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드니 Nov 22. 2022

면접관 일기 _ 2화. 면접관이라고 다 정상은 아니다

또라이는 어딜 가나 있다


지성집단에 속해있으면 나도 지성인이라는 뜻이다. 반대로 주변에 또라이가 많다면 나도 그럴 확률이 높다. 에이스가 많은 면접관들과 있으니 나도 에이스가 된 기분이었다. 요즘 업무를 하면서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었는데 아주 조금 회복되는 기분. 하지만 그 기분은 오래 가지 않았다. 곧 저자거리 주막에서나 들릴 법한 부랑자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우렁찬 혀꼬인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반가운 낯섦이 아닌 불편한 익숙함이 느껴진다. 사무실 아래층에 근무하는 돈과장이다. 돈과장은 나보다 10살 이상 많은 선배로 평소 업무 외에 모든 것에 관심이 많은 인물이다. 외향적인 편이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지만, 특정 인물들 앞에서는 내향인인 척하는 나. 일단 숨자는 생각으로 몸을 바싹 웅크렸다. 설마 나랑 같은 조는 아니겠지 아닐거야. 한쪽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짚는데, 돈과장이 내 옆으로 바짝 다가온다.


“신과장님, 우리 같은조에요. 잘해봐요~~." 돈과장은 펄럭이는 종이를 내 눈앞에 갖다대며 면접관 타임테이블을 보여준다. 빼곡하게 들어있는 스케줄 표 위에 절망적인 라인업이 보인다.

 

직무면접 A조 - 신과장, 돈과장, 곰과장

 

아.. 나 돈과장이랑 같은 조네. 그 말은 4박5일 동안 이분과 함께 면접을 진행하고 점수를 매겨야한다는 거구나. 함께 배치된 다른 면접관인 곰과장은 연구소에서 온분인데, 이분도 역시 에이스 였다. 젊잖고 둥글둥글한 성격의 소유자.  그래, 곰과장을 의지하면서 이분과 시간을 잘 버텨봐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는데 옆에 앉아있던 동기와 눈이 마주쳤다. 이런 상황에서 눈빛으로 마음 읽는 건 너무 쉬웠다. '너 망했구나.'. '응, 나 망함 ㅠㅠ'. 활발하고 유쾌한 돈과장은 면접관 대기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인사를 돌린다.


“오우 김과장님 안녕하세요~ 저는 어제 점심부터 와있었습니다. 김과장님 만날 생각에 너무 떨리는거에요~ 여기 SBS랑 KBS가 나와요 너무 신날 거 같애!! 우리 저녁에는 소주 먹어야하는거 알죠? 하하하핫”

 

관자놀이에 집중되던 두통이 점점 퍼지고 있었다.  

 

고통도 잠시, 지원자들이 인재개발원으로 도착하고 있어서 재빨리 면접을 진행하는 강의실로 올라갔다. 우리에게 할당된 강의실에 들어가니  노트북 3대가 세팅되어 있었고 디지털  시계와 벨이 놓여져있었다. 디지털 시계는 스톱와치로 시간을 재는 용도였고  벨은 강의장 안팎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외부 상황을 모르는 면접관들이 벨을 누르면 밖에서 스탭들이 지원자를 들여보내준다. 생각보다 아날로그 감성 넘치는 면접 시스템에 괜히 추억에 잠겨있는데, 갑자기 돈과장이 벨을 들고 뛰쳐 나가더니 밖에 서있는 스탭들에게 외친다.

“여기, 소주 두병이요!”

 

하.. 큰일이다. 나보다는 일단 이 분을 만날 지원자들이 걱정됐다. 일단 나는 평소 할말을 하는 편이니 내가 돈과장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귓속에 든 물을 빼듯 고개를 흔들고 모니터에 뜬 지원자들 정보를 확인했다. 완전 블라인드 면접이라 신상이나 학교등은 파악할 수 없었다. 대신 이름대신 보이는 지원자 코드와 자기소개서는 읽어볼 수 있었다. 요즘 자소서를 대신 써주는 업체도 있다고 해서 그런지 우리 때와 달리 자소서에 실수가 있는 사람은 거의 없어보였다.  

 

우리가 맡은 건 직무면접이었다. 해당 직무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주면 30분 안에 정보를 해석한 후 주장-논리-결론을 만들어내야한다. 직무면접이 낯선 면접관이 있을 수 있으니 친절하게 인사부에서 가이드와 예상질문도 줬다. 주로 정보해석 능력, 분석력, 논리력, 표현력을 평가하면 된다. 한명의 면접관이 질문을 독점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 세명이 역할을 나눠야한다.  인사하는 사람, 전문가처럼 질문을 하는 사람, 클로징 멘트를 하는 사람. 개인적으로는 인사하는 사람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돈과장이 나서서 지원자를 당황시킬 텐데, 인사와 클로징이라도 마음을 편하게 해주겠다는 생각에.


그런데 돈과장이 나에게 전문가를 시킨다. 시드니 과장님이 업무를 많이 해보셨으니 전문 인터뷰를 잘 하지 않겠냐고. 인사파트를 맡고 싶다고 의견을 피력했으나, 기어코 자기가 인사를 하겠다고 한다. 자기가 괜히 전문가 역할을 했다가 취업사이트에 욕이 올라올 것 같다고 두렵다고 했다. 음.. 일단 알겠다고 했다. 사실 뭘해도 상관 없었다. 전문가 역할을 맡은 면접관의 가이드를 찬찬히 봤다. 지원자들이 발표하고 첫 번째 질문을 하기 때문에 가벼운 질문부터 해야한다. "파악하신 정보에 대해 다시 한번 말씀해주세요." 또는 "지금 주어진 정보에서 가장 이슈라고 생각한 부분은 어떤 건가요?"


왼쪽에 돈과장, 오른쪽에 곰과장. 가운데 내가 앉아 면접을 시작했다. 클로징을 맡은  곰과장은 이미 지원자랑 동기화가 돼서 벌벌 떨고 있다. 시드니, 나 왜이렇게 떨리지? 내가 시험보는 것도 아닌데. 선배님은 제가 시간 싸인드리면 "면접 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음 말씀 해보세요." 이것만 하세요. 걱정마세요. 라고 하며 곰과장을 안심 시켰다.


드디어 면접이 시작되고 첫번째 지원자가 들어왔다. 직무면접 문제를 자세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핵심적인 부분은 A라는 회사가 직면한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인하우스를 해야하냐(업체가 회사 안에 들어와서 프로젝트 진행), 100% 외주를 써야하나, 아니면 자체적으로 해결해야하냐를 선택하는 문제였다. 자료가 상당히 방대해서 당황스럽긴 했지만 논리만 잘 짜면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첫번째 지원자의 발표를 듣고 내가 질문을 했다.

"발표 잘 들었습니다. 말씀 주신 결론이 인하우스 맞죠? (네) 그렇게 선택하신 가장 큰 이유 1가지만 말씀 주세요."


내 질문에 지원자가 자기가 했던 발표를 요약해서 다시 정리한다. 3가지 안 중에 인하우스가 비용이 가장 적게들고 기간도 짧았다. 다만 내재화지수가 낮고 내부 인력이 많이 붙어야하는 단점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 질문은 "그렇다면 선택한 안의 단점은 무엇이고 그럼에도 해당 안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요?"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하지만, 두번째 질문을 맡은 돈과장은 바로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지원자에게 따져물었다.

 

“인하우스가 비용이 싸고 기간이 적게 들긴 하는데, 결국 인하우스로 운영을 하다보면 기간이 길어지고 돈도 많이 들텐데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뭘 해결해야해요?"

지원자의 얼굴이 사색이 된다. 사전에 제시된 정보에 없는 내용이다. 심지어 저런 질문에는 나도 답을 못한다. 그리고 이미 인하우스가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게 정량적으로 제시된 상태인데 저런 질문을 하다니. 지원자가 스무스하게 자기 생각을 말해 넘겼다. 나도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다시 돈과장이 급발진한다. 인하우스를 했다가 안좋았던 경험이 있는지 자기 생각을 구구절절 말하며 내 말이 맞지 않냐고 관철 시키려고 한다. 거기에 말린 지원자는 얼굴이 홍당무가 된다.

 

울상이된 지원자를 그냥 보기 어려워서  돈과장의 말을 가로채 화제를 전환했다. 겨우겨우 첫 면접을 마치고  말을 가로챈 게 조금 미안해서 지원자가 퇴장한 후에 이번 친구 어땠냐 하면서 돈과장에게  말을 걸었다. 그랬더니 너털웃음을 지으며 아주 맘에 든다고 한다. 돈과장 본인이 정치외교학과 나왔는데 정외과 학회장을 했던 친구라고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고. 아, 마음에 들어서 그렇게 코치코치 캐물었구나.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원자보다 면접관이 더 말을 많이 하는건 문제가 아닌가? 이날 면접 후에 인사부 직원에게 문의를 해놓으려고 메모를 해놨다.  

 

오전 면접을 마치고 잠시 주어진 휴식시간. 내 점수가 틀린게 없는지 다시 보는데 돈과장이 말을 건다.

돈과장 "시드니 과장님, 세상에는 3가지 성이 있는거 알아요?"

나 "네? 그게 뭔데요."

돈과장 "남자, 여자, 정외과여자. 하하하하하."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그 뒤로 돈과장은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공격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중간에 돈과장을 제지할까 했지만 그러면 앞선 지원자들과 형평성이 떨어질 것 같아 일단 냅뒀다. 지원자들은  우리회사든 어디든 공격적인 태도로 압박하는 면접관을 만날 수 있다. 그럴 때 사실 머릿속이 하애진다. 그럴 땐 일단 차분해지려 노력해야한다.  만약 이 사람이 정상이 아니라는 판단이 빠르게 들었다면 재빨리 수긍해야한다. 면접관은 답안지를 보면서 지원자를 평가한다. 그래서 정보는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 정보를 가지고 몰아세우는 경우를 만나면 일단 “죄송하지만 그 부분까지는 고려하지 못했습니다.”라고 하자. 어떤 사람이든 일단 ‘죄송하다’는 말에는 흥분을 멈출 확률이 높다.


기억해야한다. 면접관이 모두 정상적일 수 없다.

우리가 사회에서 또라이를 만나듯이 면접장에서도 그럴 수 있다.

 

 

Tip. 급발진하는 면접관 잠재우는 법
“그 말씀도 맞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중점적으로 본 것은 -”
“제가 그 부분은 미처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음 질문으로 토스)”





 

이전 01화 면접관 일기 _ 1화. 상어 면접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