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를 극복하면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만 더! 할 수 있어요. 진짜 라스트 하나만 더! 자, 힘내요. 올려보세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젖 먹던 힘까지 모조리 써서 들어보려 했지만 팔에 더는 감각이 없었다. 제자리에 서서 사시나무 떨 듯 부들대고 있었다. 귓가 너머로 들리는 트레이너의 목소리는 아득한 꿈속의 메아리 되어 울려 퍼졌다. 그때 뒤에서 손하나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내가 간신히 매달리고 있는 바를 함께 쥐고 올려주었다. 다만 얄밉게도 약간의 힘만 주는 듯했다.
매번 PT때마다 반복되는 일이다. 트레이너는 극한까지 나를 밀어붙였고, 남은 1%의 힘까지 기어코 쥐어짰다. 이대로 팔을 제대로 쓸 수 있을까. 어깨는 부서지는 것 아닌지. 내 다리가 아닌 것 같아. 파란 매트 위에서 잔뜩 뭉친 근육을 풀며 깊은 한숨이 나왔다. 통증의 여파는 하룻밤 지난 뒤 격하게 찾아왔다. 특히 운동한 부위는 이 보다 뻐근할 수 없었다.
전에 회사 동료 A가 PT를 받은 적이 있었다. 함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던 중 운동이야기가 나왔다.
"요즘 PT 받는다고 하더니 살이 좀 빠진 것 같아요. 건강해 보이고."
"말도 마세요. 며칠 전 PT 받을 때 저 정말 트레이너랑 싸울 뻔했어요. 힘들어 죽겠는데 웃으면서 한 개만 더하라고 그러니 약 올리는 것 아닌가 화가 막 나더라고요. 간신히 참았네요. 그만둘까 심각하게 고민 중입니다."
그 당시엔 동료가 조금 과하게 생각하는 건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PT를 받아보니 지금에서야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었다. 당연히 트레이너가 놀리려는 의도는 없었겠지만 당하는 입장에선 부지부식 간에 그런 마음이 들기 마련이니. 나 역시 극한을 마주할 때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생고생을 사서 하는지 하는 생각을 반복하곤 했다. 오죽하면 헬스장에서 그에 관한 유머가 돌까.
그러고 보면 우리 몸은 참 신기하다. 머리로는 이제 더는 안될 것 같다고 신호를 보내도 몸은 기어코 해내니 말이다. 트레이너는 누구보다 잘 알기에 못하겠다고 백기 드는 회원 옆에서 하나만 더를 외치는 것이리라. 실제 그때 올리는 한두 개가 근육에 어마어마한 효과를 미친다고 한다. 언젠가 그 부분에 관해서 트레이너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운동은 혼자 해도 좋지만 이렇게 같이하면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제가 보기에 회원님은 충분히 그 이상을 할 수 있는데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지금은 이 만큼밖에 못하는 거거든요. 그래도 계속해나가면 훨씬 무거운 무게도 들 수 있습니다."
"저도 이 정도까지 할 수 있을지 몰랐어요. 혼자 운동할 땐 힘들면 거기서 멈췄거든요. 그래서 늘 제자리였던 것 같아요."
비단 운동뿐 아니라 살면서 무수히 많은 상황 속에서 한번 더 노력했으면 결과가 달라졌을 상황이 분명 있었다. 고3 수험생 시절 조금만 더 노력했으면 원하던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대학 때 좀 더 충실했으면 학점도 잘 받고 미리 준비도 잘해서 취업시기 때 좋은 곳에 들어갔을 텐데. 관계에 있어서도 조금만 더 신경 쓰고 관심을 가졌으면 지금보다 나은 사이가 되었을 텐데.
지나고 나니 아쉬움이 남았다. 그 당시엔 최선을 다했다 자위했지만 돌이켜보면 할 수 있는 딱 그만큼만 했지 그 이상을 넘어서진 못했다. 그래서 지금 받는 PT가 기대된다. 한계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는 못하겠다고 해서 멈추지 않고 한 번 더를 외치며 나아가고 있다. PT가 끝난 뒤에 변화될 나 자신을 믿는다.
오늘도 PT를 받으러 간다. 솔직히 기대보단 두려움이 컸다. 트레이너는 '하나만 더'란 구호에 맞춰 극한까지 몰아 부칠 것이다. 하지만 '한계에 도전하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란 명언처럼 포기 않고 이겨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