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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Oct 12. 2021

청담동 이선옥씨

완벽한 이름이란


청담동에 어울리는 완벽한 이름






밥알이 동동 뜬 식혜를 앞에 두고 한사람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이선옥씨 당신은 대체 누구인가. 안마기 회사가 떠난 상가는 몇 개월 동안 공실이었다. 상가건물 앞을 지날때마다 이 자리에 딱 북카페나 들어오면 좋겠다 싶었는데, 언제부턴가 인테리어 공사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업종이 들어올지 기대 됐다. 사실 저 자리는 들어오는 업체마다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 안에 자리를 떴던 다소 불운한 터였다. 식당이 들어오기엔 유동인구가 너무 적고 카페나 빵집이 들어오기엔 바로 옆에 스타벅스가 있었다. 공사가 진행될수록 화이트와 우드톤이 두드져 보였는데 그럼에도 어떤 업종인지 감이 안왔다. 궁금해하며 그 주변을 오가던 어느 날, 간판이 등장했다.       


“이선옥 청담떡방”

결국 그곳은 떡집이었다. 떡이라니. 자고로 떡집은 마트나 정육점 사이에 끼어 있는게 자연스러운, 홀로 자립하기엔 한없이 약한 아이템 아닌가. 게다가 코로나 시국에 이렇게 넓은 공간에 카페형 떡집을 차리다니 이선옥씨의 패기에 감탄과 우려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궁금한 마음에 개업과 동시에 이선옥씨 가게를 방문했다. 입구 쪽에는 소포장된 떡들이 정갈하게 놓여있었다. 가격대는 2000원~4000원대. 정갈한 외관을 봐서는 꽤 고급떡을 팔줄 알았는데 시장에서 볼법한 투박한 떡들이 소포장 비닐에 싸여있었다. 떡 몇 개를 집어들고 커피 한잔을 시켜서 매장 앞에 앉았다. 1시간 정도 있었을까 진귀한 광경을 봤다. 헬멧을 쓴 사람들이 5분에 한번 꼴로 매장 안으로 들어와서 쉴새없이 떡을 픽업해갔다.      


아! 이선옥씨. 이선옥씨는 단순히 매장장사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요즘 MZ세대들의 니즈와 핵가구 트렌드를 파악하여 철저히 소포장, 배달 중심의 사업모델을 구축했다. 포근하고 단아한 이름과 달리 용의주도하고 전략적인 사람이었다. 갑자기 의심이 들었다.     


이 떡집은 마복림떡볶이, 매자식당 등 할머니 명인들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게 아닌 것 같다. 요즘 핫한 노티드도넛도 개인창업이 아닌 요식업 회사에서 기획한걸로 보면 이선옥 떡방도 CJ나 SPC같은 식품 대기업에서 만든 프랜차이즈가 아닐까? 노희영 소장님을 중심으로 CJ의 여러 팀장들이 모여 ‘청담떡방’과 가장 어울리는 인물, ‘이선옥’을 창조해낸 것 같았다.      


이선옥씨. 다시 봐도 이름이 너무 완벽하다. 복림,매자처럼 토속적인 이름과 달리 착할 () 구슬 () 품어낸 정갈한 이름. 청담동  샘터 앞에서 야무지게 떡메를 치다 스쳐가는 사람들에게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콩고물을 묻힌 인절미 한쪽을 넘겨줄  같은 이름. 완벽하다. 완벽해서 작위적이다.   

   

핸드폰을 열어 포털창을 켜고 청담떡방의 홈페이지에 들어 가봤다. 아무리 찾아봐도 창업자에 대한 스토리나 회사소개는 없고 죄다 떡 주문이다. 어렵게 신문기사를 하나 찾아냈는데 "30년 장인 이선옥 떡방은" 이라고 쓰여있었다. 분명 설명은 "장인"인데 수식하는 게 사람인지 떡방인지 애매하다. 일단 식품 대기업이라는 의심은 접었다. 기업이라면 이렇게 어설프게(?) 홈페이지를 관리하지 않으니.      


분명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아까 떡과 커피를 결제했던 영수증을 다시 열어보았다. 한껏 구겨진 영수증을 살살 펴는데 모골이 송연한 느낌이 들었다. “대표 : 이순옥.” 헉. 모든 예상이 다 틀린 느낌이다. 대표는 이순옥님이었다. 아..... 이순옥님. 사람을 잘 믿고 순박하여 뭐든 그냥 다 퍼줄 것 같은 이름이다. 내 추측이지만 이순옥님이 이선옥으로 둔갑한게 아닐까 싶다. 'ㅜ‘가 ’ㅓ‘로 바뀌었을 뿐인데 순박한 이름이 단아하고 정갈하게 바뀌었다. 게다가 그 이름은 청담, 떡방과 완벽하게 어울렸다.      


무슨 떡집 이름 하나로 이렇게 쓸데없는 글을 쓰냐고 물을 수 있다. 떡방이면 떡만 맛있으면 되는 게 아닌가? 싶을 수 있다. 맞다. 무엇이든 본질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본질은 기본이다. 게다가 본질을 빛나게 하려면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요소도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떡을 만들어도 투박한 간판과 허름한 인테리어로는 유명한 브랜드가 소집해있는 청담동에서 차별점을 가져갈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이순옥, 아니 이선옥님은 정말 똑똑한 사람인 것 같다.        


어쨌든, 이선옥씨의 승승장구를 빈다.          



#광고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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