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와 멋, 날씬함
장래희망 : 청담동 할머니
고작 30대 중반이지만, 20대의 나와 지금의 나는 세상을 보는 관점이 많이 다르다. 20대에는 젊은 나이에 성공한 사람이 부러웠다. 연예인 중에는 보아, 아이유처럼 10대에 재능을 발견해서 20대에 꽃피운 사람들. 사업가 중에서는 3CE 김소희 대표처럼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대박 터진 사람들이 한없이 부럽고 따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20대의 성공은 노력보다는 운이 영향을 미치는 시기에 가깝다. 그땐 그걸 모르고 한없이 자책하며 좌절만 했었다. 내가 못나서 이 모양인 거야.
그런데 30대가 되면서 서서히 관점이 바뀌었다. 20대의 빠른 성공이 과연 마라톤 같은 인생을 돌아봤을 때 과연 득만 될 것인가. 오히려 20대에 예상보다 빠른 성취를 이뤘다가 헤매는 30대를 주변에서 많이 봤다. 그럼 앞으로 어떤 태도로 삶에 임해야하나,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나날. 내 눈앞에 한 사람이 나타난다.
아파트 현관키를 놓고와서 잠시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출근시간대라 주민들이 자주 왔다갔다하는데 그날따라 사람이 안보였다. 현관 유리창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한명만 나와라’ 주문을 외우고 있는데 시야에 진청 부츠컷과 하얀 스니커즈가 보였다. 드디어 사람이 나오는구나! 시선을 올리니 새하얀 패딩을 입은 여자분이었다. 실루엣으로만 봤을 때 선이 가늘고 날씬했다. 카드키 찍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리자마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몽클레어 로고를 가슴에 새긴 그녀는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였다.
나를 보며 생긋 웃어보인 할머니. 그 할머니를 보는 순간,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내 안에서 정의가 내려졌다. 나는 그 할머니처럼 되고 싶다. 태어나서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은 처음이었다. 나도 30여년이 지났을 때 청담동 할머니처럼 평생 자기관리를 해온 티가 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자기관리는 날씬한 몸매만 가리키는 건 아니다. 잠깐의 착오로 문 앞에서 종종 거리고 있는 낯선이에게 안타까움을 시선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여유와 마음의 공간. 저 할머니처럼 나이들고 싶다는 생각을 안고 한없이 할머니의 깃털같은 걸음걸이를 바라봤다.
모든 이들은 젊음을 부러워한다. 한 살이라도 젊어 보이기 위해 시술을 받고 젊게 입으려 안 어울리는 캐주얼 매장에 들락거린다. 조금이라도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기 위해 아등바등 한다. 그 모습은 20대 때 내 모습이랑 비슷해 보인다. 가지지 못할 것을 갖기 위해 아웅다웅 하는 모습. 그걸 가져도 행복해 질 수 없다는 걸 알면서 모르는 척 살아간다.
날씬하고 여유로운 청담동 할머니들을 보면서 인생은 길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빠른 성공과 함께 평생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나에게 맞는 라이프 스타일 찾아 인생을 길들이며 평생 여유롭게 살 것인가.
나는 후자를 택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