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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Sep 08. 2021

청담동 사람들은 브런치 작가를 부러워한다

부럽다기 보단 신기함에 더 가깝지만


기업가, 전문직은 많지만

작가는 잘 안보이는 곳

 



청담진흥아파트 앞 카페 실비아(지금은 없어짐)에서 동네 분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 기관을 오고가다 만난 분들인데 나를 빼고 전원 원주민들. 20년 전에 삼성2동 힐스테이트가 사실은 임대아파트였는데 지금은 이 동네를 대표하는 대단지라며, 격세지감을 느낀다는 분들 사이에 쥐죽은 듯 조용히 앉아있다. 왜, 할말이 없으니까. 엄마들 모임에 끌려나간 유치원생처럼 원주민들만 아는 대화에 끼지 못하고 주스만 쪽쪽 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내가 대화에 못 끼는 걸 알아차린 배려 깊은 분이 화제를 돌린다.

“근데, 시드니는 취미가 뭐에요?”

속으로 외친다. 독서. 하지만 지금 독서라고 하는 건 계속 유치원생처럼 여기 앉아 있겠다는 의지 아니겠는가. 자고로 대한민국에서 ‘취미’에 대한 물음에 ‘독서’라고 답하는 건 대화의 맥을 끊으려는 강렬한  의지와 상대방에게 이제 너랑 대화를 안하겠다는 투지를 표명하는 것이다. 난... 따뜻한  이분들과 함께 있고 싶었다. 근데 답할게 정말 독서밖에 없는 무료한 인간인데. 잠깐 고민하다가 나만의 비밀을 하나 공개했다.

“저, 브런치 작가에요.”

 

“브런치? 먹는거?”

일단 브런치 라고 하면 대체적으로 이런 반응이라 놀라지 않는다. 평소 이분들에게 신문물과 신조어를 알려드리는 역할을 하고 있던 터라 노련하게 핸드폰을 꺼내서 브런치 어플을 보여준다. 브런치는요, 다음 카카오에서 만든 글쓰기 플랫폼인데 일반 블로그와 달리 글 수준이 상당히 높아요. 제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저도 여기 작가고요. 저도 몇번 떨어졌다가 힘들게 됐어요.

 

순간 주변 공기가 달라진 걸 느낀다. 원주민들만 있는 모임에서 유일한 외지인이라 항상 연민과 케어의 시선만 느꼈는데, 이제 모든 원주민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날 쳐다본다. 바깥세상에서 본 걸 자세히 알려달라는 것처럼. 내 브런치 계정을 뒤적이던 한 분이 묻는다.

“나, 글잘쓰는 사람 진짜 부러워.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하는 거야?”

 

핸드폰에 시선을 모으며 내 글을 읽는 분들. 내 계정에 있는 매거진 ‘나는 아이를 낳고 어려졌다’와 ‘노력하면 호구된다’를 탐독하며 킥킥대거나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엉뚱한 생각이 든다. 이 분들이 브런치 작가를 할수 있을까? 창작의 베이스는 고통인데,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 고통없이  높은 수준의 사교육과 고등교육을 받으신 분들이 창작을 할수 있을까.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여전히 제게 이런 끔찍한 불안과 스트레스를 주셔서."

내가 만들어온 많은 것들은 불안과 고통의 산물이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상상력과는 무관하다. 나의 인생에서, 또 내가 속한 집안 환경 속에서 겪은 수많은 일들이 고스란히 나의 창작물이 되어 세상에 던져진 것이다. 고통을 잊지 위해 8월의 폭염속에서 아파트 지하주차장을 달리며 만든 다섯번째 작품은 내가 만든 것들 중 가장 많은 성과를 안겨다주었고 반면 별 사건이 없을 때 만든 것들은 그다지 많은 환영을 받지 못했다.

-이석원, <보통의존재>

 

이석원 작가 뿐 아니라 노희경 작가도 청춘이 아름답다고 하는 건 유복한 사람이나 하는,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한다. 노희경 작가는 같은 에세이에서 자신의 10대 20대는 처참했다고 한다.


 청춘이 아름답다는 말이, 새빨간 거짓말인 걸 알게 된 건 서른 중반이 훌쩍 넘어서였다. 그 말을 한 사람은 아마도 이십대에 벌써 푸근하고 짜릿하게 완벽한 애인이 있고, 집안이 유복하며, 하는 일마다 승승장구 잘 풀린 별나도 별난 사람이거나, 청춘에는 청춘이 싫고, 중년에는 중년이 싫고, 노년에는 노년이 싫다고 말하면서 허구한 날 지난날을 그리워하거나, 오지도 않은 날을 기대로 채우는 어리석은 사람일 거라, 나는 단정한다. 단정의 기준은 물론, 내 청춘에 빗대어 서다.

- 노희경, <지금 사랑하지 않는자 모두 유죄>


청담동을 보면 기업가와 의료쪽 전문직들이 많이 보인다. 청담 진흥아파트에 다음 이재웅 대표와 네이버 이해진 의장이 위아래 살았다는 일화가 대표적이다. 우연일수도 있지만,  환경적인 부분도 있다고 본다. 이 동네에는  유복한 사람들이 모여산다. 자식들을 강남8학군으로 보내고 대한민국 최고 사교육을 시키고 집안에서는  자본과 경제에 대한 교육이 소소하게라도 이뤄진다. 어린 시절부터 빈틈없는 체계적 교육과 자본에 대한 이해가 받쳐주는 환경에서는 창작자보다는 기업가나 전문직이 나올수 밖에 없지 않나 싶다.


반면, 그외 직업군은 잘 보이지 않는다. 특히 작가는 거의 보질 못했다. 분명 이 동네 분들은 교양수준도 높고 안목도 있는데 소설가나 에세이를 쓰는 작가군이 별로 없다. 내 나름의 결론은 이 곳에 '결핍'이 없기 때문이다.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소설가들의 삶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데, 소설가들의 삶을 들쳐보다보면 다시 태어나야 하는게 아닌가 싶을정도로 처참할 때가 많다. 내 최애작가 로맹가리에 대한 한 소개다.


본명은 로맹 카체브(Roman Kacew). 1914년 5월 8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무명 연극배우 니나 카체브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유태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피해 리투아니아, 폴란드 등지로 이주하였고, 13세 때부터 프랑스 니스에 정착해 성장했다.


사생아와 유태인출신 인종차별...

두번째로 좋아하는 가네시로 가즈키는 이렇다.


1968년 일본에서 태어나 철저한 마르크스주의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조총련계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지만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영화나 책을 탐독했고, 이후 아버지의 전향으로 인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매국노라는 비난까지 얻으며 일본인 학교에 진학했지만 여기서도 일본인들에게 차별을 받으면서 성장하게 됐다.


재일교포 매국노 차별. 흠.


가난한 소설가의 대표격은 <해리포터>를 쓴   조앤 롤링이 아닐까싶다. 이혼하고 생후 4개월 된 딸하고 작은방 한 칸 집에서 정부의 생활 보조금으로 살다가 <해리포터>를 썼다. 물론   비카스 스와루프(대표작: 슬럼독 밀리어네어)나 얀 마텔(대표작: 파이이야기) 처럼 풍족한 외교관 가정에서 자란 사람도 있는데, 그들도 해외 등지를 다니며 느낀 외로움과 결핍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풀어왔다.  이정도면 소설가의 기본조건이   핍박과 차별, 결핍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경제력이 일정 수준을 넘어선데다 개개인에 대한 차별이 덜한 환경에서는 창작의 기운을 자극받는 작가 직업군이  없는 게 아닐까.         


기업인, 의사, 변호사 들이 많은 곳에서 혼자 '작가'라고 하니 동경해주는 분들이 많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것, 일면식 없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는 소설가(또는 작가)라는 직업은 동경받아 마땅하다. 다만 크게 흥행한 작가, 소설가가 아니고선 청담동에 살긴 좀 어렵겠다. 특히 소설가는 대한민국에서 소득이 가장 낮은 직업 Top 3 이기  때문에 (1위 문화해설사 2위 시인 3위 소설가) 일단 이 동네에서 월세를 낼수가 없다. 나도 그나마 큰 회사에 다니면서 글을 쓰고 있으니  어떻게 붙어있는거지 전업작가였다면 언감생심이다.   


그래도 글 쓴다니까 '부럽다','멋지다' 해주신 동네분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님들이 더 부럽네요.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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