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딪치면 사과한다
청수골의 밤이 고요한 이유
남과 부딪치면 사과한다
해외영업 11년차 직장인으로써 코로나 전까지 출장이 잦았다. 적으면 한 달에 한번, 많으면 일주일에 한 번씩 출장을 가곤 했다. 고단한 일정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왔을 때 ‘아, 드디어 한국에 왔구나.’하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내 어깨에 사정없이 격렬한 환영인사를 날려주는 사람들. 회전근 파열이 의심되는 통증에 어깨를 붙잡고 뒤를 돌아보면 이미 환영인파는 귀신처럼 사라지고 없다. 이럴 때 ‘오, 그리운 나의 고향에 드디어 왔군’하는 안도감이 들곤 했다.
처음 이런 상황과 마주쳤을 땐 기분이 상하기도 하고 나라수준이 이것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에 좌절하기도 했다. 유럽 8개국을 담당했을 때도, 일본, 중국, 동남아 어디를 가도 행인과 부딪쳤을 때 사과하지 않는 나라는 없었다. 그런데 그냥 이해하기로 했다. 왜냐면 다들 그러니까. 그래, 사람이 바쁘다보면 좀 부딪칠 수도 있지. 바쁜 현대사회에서 어깨 좀 부딪쳤다고 잠시 멈춰 사과의 말을 건네는 건 관용과 효율을 중시하는 한국문화에 적합하지 않는 행동양식인가보다 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청담동으로 이사를 오고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됐다.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처음 마트에 간 날이었을까. 장바구니를 들고 마트 이곳저곳을 돌고 있는데 내 또래로 보이는 어떤 여성분과 살짝 부딪쳤다. 충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살짝 스친거니 한국문화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냥 지나가려하는데, 여성분이 내 장바구니를 와락 잡았다. 뭐지, 화내려는 건가? 전투태세를 갖춰 날카로운 눈초리로 그녀를 쳐다보는데 그녀는 눈썹을 팔(八)자로 만들며 이렇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솔직히 당황했다. 그렇게 세게 부딪친 것도 아니고 가던 방향이 달라 살짝 스친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분은 연신 죄송하다고 했다. 내가 곧 “아, 괜찮습니다.”라고 한 뒤에 그녀는 장바구니를 놓고 떠났다. 생각해보니 서로 부딪친 건데 그분은 사과를 하고 나는 사과를 받아주는 게 되어버렸다. 기분이 이상했다. 아니 신선했다. 이렇게 남과 부딪친 다음에 서로 사과인사를 나눈 게 거의 처음인 기분이었다.
그녀뿐이 아니었다. 길을 걸어갈 때나 마트에 갈 때나 누군가와 부딪치게 되면 그들은 꼭 사과했다. 사실 당황스러웠다. 이곳에서 한두블록만 넘어가면 직장생활을 하는 테헤란로인데 그곳에서는 부딪혀도 딱히 사과하는 사람이 없다. 청담동도 그 사람들과 같은 한국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인데 왜 다들 사과를 이렇게 잘할까?
첫 번째, 외국생활을 한 사람들이 많다. 동네 사람들과 대화해보면 해외에서 생활하다 오신분 들이 많다. 비율적으론 미국과 일본이 많은 듯하다. 미국은 사람 많고 복잡한 건 한국과 비슷하지만 ‘oops, sorry’가 꽤 일상적이다. 일본, 특히 도쿄사람들은 일단 남과 부딪치지 않는다. 자신의 발걸음 속도와 궤적을 계산해서 정확히 타인을 피해간다. 어쩌다 계산이 잘못되어 부딪치게 되면 손바닥을 상대방에게 들여보이며 ‘스미마센’을 외친다. 그 쪽 문화권에서 생활을 하다온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자신들에게 젖어있는 생활습관을 보여주는 듯하다.
두 번째, 자존감이 높다. 꼭 청담동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주변에 사과를 잘 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존감이 높다.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타인에게 사과를 한다해서 자신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다고 믿는다. 반대로 자존심이 쎈 사람들은 타인과 경쟁속에서 자기 가치를 확인하기 때문에 사과를 잘 하지 않는다. 길가다 부딪친 사람에게 사과를 했을 때 자신이 ‘낮아지는’ 기분이 든다면 자존심이 쎄고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 확률이 높다.
방학 때 간간이 한국을 들린다. 오랜만에 맡는 고국의 냄새가 반갑다가도, 사과에 인색한 사람들을 마주하면 슬퍼진다. 남의 발을 밟아도, 어깨를 부딪쳐도, 새치기를 해도 절대 먼저 사과하지 않는다. …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이 드물다보니, 상대방도 용서를 모른다. 사과 받을 권리와 봉변 줄 권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남의 일터에 찾아가서 업무 방해하는 걸 사과 받을 사람의 당연한 권리의 행사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고, 과도한 보상을 사과의 전제조건으로 먼저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 미주 한국일보 칼럼(‘18.1.10)
가끔 친구나 가족들이 집에 놀러오면 청담동의 밤에 놀라곤 한다. 화려하고 복작거릴 것 같은 청담동이지만 그건 한강변 일부지역일 뿐.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오면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제일 크게 들리는 고요한 동네다. 나는 청담동의 고요함이 바로 ‘미안함’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빠르게 사과하면 빠른 용서는 그림자처럼 따라 올 수밖에. 고요하고 차분한 청수골의 밤은 바로 이런 자세에서 오는 게 아닐까.
ps. 물론 사과 안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다만 저의 일천한 경험이지만.... 확률적으로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