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이 중요한 이유
천근만근 하다. 이런 상투적인 말보다 내 다리에 적합한 표현이 또 있을까. 첫 PT를 받고 난 다음날부터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모두 욱신거리며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다. 간신히 일어나 씻고 기다시피 해서 출근을 했다. 나름 꾸준히 운동해 왔다고 자신했건만 고작 50분 수업에 무너지는 모습에서 그간 무얼 해왔나 자괴감마저 들었다.
이틀 뒤 두 번째 PT날이 다가왔다. 그간 도전은 삶의 원천이었다. 새로운 시작을 할 땐 다음을 기다리며 가슴속엔 설렘이란 두 글자를 새겨왔다. 그런데 이번엔 두렴이란 낯선 단어가 비집고 들어와 자리 잡았다. 퇴근 무렵 책상을 정리하며 할 수 있다란 자기 암시를 반복했다.
"회원님, 다리는 괜찮으세요. 고생 좀 하셨을 텐데."
"아... 넵. 힘들긴 힘들더라고요. 이제 조금 나아졌어요."
"처음엔 아마도 계속 그럴 거예요. 그래도 차츰 나아질 거예요. 일단 거울 앞에서 자연스럽게 서보세요."
트레이너의 지시에 따라 전신 거울 앞에 섰다. 무얼 하려고 그러지. 의혹의 눈초리로 거울에 비친 얼굴을 응시했다.
"차렷 자세를 하면 양팔이 옆구리에 붙어야 정상인데 회원님은 앞으로 쏠려 있는 게 보이시죠. 거북목도 심하고 이런 상태로 운동하면 올바른 곳에 힘이 들어가지 못해 역효과가 날 수도 있습니다. 쏠린 몸을 바로 잡기 위해선 등 부위를 강화해야 합니다. 오늘은 등 운동을 집중적으로 배워볼게요."
트레이너는 비스듬한 의자에 무릎을 꿇고 가슴을 기대라고 했다. 그리곤 덤벨을 양손에 쥐어주고는 올리면서 가슴을 최대한 피라고 했다.
"좀 더, 좀 더! 더 필 수 있어요. 지금 절반도 안되었네요. 가슴을 활짝 피면서 등에 힘을 주고 접어요. 날갯죽지가 서로 닿는다는 느낌으로. 힘 빼고 최대한 빼고요."
처음엔 쉽지 않은 동작이 반복할수록 나아졌다. 트레이너는 한 손으로 의자와 내 가슴 사이에 넣고 다른 한 손은 등에 대며 자세를 점검했다. 이번에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이를 꽉 물고 트레이너의 숫자 구호에 맞혀 세트를 해나갔다.
"잘하셨어요. 지금 동작이 상당히 어색하죠. 저와 계속 등을 단련해 나가면 그 부위에 힘이 생기고 결국 바른 자세로 이어질 겁니다. 근육 키우기도 중요하지만 회원님은 자세교정도 그에 못지않게 필요합니다."
운동을 시작하며 멋진 몸매를 갖게 될 거란 막연한 꿈을 꾸었다. 오늘 PT를 받으며 생각의 변화가 생겼다. 내 몸을 잘 이해하고 잘못된 오랜 습관을 교정해서 건강한 신체를 만드는 일이 PT 받는 진정한 이유가 아닐까. 돌이켜 보면 학창 시절에나 성인이 되어 회사를 다닐 때나 기본을 제대로 하지 않고 좋은 결과가 따라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걸 뼈저리게 경험하곤 요행은 되도록 바라지 않게 되었다.
혼자 운동할 때마다 유독 왼쪽 어깨가 끊어질 듯 아팠다. 오늘 훨씬 강도 높은 운동을 했음에도 등만 뻐근할 뿐 다른 곳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트레이너에게 말했더니 힘을 주어야 하는 곳에 제대로 주지 못하면 무리하게 다른 근육을 쓰게 되고 결국 과부하가 걸려 통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했다. 이대로 계속 운동했으면 어느 언젠간 크게 다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운동을 모두 마치고 비 오듯 내리는 땀을 수건을 닦고 있을 때 트레이너가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
"복습은 필수입니다. 오늘 배운 운동을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해야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어요. 그래야 진도도 나갑니다. 제가 계속 지켜볼 거예요."
느낌 탓일까. 마무리로 러닝머신 위에 올라 걷는 중 뒤통수가 몹시 따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