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어디야?"
오래간만에 지인을 만나서 술 한잔하고 늦어지는 귀갓길이었다. 집 전화로 연락이 왔길래 받아보니 아들이었다. 다짜고짜 어디냐고 묻고는 언제 들어오냐고 물었다. 집에 가는 길이지만 좀 더 시간 걸릴 것 같다고 했음에도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 기다린다는 말에 왜 마음이 심쿵하지. 요즘 늦어도 연락 없는 아내에게 살짝 서운한 마음이 들었는데, 그 빈자리는 아들이 채워주고 있다.
사실 둘째가 태어나기 전만 해도 아내는 늦으면 꼭 연락했었다. 암묵적인 규칙으로 밤 12시 전에는 무조건 집에 들어와야 했다. 밤 11시가 다 되어가면 나도 모르게 엉덩이가 들썩이고 마음이 불안했다. 조금이라도 늦었다간 불호령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붙은 별명이 '신데렐라'였다. 친구들이 놀려댔지만, 나에게는 기분 좋은 별명이기도 했다. 아내의 연락이 관심의 척도였으니깐. 연락 오면 싫은 척하면서 친구들에게 으쓱했던 시절이 있었다. 더구나 지금은 각방 생활 중이니 집에 들어가도 생사를 확인하기도 어렵다. 이럴 땐 '역시 부부는 살 맞대고 살아야 해.' 하는 구닥다리 명제를 갖다 붙인다. 아들이 전화 오는 것을 보니 맞는 것 같은데?
엄마와 떨어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딸 덕분(?)에 아들과 동침한 지도 햇수로 7년이 다 되어간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딸도 엄마와 분리하겠지 했는데, 웬걸 점점 더 껌딱지가 되어간다. 슬쩍 아내 옆에 있을라치면, 빛의 속도로 달려와 둘 사이를 가로막는다. 공공연히 엄마가 1등이고, 아빠는 2등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아들이 아빠를 경쟁자로 생각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 딸이 엄마를 경쟁자로 생각하는 '엘렉트라 콤플렉스'라고 부른다. 지금 딸이 나를 경쟁자로 생각하는 것은 어떤 이론 일지 모르겠다. 자식을 연구해서 대가가 된 프로이트처럼, 나도 이 분야에 연구를 해야 하나 싶다.
아들과 본의 아니게 긴 시간 함께 살을 맞대고 지내다 보니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어 버렸다. 만나면 서로 으르렁거리기 바쁘지만, 중요할 때는 서로 꼭 챙긴다.
요즘 금요일 저녁은 '시네마 천국'이다. 나란히 이불 깔고 누워서 넷플릭스로 볼 영화를 정한다. 영화 선택하면 불 끄고,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한다. 둘이서 조물조물 이야기하며 영화 보는 시간은 무척 즐겁다. 둘 다 영화 취향도 비슷해서 볼 맛이 난다. 늘 내가 먼저 자는 것이 함정인데, 다음날 아들에게 꼭 나머지 줄거리를 듣는다.
늘 아내와 합방할 날을 꿈꾸지만, 막상 그 시기가 오면 아들과 함께한 시간이 못내 아쉬울 것 같다.
커다란 덩치로 달려들어 나를 곤욕스럽게 만들지만, 늦으면 연락해주고, 영화와 스포츠를 함께 볼 수 있는 취향 비슷한 멋진 파트너이다.
오늘 저녁도 함께 볼 영화를 미리 준비해야겠다. 아직 고맙다는 말을 한 적이 없는데, 내 마음도 전해보아야겠다.
조금 헛헛한 마음을 채워준 아들아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