엄마 없어서 슬퍼.'

딸아. 너 어제 아빠가 퇴근해서 돌아온 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내내 엄마 차지했잖아. 그래도 부족한 거니. 하지만 재밌게도 그 감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곧바로 내 옆에 꼭 붙어 애교 폭탄을 터트리며 엄마를 금세 잊은 척한다. 그러나 엄마가 돌아온 순간 그동안 죽 지켜준 늙은 아비는 뒤로한 채, 엄마에게 쪼르록 달려간다. 조금 전까지 터트린 애교 보따리를 주섬주섬 싸서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난다. 그 뒤부턴 엄마 옆에 콕 붙어서 철벽 치기 시작한다. 이래 보면 사회생활 참 잘한다.

첫째 나은 후 아내는 둘째를 원하지 않았다. 팍팍한 우리 삶에서 둘은 너무 벅차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줄기차게 둘째를 원했다. 결국 아내는 둘째를 낳기로 결정했으나 생기지 않았다. 하늘의 뜻인가 보다 생각하고 포기할 무렵 둘째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래서 4년 터울 남매가 탄생했다.

둘째는 첫째에 비해서 뭐든지 느렸다. 뒤집기, 서기, 걷기, 말하기, 읽고 쓰기 등. 늘 한걸음 뒤에서 시작했다. 심지어 지금도 가족 중에서 밥도 가장 천천히 먹는다. 우리 신 씨가 다들 급해서 밥도 다들 빛의 속도로 먹는다. 첫째도 아내도 빨리 먹는데 늘 혼자서 밥의 미학에 빠져있다. 무척 신기했다. 밥 한 입 넣고 10번은 족히 씹는 것 같다. 100세 살 각이다.

처음에는 걱정 많이 했다. 이 빠른 세상 속도를 잘 따라갈 수 있을까. 하지만 조금 느릴 뿐, 못하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세상을 천천히 바라보니 관찰력이 무척 뛰어나다. 그냥 스쳐 지나간 사람 얼굴과 특징도 잘 기억하고 사물이나 풍경도 사진처럼 묘사한다. 많은 시간이 지나도 기억하는 모습에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제대로 느림의 미학이다. 지금은 오히려 딸이 부러울 때가 많다. 나는 급하게 잊고 지나치는 것이 참 많은데.

마음이 느긋해서인지. 수용하는 깊이도 남다르다. 친구들에게 양보도 잘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보인다. 특히 세상의 수많은 단어 중 이쁜 것만 골라 말한다. 늘 상대방의 좋은 점을 발견하여 칭찬한다. 그러니 사랑받을 수밖에. 꿈도 엄마의 영향을 받아 몇 년째 언어치료사이다. 남을 돕는 일을 꼭 하고 싶단다. 그 마음이 이뻐 나도 맘속으로 응원 중이다.

그리고 얼마나 엄마에게 효녀인지 모른다. 화장실 응가하러 가거나, 씻을 때, 심부름시킬 때는 꼭 나를 찾고 맛있는 것 먹을 때, 좋은 곳 갈 때, 코 잘 때는 꼭 엄마랑 한다. 그래도 그럴 때라도 불러주는 것을 감지덕지해야지. 농담처럼 나는 딸아이의 3D 담당이라는 말을 푸념처럼 하곤 한다.

얼마 전 친한 선배랑 술 한잔하는데. 얼큰이 취하니 선배의 한숨이 땅속으로 꺼졌다. 무슨 일인 지 물어보니.

"야. 내가 내 딸 얼마나 금이야 옥이야 했는지 알지?"
"그럼요."
"고게 요즘은 술 먹고 들어가면. 냄새난다고 방문도 안 열어보는 거 있지. 요즘은 아예 나를 투명인간 취급이야. 내가 지를 어떻게 키웠는데...."

헉. 그 말 듣고 술이 번쩍 깼다. 그 선배가 딸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나는 옆에서 죽 지켜보았다. 딸도 아빠를 무척 따랐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었다고 이리 멀리 떠나는 것인가. 그럼 나도 체 10년이 안 남았다는 것인데. 막상 그 일이 나에게 닥치면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유치하지만 가끔 딸에게 묻는다.

"나중에 커서도 아빠랑 놀아줄 거지?"
"그럼. 당연하지!"

딸아 약속한 거다. 아빠 녹음도 할 거야. 나중에 안 놀아주면 진짜로 삐질지 몰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착한 마음 간직하며 천천히 살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정말 많이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