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급한뭉클쟁이 Aug 25. 2019

1:1 약속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하는 ‘딥톡’의 시간

생각보다 어색할 수도 있다. 항상 여럿이서 보다가 처음으로 단 둘이 만나게 되는 시간은 무슨 이야기부터 하게 될지, 또는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에 빠지기 십상이라 은근 긴장감을 주기도 한다. 왁자지껄 여러 명이서 떠들썩한 식사 자리, 시끌벅적 카페 수다 타임, 또는 늦은 저녁의 ‘하이텐션 (High-Tension)’ 술자리도 그 나름의 ‘에너지 부스터 (Energy Booster)’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전적으로 여러 명보다는 단 둘, 즉 단 한 명의 대화 상대에게 온전히 집중하여 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1:1 약속을 선호한다.


어색한 침묵이 불편하지 않느냐고, 여럿이서 보는 게 시간적으로도 더 효율적이지 않냐는 의문도 있을 수 있지만 필자의 경험상 열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모여도 어색한 침묵의 순간은 존재한다. 여러 명을 한 번에 다 같이 만나면 시간적으로 효율성이 높을 수는 있지만 요즘같이 바삐 돌아가는 우리 사회에서 여러 명이 동시에 편한 시간과 장소를 잡는 것은 거의 '하늘의 별 따기'이다. 그래서 약속 시간과 여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모임 장소를 물색하느라 애 먹기보다는 소소하게 둘이 시간을 잡고 아기자기한 식당에서 만나는 게 더 편하기도 하다. 또 한 가지 불만(?)은 여럿이서 모이면 만남 장소가 꼭 강남역 근처라는 점이다. 필자는 강남역 특유의 왁자지껄하고 개성이 부족한 골목들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둘이서 떠나는 비교적 한산한 마포구, 종로구, 영등포구 등의 맛집 탐방을 훨씬 더 좋아한다.


정말로 다 같이 친한 '팟'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고, 급한 용건 때문에 둘이 보게 되는 일도 있지만 필자는 단 둘이 분위기 있는 음식점이나 카페에 마주 앉아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친밀감을 느끼게 되는 그 과정을 좋아한다. (TMI: 필자는 '다대다 (多對多)' 미팅에 나가본 적은 없지만 경험해보지 않아도 스스로의 반응에 대해 대충 예상이 간다. 그렇다면 소개팅을 더 열심히 해야 하나...(?)) 커피나 차 대신 술 한 잔을 함께 기울인다면 그 친밀감이 증폭될 수도 있지만 필자는 술 없이도 깊은 대화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아기자기하고 예쁜 카페에 가서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달달한 디저트와 홍차를 곁들여 먹는 것도 좋고, 보고 싶던 친구, 가족, 지인과 맛있는 점심/저녁을 먹고서 단 둘이 카페에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누면서 필자는 기분 좋은 뭉클함을 느낀다. (물론 이 모든 1:1 만남은 서로가 약속의 의지와 여건, 그리고 마음이 충분하다는 전제하에 하는 이야기다. 필자도 더 의상 진심 없는 "밥 한 번 먹자"는 가뿐히 넘길 수 있는 단계로 '레벨업 (Level Up)' 한지 오래다.)

해외생활을 오래 하고 귀국한 친구가 그 동안 너무 먹어보고 싶었다던 한국 마카롱 (케이-마카롱)과 초코렛두부 모양의 티라미수
부산 여행 중 맛있게 먹은 블루베리치즈케익과 청담동의 피넛버터쫀득케익. 그리고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옛날우유빙수인데 떡을 싫어하는 친구랑 함께 먹어서 큰 이득을 봤다.
이렇게 모아 보니 1:1 대화가 아닌 디저트/케익에 대한 글 같다. 이정도면 필자에게 밥약속은 디저트를 죄책감 없이 먹기 위한 핑계일 수도 있겠다.

1:1 약속은 서로의 특별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의도치 않았던 간헐적인 만남이 아닌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만남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오랜만의 '캐치업 (Catch-up)'을 위해, 당신은 내 근황이 궁금하고 나도 당신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 성사되는 만남. 서로가 너무 바쁘다면 분기별로라도 반드시 시간을 내어 "약속잡기"에 매달리는데 서로 시간을 내기 위한 그 노력의 마음이 너무 예쁘고 뭉클하다. 문득 "이 사람은 정말로 나를 케어(care) 해주는구나"라는 생각에 혼자 감동하기도 하고 ("뭉클 쟁이"인 만큼 감동이 너무 잦아 티 내지 않으려고 조심할 때도 있다. 솔직히 좀 부끄럽다.) 서로의 안녕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우리는 이미 특별한 사이가 된 것 같아 기쁘기도 한다. 이런 연락과 약속이 꾸준해질수록 그 만남 자체가 휴식이 되고 위안이 되는데 필자는 이렇게 단 둘이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캐치업'의 노력들이 참 좋다.


가끔 그저 내 이야기 좀 들어달라고 만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무책임한(?) 투정을 부리기엔 한 명의 믿음직스러운 친구가 딱 좋다. (친구야 미리 미안.) 여러 명이 모인 자리에서 고민거리를 늘어놓으며 투정 부리기가 참 어렵고도 별로인 게 어렵게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완전 흥을 깨버리는 '파티 푸퍼(party pooper)'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모임 구성원 모두와 친밀한 관계가 아닐 수 있어 본인의 속 마음과 (혼자) 심각한 걱정거리를 공유하기엔 민망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타인이 원치 않게 '고민거리 폭탄'의 청중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래서 깊은 유대감과 친근감은 느낄 수 있고 필자의 이야기에 조건 없이 경청해주는 친구들과의 만남은 항상 고맙다. 케이크라도 하나 더 주문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다음엔 미리 한 턱 쏠 것을 브런치에서 공약하는 바이다.


꼭 단 둘이 만나봐야 알게 되는 것도 많다. 고정된 환경에서 오랜 시간 동안 단체 생활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는 쌓이는데 매일 봐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고민거리를 털어놓기가 참 어렵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소통의 결여가 지속되다 보면 오해가 쌓이기 십상이다. 그리고 서로가 오해를 푸는 일 자체에 더 큰 피로를 느낀다면 감정의 골은 깊어지고 서로에 대한 미움은 짙어질 수밖에 없다. 필자 역시 비교적 최근에 비슷한 일을 겪었다. 스스로 속한 단체에서 격리되어 혼자서만 섬 (island)처럼 일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질감 때문에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필자는 원래 꽤나 '피플 펄슨 (People Person)'이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설렘과 에너지를 얻는 쪽이었어서 이렇게 단체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밉기도 했고 좌절감에 빠지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왜 아무도 나를 챙겨주지 않지?"라는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질문까지 던지며 특정 인물이 왜 필자에게만 차갑고 불친절한지, 어떤 상황에서 미움을 샀던 건지에 대해서 답 없는 분석과 고민을 하게 됐다. 쌓인 오해가 깊어지다 보니 문제를 직접 돌파할 생각과는 점점 더 멀어졌고 상대방 눈치를 살피고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상대방이 어떤 의도를 갖고 행동하는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못했고, 물어볼 기회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그런데 얼마 전 필자가 먼저 용기를 냈다. "주말에 점심 어때요?"라는 문자 한 통으로 생각보다 쉽게 1:1 밥 약속이 잡혔고, 처음으로 단체생활의 환경에서 벗어나 단 둘이 편하게 속마음을 공유할 수 있었다. 단체 생활의 굴레에 갇히다 보면 스스로가 객관적으로 사고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작은 단체일수록 서로에게 관심이 많아 들려오고 오가는 말이 많을 수밖에 없고 이런 말에 흔들리지 않기로 마음먹어도 우리는 실수투성가 많은 인간일 뿐이다. 단 한 번의 점심식사로 그동안의 모든 오해가 풀리거나 '갑분' 베스트 프렌즈 (Best Friends)가 된 것은 아니지만 관계의 회복과 앞으로는 소통을 통해 서로를 배려하며 조정해나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과 희망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렇게 용기에 기반한 1:1 약속은 답답했던 상황 속에서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그 속마음에 대해 서로 알아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어 좋다.


마지막으로는 가족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평소에 다 같이 있을 때와 단 둘이 있을 때 굉장히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고, 특히나 필자의 아버지는 그 대표적인 예이시다. 항상 무뚝뚝하고 칭찬에 박하고 (돈도 안 드는 일을 그렇게도 아끼신다.) 감정 표현에도 서툴러 보이시는 아버지는 필자에게 비교적 어려운 대화 상대였다. 항상 냉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해주시는 아버지로부터 상처를 받은 적도 많지만 그래도 감사한 마음에 항상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필자의 성취 스토리를 들려드리며 인정받고 칭찬받기 위해 애쓰며 지냈던 것 같다. 요즘엔 물리적으로 마저 떨어져 지내서 아버지와 함께 1:1 대화를 나누기가 더 어려워졌지만 고등학생 때는 꽤나 아버지와 단 둘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아버지의 출근시간과 필자의 등교시간이 비슷한 날에는 아버지께서 꽤 자주 학교까지 차를 태워주시곤 했는데 본인도 그때 느꼈던 뭉클함을 솔직하게 표현한 적은 없지만 나는 그때가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그때도 아버지께는 꼭 생산적인 이야기, 성취감과 노력의 성공 스토리만 들려드려야 할 것 같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한창 진로 고민에 빠져있을 시기에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모르는 사이 진로 조정을 하기도 했고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아버지 차 조수석에서 가장 많이 했다. 그리고 그때는 주말이 되면 동네 카페에 가서 차 한잔씩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시간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요즘엔 아버지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기회가 참 없다. 아쉽다. 그리고 그립다. 서로 힘들지만 너무 소중한 존재인걸 알기 때문에, 그 관계를 당연시 여기지 않고 친밀감 유지와 증폭을 위해 더 많은 대화가 오고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단순히 디저트를 좋아해서 (나눠 먹으면 죄책감이 덜하니까!) 1:1 대화와 약속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안녕과 안부에 대해 질문하고, 최근엔 어떤 고민과 근심이 그대를 불편하게 했는지 궁금해하며 따뜻하게 나눌 수 있는 대화가 너무 좋다. 물론 셋이 만나도, 넷이 만나도 서로에 대해 알아갈 수 있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1:1이어야 한다. 여럿이서 만났을 때보다는 단 둘이서 이야기를 나눌 때 감정과 속마음을 터놓는 정도의 차이는 우리가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하반기에는 좀 더 용기를 내야겠다. 보고 싶고 궁금한 사람들에게 먼저 연락하는 용기를 내어 가슴과 기억에 오래 남을 대화를 더 많이 나누고 싶다.

이전 10화 한의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