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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급한뭉클쟁이 Jul 20. 2019

한의원

의학계의 '웜톤'이랄까.

다소 불행한 일주일을 보냈다.


저번 주 주말 무거운 짐을 들다가 허리에 무리가 간 것이다. 통증이 바로 시작된 것은 아니었지만 당일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꽤나 고생을 했고 다음날이 월요일, 즉 새로운 한 주가 또 시작되는 날이라 걱정이 앞섰다. '당장 출근을 못하면 어떡하지?' '누구한테 뭐라고 말씀을 드리지?' '병원에 들렸다가 하루 쉬고 싶다고 양해를 구해도 되려나?' '하 이번 주부터는 정말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는데...' 혹시나 하루 자고 나면 언제 아팠냐는 듯이 통증이 사라져 있을 수도 있다는 기대를 하며 늦은 새벽잠에 들었지만 역시나 그런 일은 없었다. 화장실 가기도 불편했던 새벽보다는 거동이 나아졌지만 지금 잘못하면 일주일 아플 거 한 달 아프겠다 싶어서 얼른 양해를 구하고 병원을 찾기로 결심했다.


월요일 아침 내 발걸음은 동네 한의원을 향했다. (사실 가까운 거리지만 택시를 타고 갔다. 허리가 너무 아팠다.)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근육 통증이나 피로가 심해지는 등 '컨디션이 시원찮으면' 한의원에 자주 갔었다. 집안 분위기(?) 또는 그 문화의 영향이 클 수도 있는데 우리 집 식구들은 한의원에 곧잘 방문하는 타입이었고, 심지어 필자는 어렸을 적 그 한의원 고유의 푸근한 안전감에 매료되어 장래희망으로 한의사를 꿈꾸기도 했다. ('대학입시'의 '대'자도 몰랐을 적부터 경희대학교 한의학과를 꿈꿨으니 말 다했다. 필자는 '꿈은 동사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에 깊게 동의하는데 장래희망으로 대학교와 학과부터 정해놓은 필자의 어린 모습을 떠올리니... 교육 시스템의 현실에 살짝 슬퍼진다.) 관성 때문일 수도 있고 전날 밤 엄마가 수화기 건너편에서 건넨 조언 때문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나는 첫 내원지로 정형외과가 아닌 한의원을 택했다.


결과는 만족이었다. 가까운 동네에 검색해보니 한의원이 세 군데가 있었는데 카카오 맵에 기재된 별점을 보고 고른 곳이었다. (5점 만점에 5점! 실화냐! 물론 통계 조사에서는 표본의 사이즈가 매우 중요하지만 그래도 만점이다!) 평가에 적혀있던 후기대로 원장님과 직원분들 모두 엄청 "친절하셨고" 무엇보다 "꼼꼼하게" 진료와 치료를 해주신 덕분에 부상일로부터 6일이 지난 지금 (거의) 완쾌할 수 있었다. 물론 친구들과 놀러도 못/안 가고,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핫팩과 함께 침대에 누워서 휴식을 취하고, 좋아하는 요가 수업을 일주일 내내 한 번도 못 가면서 까지 (이게 제일 애석했다...) 허리 통증 완화를 위해 노력한 스스로도 참 잘했지만 (칭찬 +1) 내원할 때마다 찜질부터 침, 부항, 초음파 치료, 그리고 무엇보다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해주셔서 더 빨리 나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필자의 '한의원 방문기'를 주변 친구들과 동료에게 들려주니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꽤나 있었다 (아니 통계적으로 보면 '많았다'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듯하다). 필자가 한의학 치료에서 느낀 만족감은 고려되지 않은 채 양의학, 또는 양의학과 한의학을 병행하지 않은 필자를 의문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허리가 아프다는 건 꽤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일 수도 있고, 또는 그렇게 발전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X-ray로 사진을 찍고 뼈나 인대에는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 더 이로울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평상시에 허리나 다른 근육의 통증을 느껴왔던 건 아니었고 단지 지난 주말 무거운 무언가를 들다가 근육에 무리가 간 것 같다는 판단하에 동네 한의원을 찾은 것이었다. 아무리 괜찮다고, 허리 통증이 제법 많이 나아지고 있다는 필자의 주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최소한 물리치료 병동에 다니면서 양의학 치료를 병행하라'는 조언이 많았고 그러다 보니 필자는 스스로 한의학에 갖고 있는 신뢰를 의심해보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고 말았다.


건너서 듣고, 백과사전에서 (두산백과에서) 찾아 읽어보니 한의학은 "중국, 일본 등 한자문화권 지역의 의학과 교류되면서 연구, 전승, 발전되어 온 동양철학적인 의학론"이라고 한다. 다양한 생명현상을 관찰함으로써 귀납적으로, 즉 경험으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논리를 구축한 것이다. 그런데 인체를 소우주로 보는 한의학의 기초 이론이나 한의학에서 사용되는 사혈 법은 마치 역사 교과서에서 등장하는 (옛~날~옛~적) 히포크라테스 시절의 '생리적 균형 찾기'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없지 않아서 현대 의학과 생명기술 옹호자한테는 약간의(?) 거부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랬나... 검색해서 찾아 읽고 나니 왜 정형외과 방문을 우선시하지 않았냐고 물어보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꼭 양자택일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의학과 내원의 선택에도 개인차가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다. 필자는 집안 문화와 관성에 끌려 허리 통증을 느낀 다음날 한의원에 찾아갔고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 이는 마땅하고 잘한 선택이었다. 게다가 '의학사 상사'에서 읽은 부분을 인용하자면 "베살리우스조차도 그가 발전시킨 새로운 해부학 지식과는 무관하게 치료할 때 여전히 전통적인 사혈 법을 즐겨 썼다"라고 한다. 체계적인 해부학 지식과 병리학 지식을 결합하는 데는 "양의학이 더 중요해"나 "한의학이 더 효과적이야"라는 주장보다는 환자가 더 빨리, 더 편안하게 회복할 수 있도록 모두를 연결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 아닐까?


무엇보다 환자가 내원했을 때 받는 느낌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너는 '갬성' 찾아 병원 가니?"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 이번 주에 필자가 들은 말이기도 하다) 필자는 통증에 고통스럽고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환자에게 왜 병원에서 주는 '갬성'이 중요하지 않은지가 오히려 의문이다. 성급한 일반화는 언제나 논란의 위험을 갖고 있지만 개인적인 경험상 한의원은 항상 더 따뜻했다. 고요하고 평온한 분위기와 호불호가 갈리지만 필자에게는 언제나 '극호'였던 한방약품 냄새까지. 취향 따라 병원 갔다가 큰 낭패를 볼 수도 있겠지만(...) 워낙 평소에도 '애어른, ' 영어 표현을 찾자면 '올드 소울 (Old Soul)'인 필자는 앞으로도 같은 상황을 맞닥뜨리면 한의원을 선택할 것 같다. (물론 필자 역시 여러 의학을 연결하는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이번 주는 필자에게 정신적으로 힘든 한 주이기도 했다.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정체성 혼란과 소속감을 전혀 느끼지 못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고 있는 일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서로의 부족한 점을 상호 보완할 수 있는 동료가 없어 혼자만 '섬'이 된 느낌을 받으면서 지내고 있었다. 스트레스가 심하다 보니 잠시도 모든 행동을 멈추고 오로지 '생각'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지, 또는 그 어떤 걱정/근심으로부터 자유로운 순간이 있었는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마침 이런 시기를 겪는 중 퇴근 후 한의원에 가게 되었는데 치료를 받는 동안에라도 눈을 감고, 폰을 만지작거리지도 않으며 오직 나의 물리적 통증에 집중하고 의식의 흐름에 스스로를 맡겨보니 마지막으로 이렇게 해 본 적이 매우 오래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필자는 한의원에서 육체적, 그리고 감정적 '케어 (care)'를 받을 수 있었고, 그래서 만족도 높은 치료를 받았다고 느끼고 있다.


모두에게 한의원을 추천하는 바는 아니다. 분명 심적, 그리고 물리적인 개인차가 있을 것이니. 필자는 그저 이번 주 한의원에서 받은 위로와 그 '마음 따뜻해짐'에 대해서 글을 남기고 싶었다. 허리가 아픈 것도 서러운데 일까지 잘 안 풀리니 (혹은 그 반대로 vice versa) 너무 서러웠지만 조금이나마 그 '일상의 괴로움'을 덜어주신 원장님께 익명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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