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의 기술.

by 실배

딸은 엄마와 식탁에서 조잘대고 있었다. 샘이 나 슬쩍,

"딸. 아빠한테 와 볼래."
"왜? 나. 지금 무지 바쁜데."

음. 요즘 쉽지 않다. 일단 딸이 관심 가질 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아빠가 해줄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
"뭔데? 거기서 해봐."

몇 번 구슬린 끝에 뾰로통한 얼굴로 내 옆 의자에 앉았다. 딸은 두발 모두 테이블에 올려놓고 산만하게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일단 불렀는데 할 말도 없고 어쩌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딸의 엉덩이가 들썩였다. 시간이 없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그때 보인 발바닥!

"옛날에 왼쪽 발바닥이랑 오른쪽 발바닥이 살았데."

나쁘지 않은 출발이었다. 딸의 몸이 조금 나로 향했다.

"그런데. 오른쪽 발바닥은 너무 외로웠데. 왼쪽 발바닥이랑 말하고 싶은데 맨날 바닥만 보고 걸으니 말할 기회가 없었데."

딸의 발바닥 붙잡고 설명까지 더했다.

"근데. 아빠. 누가 여자고 누가 남자야."

헉. 예상치 못한 질문이다. 순간 당황했다.

"어.... 오른쪽 발바닥이 남자고, 왼쪽 발바닥이 여자야."
"아. 진짜? 오른쪽 발바닥 슬프겠다."
"그렇지. 그래서 오른쪽 발바닥이 꾀를 냈어. 주인한테 왼쪽 발바닥이 간지럽다고 이야기한 거야."

음. 여기까진 괜찮았다. 딸의 몸은 이제 완전히 내 쪽으로 향했다. 눈은 판도라 상자 여는 순간처럼 호기심 가득했다. 어떻게든 서사를 이어가야 했다. 나는 두 주먹 불끈 지었다.

"그래서 주인은 오른쪽 발바닥으로 왼쪽 발바닥을 긁었어. 그때였어. 오른쪽 발바닥은 왼쪽 발바닥에게 반갑게 인사했어. 늘 꿈꾸는 시간이었어."
"와. 오른쪽 발바닥이 여자 왼쪽 발바닥 좋아했나 봐."

딸은 늘 상상 그 이상이다. 하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이제 멋지게 마무리할 일만 남았다. 드디어. 마지막 필사기다.

"왼쪽 발바닥도 반갑게 인사하고 싶었어. 그런데 안~ 푸하하하. 안~푸하하하. 너무 웃겨서 인사할 수 없었어. 안~뇨 푸하하하"

나는 입을 최대한 벌리고 온몸 흔들며 상황극에 몰입했다. 그때였다.

"와하하하. 너무 웃겨. 와하하하하!"

딸의 웃음보가 터졌다. 내가 좋아하는 반달눈 뜬 채 배꼽 빠지라 웃어댔다. 그 모습이 웃겨서 나도 깔깔대며 웃었다. 둘은 그렇게 한참을 큰소리로 웃었다.

"둘이 뭐가 그리 웃겨?"

아내의 질투 어린 말이 들렸다. 엄마 사랑 딸은 그 소리도 못 들은 체 웃음에 푹 빠졌다.

한참 웃다 나에게 더 이야기해달라고 졸랐다. 결국 신발장 안에 있는 빨간 장화, 개울 속 청개구리 이야기를 급조해서 들려주었다.

이제는 자야 할 시간, 딸은 애정 듬뿍 담긴 뽀뽀를 해주며 방으로 사라졌다. 대신 가기 전 내 귀에 대고,

"담에도 재밌는 얘기 꼭 해주기다."

방으로 사라지는 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디 족보도 없는 이야기지만, 딸이 원한다면야 무엇을 못 하랴.

오늘 유혹의 기술이 제대로 먹혔다.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것도 웃음 빵빵 터지는 이야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