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선풍기가 답이 될 수 있다.

by 실배

오늘은 풀어야지. 마음속으로 다짐만 하며 시간만 흘려보냈다. 시간이 대부분은 해결해주더구먼 풀지 못하는 문제도 있는 거야. 아아. 잠시 할 얘기가 있는데. 아니야. 우리 이야기 좀 할까? 너무 뻔해. 뭔가 쌈박한 멘트가 어디 없을까.

복잡한 마음을 덕지덕지 붙인 채 조금 이른 퇴근을 했다. 현관문 손잡이가 이렇게 무거웠나. 문을 열자 그녀가 보였다. 표정에서 시베리아 냉기가 흐른다. 아이들과 인사한 후 간단히 씻고 나왔다. 그녀 앞에 까만색, 흰색 선풍기가 놓여있다. 분리해서 씻으려는 것 같다.

"내가 할게."
"됐어. 내가 할래"

버티는 그녀에게서 까만색 선풍기를 가져와 분리했다. 이제 하얀색 선풍기로 손을 옮겨 날개 망을 분리하려는데 잘 안 되었다. 뭐가 문제지. 나사라도 박혀있는 것인가. 그렇게 한참을 낑낑대는 모습을 보고,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왜 가져갔.... 풋"

그녀가 웃었다. 그 모습에 나도 반사적으로 웃음이 터졌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보며 해동 버튼을 눌렀다. 이게 뭐야. 아까 내내 준비란 멘트는. 이런 삶의 의외성 같으니라고.

그녀의 도움을 받아 흰색 선풍기를 마저 해체했다. 방에서 급히 딸이 불렀다. 방금 그린 듯 보이는 나를 보여주었다. 안경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뒤가 두려워 긍정적 피드백을 잔뜩 준 후 나왔다. 그녀가 안 보인다. 급히 욕실로 가보니 선풍기 부품을 샤워기로 닦고 있었다.

"내가 할게."
"됐어. 내가 할래. 물티슈로 대충 닦는 사람에게 못 맡겨."

몇 번의 실랑이가 오갔다. 슬 그녀의 손목에 힘이 빠짐이 느껴졌다. 잡고 있던 선풍기 날개를 욕조에 놓고 사라졌다. 구석구석 깨끗이 닦았다.

"다 닦았는데, 어디에다 둘까?"
"일단 거기에 둬요."

요? 요란 단어가 주는 산더미 같은 의미를 알기에 씨익.

거실에 그녀가 빨래 건조대에서 걷은 옷가지가 널브러져 있다. 빛보다는 조금 느린 속도로 달려가 가지런히 개켰다.

근데 왜 이리 웃음이 자꾸 나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