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부엌으로 향한다. 냉장고 문을 열고 열심히 뒤적거린다. 달걀 두 개, 상태가 아리송한 무 반쪽, 포장지도 뜯지 않은 두부 한 모가 있다. 오늘은 뭘 해 먹지? TV 프로그램 제목이 스쳐 지나간다. 올해부터 일요일 아침을 책임지겠다고 선언은 했는데, 내내 고민의 바닷속에 허우적댄다. 할 줄 아는 음식도 제대로 없으면서 무슨 호기를 부린 건지. 지난주에 했던 김치볶음밥을 또 할 수도 없고 어쩌지. 불쑥 지난번 구정 때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북어가 떠올랐다. 식탁 옆에 있는 찬장을 열어 봉지를 꺼냈다. 황금빛에 살이 통통히 올라 먹음직스러웠다. 잘게 잘라 놓아 손질할 필요가 없었다. 어머니께서 동해에서 보낸 좋은 것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래. 이거면 되겠네.
핸드폰을 꺼내 ‘북엇국 맛있게 끓이는 법’을 검색해보았다. 맨 위에 백종원의 황금 레시피가 보였다. 이분 어딜 가도 빠지지 않네. 달콤한 것이 별로 당기지 않았다. 그래서 패스. 몇 개 더 검색하다 말았다. 오늘은 그냥 하던 대로 해야지. 북어를 불리기 위해 스텐볼을 꺼내 차가운 물을 채웠다. 북어를 한 움큼 쥐고 넣었다. 물속으로 흩어지는 북어 조각을 보고 있으면 늘 갈등이 찾아온다. 조금 더 넣을 걸 그랬나. 이제는 재료를 손질한 시간이다. 먼저 무를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아직 괜찮네. 도마 위에 넣고 내 맘대로 잘랐다. 너무 심했나. 크기도 두께도 모두 제각각이다. 하긴 뭐 입에 들어가면 거기서 거기지 뭐. 두부는 최대한 얇게 썰었다. 아이들의 취향 반영이다. 나는 두툼한 두부를 좋아하는데, 아이들은 밥에 비벼 먹기 좋은 얇은 두부를 선호한다. 이 정도의 눈치는 필수지. 암.
냄비 안에 참기름을 살짝 둘렀다. 들기름이었으면 좋으련만. 며칠 전 아내에게 사달라고 이야기했었는데, 까먹었나 보다. 내가 사다 놓아야겠다. 젖은 북어를 살짝 짜서 냄비에 넣고 약 불에 달달 볶는다. 나는 이 시간이 참 좋다. ‘치지 직’ 경쾌한 소리에 고소한 옷을 입은 북어가 춤추며 익어가는 냄새는 그야말로 예술이 따로 없다. 얼추 익을 무렵, 북어를 담가 놓은 물을 붓는다. 센 불에 무와 파를 넣고 끓이다가 보글보글 거품이 일면 걷어낸다. 그래야 텁텁한 맛이 사라진다고 한다. 꼭 필요한가는 모르겠지만 미신처럼 안 할 수 없다. 냉동고에 넣어 둔 다진 마늘을 꺼내 반 숟가락과 두부를 함께 넣는다. 뚜껑을 닫고 중간보다 약한 불로 계속 끓인다. 오래 끓일수록 깊은 맛이 난다니깐. 기다리는 동안은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겨 본다.
이제 남은 것은 간을 맞추는 것이다. 사실 이게 제일 어렵다. 이럴 땐 레시피대로 하는 것이 정답 같다. 일단 조선간장을 한 숟가락 넣었다. 음. 맛이 싱거운걸. 소금을 조금 넣었다. 전보다는 낫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필살기를 쓸 때가 왔다. 언젠가 집에 갔을 때 아내가 어머니께 간을 어떻게 맞추냐고 물었었다. 어머니만의 비법은 새우젓이었다. 그래. 이거야. 냉장고에서 새우젓을 꺼내 반 숟가락 정도 넣었다. 살짝 아쉽다. 그래서 반 숟가락 더 넣었다. 아. 짜다. 물을 반 컵 정도 받아 넣었다. 다시 또 싱거운 것 같은데. 아이고. 이런 반복의 알고리즘은 뭐지. 나는 과감히 빠져나오기로 했다. 간은 나중에 각자 소금으로 맞추는 것으로.
이제 다 되었다 싶으면 마지막으로 달걀을 풀어 넣는다. 음식의 완성은 달걀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라면을 먹을 때도 꼭 달걀을 넣어야 제대로의 맛을 즐길 수 있다. 달걀은 국 속에서 금방 존재감을 드러냈다. 국 안 곳곳에 노란 꽃이 피었다. 휴. 이제 다 되었네. 제일 약한 불로 계속 끓인다.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세팅을 한다. 반찬이 변변치 않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치킨너깃을 에어프라이어로 돌렸다. 우리 집은 밥의 양이 모두 다르다. 나는 중간 밥, 아내는 적은 밥, 딸은 많은 밥, 아들은 제일 많은 밥이다. 밥을 다 푸고 이제 아내와 아이들을 깨우러 간다. 아들 녀석은 진작에 일어나 핸드폰 게임 삼매경에 빠져있다. 딸은 이제 막 깰 준비를 하고 있었고, 아내는 아직도 잠에 취해있다. 딸에게 아내를 맡기고 다시 식탁으로 향했다. 북엇국을 그릇에 담아 각자의 자리에 놓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고 꽤 먹음직해 보였다.
아내와 아이들은 맛있게 밥을 먹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신기하게 배가 부르다. 가만있으면 좋으련만 꼭 맛있냐고 물어본다. 인정에 목마른 아재 같으니라고. 딸의 엄지 척이 그리 좋을 수 없다. 문득 어릴 때 생각이 났다. 나는 밥을 싫어하는 아이였다. 어머니는 어떻게든 밥 한 숟가락 먹이려 애타게 쫓아다녔다. 나도 우리 아이들처럼 맛있게 잘 먹었으면 어머니가 얼마나 좋으셨을까. 미안한 마음이 뒤따라온다. 음식을 줄 때 잘 먹는 것만으로 다 한 일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아들은 어느새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아빠, 밥이랑 국이랑 더 줘.”
이에 딸도 질세라,
“나도. 나도”
어깨춤이 절로 난다. 나는 그새 맘이 바뀔까 얼른 일어나 밥솥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