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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Sep 13. 2021

청담동 슈퍼카에서는 할아버지가 내린다

성공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성공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한 장면





“와, 진짜 멋있다.”

짝궁의 감탄이 향한 곳으로 눈을 돌리니 고급승용차 한 대가 서있다. 음, 저건 람보르기니 우르스네. 과거 외제차는 다 벤츠인줄 알았던 자동차 무지랭이였지만, 자동차 전시장을 방불케하는 도산대로와 학동로를 몇 년째 다니다보니 서당개도 삼년이면 풍월을 읊듯 대충 봐도 어떤 회사 차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저 차는 여자 아이돌이 타서 화제가 되었던 차 아닌가!        


잠만, 그런데 아무리 멋진 차를 봐도 ‘저건 두꺼비 같다’느니 ‘차고가 낮다’느니 단점만 줄줄이 나열하며 못 사는 게 아니라 ‘안’사는 거라 정신승리하던 짝궁이 감탄사를 연발한다. 자로고 내 짝궁은 좌우명이 ‘나야 나’일 정도로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자 같이 살면서 들어본 칭찬이라곤 ‘잘했네’ 밖에 없는 습도0%의 남자 아닌가. 이런 남자가 입과 코를 벌름거리며 크... 외친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보니 파란 펄색깔 우르스에서 하차하는 한 남자가 보였다. 좀 이상했다. 확실히 평소 보던 광경과 달리 생경했다. 차 주인은 회색 피케셔츠에 치노팬츠를 입은 남자였는데, 머리가 백발이었다. 자세히 보니 최소 60대는 되어보였다 그는 차 문을 닫고 발렛기사에게 가더니 차키를 맡기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걸 보던 짝궁이 말한다.

“저게 진짜지. 진짜 성공이지.”


도로에서 람보르기니, 페라리 등 슈퍼카를 발견하면 백이면 백 앳된 남녀가 타고 있다.  그들을 보면 ‘성공했다, 부럽다’는 느낌보다는 ‘철없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20대 어린나이에 자기 능력으로 3억 가까이 하는 차를 구매하고 유지비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물론 일부 어린 나이부터 사업에 성공한 사람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일반적으론 쉽지 않다. 그래서 도로에 다니는 원색 슈퍼카를 보면 ‘철없는 젊은이들의 욕망’을 함께 보곤 했다.      


그런데 ‘젊은 욕망’에서 지긋한 할아버지가 내린다. 얼굴에 주름이 구겨져있고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할아버지가. 그때부턴 그 차가 ‘성실한 성공’으로 보인다. 저 차를 타기 위해 오랜시간 인내하고 노력했을 할아버지의 과거시간이 스쳐지나간다. 자산가라면 기생충의 박사장님처럼 운전수과 함께 다녀도 될 텐데,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운전하고 다니는 소탈함에서 여유와 멋스러움이 느껴진다.


많은 사람들은 젊은 나이에 출세하길 원한다. 하지만 소년등과일불행(少年登科一不幸)이란 말처럼 어린나이에 성공하고 부를 쟁취하는 것은 긴 인생을 봤을 때 우려스러운 점이 많다. 아직 내면이 성숙하지 못한 시기에 많은 부를 얻게 되면 세상이 우스워보이는 오만함에 빠지게 된다. 이미 목표를 쉽게 이뤘기 때문에 다른 것에 눈을 돌리게 되고 결국 사회적으로 방황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옛사람들이 새파랗게 젊은 나이게 성공하는 걸 극도로 경계했던 이유가 다 있다.


도산대로를 거닐다보면 중년 또는 노년들이 타고 있는 고급 슈퍼카를 종종 본다. 우리 아파트 주차장에서도 꽤 지긋하신 분들이 슈퍼카에서 내리는 걸 가끔 본다. 그들을 보며  혀를 쯧쯧 차는 사람들은 없을 거다. 물론 그들이 소년시절을 알 수는 없다. 빈곤 하였을지, 원래 부유했을지. 그럼에도 노년에 저런 차를 타고 다닌 다는 건 오랜시간 동안 흐트러짐 없이 살아왔다는 걸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좌절하기도 하고 운 좋은 경쟁자를 보며 포기하고 싶을 때도 분명 있었을 거다.      


그럼에도 지금 할아버지들은 슈퍼카를 타고 있다. 도달하지 못할 가격의 슈퍼카지만 그 안에 앉아있는 할아버지들을 보니 삶의 공평함이 느껴진다. 택도 없는 걸 알지만 왜인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언젠가 저 할아버지들처럼, 노년이 되었을 때 저렇게 멋진 차에서 내릴 수 있길.


동경할 만한 한 장면을 가슴 속에 찰칵, 찍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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