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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Sep 10. 2024

찌개남을 찾습니다

똠얌쌀국수였는데...



속이 니글거렸다.


신입공채로 입사한 회사는 대기업 지주회사를 모회사로 둔 건축사무소였다. 내부에서도 여러 부문으로 나뉘어지지만 부동산사업을 주로 하는 부동산본부로 배속되었다. 그곳에서 시공사를 만나고 조율하는 업무를 주로 했다. 업무는 배울 게 많고 실무중심이라 좋았지만 회식이 너무 많은 게 흠이었다. 열심히 집중해서 업무를 마치고 퇴근 하려고 하면 항상 부장에게 발목을 붙잡혔다.


그날도 그랬다. 전날 시공사인 00건설과 폭음을 한 후 술이 깨지않아 사무실에 시체처럼 엎드려있었다. 점심시간까지 기다리긴 어려울 것 같아 회사 지하 푸드코트가 오픈하는 오전 11시에 맞춰 바로 달려나갔다. 나의 해장메뉴는 하나다. 바로 똠얌쌀국수. 식용유를 삼킨 듯한 니글거림은 강한 향신료과 알싸한 매운 맛로 진압이 가능했다.


메뉴가 다 왔다는 진동벨 소리가 들리고 재빠르게 뛰어가 음식이 든 쟁반을 들고 도는데 퍽, 소리가 났다. 첨에는 직원 중 누군가가 일부러 날 때린 줄 알았다. 다다다다 소리를 따라가니 10살 정도 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뛰어가고 있었다. 배꼽에서는 알 수 없는 뜨거움이 느껴졌다. 새하얀 셔츠는 진한 빨강으로 낭자했다. 맹수처럼 포효하고 싶었지만 이른 시간이라 소리를 받아줄 대상이 안보였다. 튀어나오는 고성을 잡고 범인을 잡으려고 하는데, 치고 간 아이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사방에 퍼진 쌀국수 가닥을 수습하고 나니 사무실 사람들이 점심을 먹으러 내려왔다. 우연히 마주친 한 동료는 내 모습을 보고 칼에 찔린 줄 알았다고 했다.


다음날 회의시간에 한 동료가 우리 건물에서 일어난 일 같다며 글 하나를 보여줬다. ‘찌개남을 찾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어떤 아이엄마가 자신의 음식을 주문하고서 잠시 물을 가지러 간 사이에 갑자기 아이의 비명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놀라서 가봤더니 얼굴에 빨갛게 화상을 입은 아들이 펄펄 뛰며 소리를 지르고 있고 가해자는 자리를 떠버렸다는 것이었다. 글쓴이가 묘사한 장소와 시간, 그리고 가해자의 행색이 나와 비슷한 것 같았지만 나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찌개가 아닌 똠얌쌀국수를 시켰으니.


그날 오후 경찰에게 연락이 왔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찌개남이었다. 어린 아이니까 넘어가려고 했는데 아이를 통제하지 않은 부모가 적반하장으로 나를 쓰레기로 만들어 놨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게 없어 방재실에 찾아가 CCTV를 돌려봤다. 누가 봐도 아이가 먼저 와서 부딪치고 사과 없이 뛰어갔다. 나는 CCTV 영상을 몰래 녹화해서 핸드폰에 담은 뒤, 아이엄마라는 사람이 올린 커뮤니티에 반박성으로 공개했다. 글이 올라가고 댓글이 미친듯이 달렸다. 사람들은 바로 아이엄마라는 사람을 공격했고 나도 댓글 몇개를 확인하고 바로 잊어버렸다.  


사건은 일단락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회사에서 ‘찌개남’이었다. 그건 ‘똠얌쌀국수’였다고 설명했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뻘건 찌개국물을 들이키느라 정신없는 짐승, 그리고 화제의 인물. 몰상식한 찌개남의 누명을 벗었음에도 동료들은 나와 함께 있는 걸 꺼렸다. 부서 회의가 끝나고 잠시 편안하게 티타임을 하는 시간, 이 시간이 불편해서 화장실로 향했다. 스마트폰을 손가락으로 튕기며 또 니글거리는 배를 움켜쥐고 있는데 세면대 쪽에서 내 이름이 들렸다.

“부동산본부 김치올씨, 아까 표정 봤어? 부장이 엄청 갈구더만.”

“아, 그 찌개?”

찌개라는 소리가 들린 순간 이상하게도 더 이상 속이 니글거리지 않았다. 화장실 칸막이 문을 너머 날아온 그 단어는 칼날이 되어 나와 회사의 연결된 끈을 잘라줬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줄무늬 야구복을 입은 남자아이가 나를 흔들고 있다. 아이 옷에는 ‘녹담초’라는 글자가 쓰여있었다. 맞다, 학교 운동장에 들어와서 야구 헬멧을 잠깐 손댔던게 기억났다. 아이 말로는 야구부 투수가 던진 공에 맞아 기절했다고 한다.

“아저씨, 119 불렀어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10분 정도 지났을 때 구급대원들이 도착했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병원에서 CT도 찍고 피도 뽑고 여러 검사를 했는데, 결과적으론 별 문제는 없었다. 그래도 하루는 쉬어야 할 것 같아서 대관예약을 한 앨리스에게 연락을 미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명함이 가게에 있었다.


어쩌지? 내일 오픈시간에 단체손님들과 그녀가 가게를 찾을텐데. 그렇다고 그녀의 명함을 가지러 가게로 가기엔 컨디션이 안 좋았다.


혹시 몰라 핸드폰을 들어 인스타그램을 켰다. 왜인지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식당에서는 아이들 조심...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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