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마실래?"
"난 아아. 샷 추가해 주세요”
"샷 추가하면 3 샷인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9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 샷을 추가하여 커피를 주문하는 고객이 걱정되었는지 카페 직원이 물었다. 난 당연히 괜찮다고 했다. 나이트 근무인데 병동 컨퍼런스와 회식 때문에 일찍 왔으니 밤동안 일을 하려면 카페인 수혈이 필수다.
3교대 근무자에게 커피는 물이며 혈관을 타고 도는 피다. 근무를 시작하면서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 오는 사람, 커피숍에서 테이크아웃 해서 오는 사람, 믹스커피를 진하게 타서 들고 나오는 사람 등 우리는 커피와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있다. 물론 커피를 못 마시는 사람도 있다. 동료 중에는 카페인을 섭취하면 심계항진(심장이 마구 뜀)과 어지럼증, shock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카페인에 대한 역치가 매우 높은 편인 듯하다. 커피를 마셔도 졸리고, 밤에 잠도 잘 잔다.(그런 줄 알았다.)
카페인은 우리 몸에 영양소로 작용하는 물질은 아니지만, 체내 대사 작용과 관련하여 중추신경을 자극시켜 정신을 맑게 하고, 혈액순환을 높이며, 이뇨작용을 통 하여 노폐물을 제거하며, 위산 분비를 촉진하여 기초 대사율 을 높이는 등의 순기능 효과가 있다(Hong JH 2011)
나의 텀블러에는 항상 물 대신 커피가 담긴다. 나이트 근무 때는 3샷 주문해서 들고 가고, 집에서 캡슐커피를 내릴 때는 2개가 기본이다. 달달한 커피도 좋아한다. 초코시럽이 잔뜩 들어가고 휘핑크림이 눈처럼 소복이 올려진 카페모카는 대학생이 된 이후 나의 최애커피였다. 시럽 없이 우유와 커피의 맛만 즐기는 라테도 좋아한다. 아! 믹스커피도 빼놓을 수 없지! 머리가 아프거나 출근했는데 졸릴 때, 신경이 곤두서 있을 때 믹스커피 두 봉 다리 딱 뜯어서 차갑게든, 뜨겁게든 쭉 마시면 잠이 깨고 기분이 좋아진다.
사실 커피에 대한 거창한 찬사를 늘어놓으려는 것은 아니다. 커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원두 종류는 무엇이 있고 그에 따라 달라지는 커피 맛은 더더욱 모른다. 하지만 커피콩 볶는 냄새는 참을 수가 없어 로스팅 카페를 하는 지인의 가게에 종종 간다. 아메리카노 한 잔과 치즈케이크 한 조각을 시켜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 세상 모든 행복을 가진 기분이다.
하지만 이렇게 일상에 항상 녹아 있던 커피를 끊어보겠다고 생각했다. [슬초브런치프로젝트 2기] 종료 후 생겨난 여러 소모임 중 운동소모임에 들어가면서부터다. 불규칙적인 근무 형태로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가질 수 없으나 그 와중에 루틴을 만들어 보겠다고 덜컥 소모임에 들어갔다. 다들 하루 운동량과 수분섭취량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커피 대신 물을 마셔보기로 했다.
출근하면 700mL 텀블러 가득 따뜻한 물을 담는다. 근무 중 마스크를 계속 착용해야 해서 수시로 물 마시는 게 불편하기는 하지만 두 번, 총 1.5L가량 마시려고 노력했다. 처음 5일, 커피 없이도 근무하는 데에 지장이 없었다. 커피가 없으면 졸릴 것 같고 일에 집중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피곤하거나 졸리지 않았다.
커피 없이 살 수 있구나!
커피를 끊었고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커피를 마시면서 종종 나타나던 증상(두통)이 카페인 금단 증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카페인 금단 증상은 이미 오래전에 정신질환으로 분류하고 진단명도 만들어졌다.
미국정신의학회(APA)가 카페인 금단 현상도 정신질환으로 분류했다. 12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APA는 지난달 발표한 '정신질환 진단·통계편람 제5판'(DSM-5)에서 카페인 금단과 중독이 일상생활을 방해할 정도면 정신질환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카페인 섭취를 중단하거나 줄인 이후 24시간 이내에 두통, 피로나 졸림, 우울 증상이나 짜증, 집중력 저하, 구토와 근육통 같은 감기 유사증상 등 5가지 중에서 3가지 이상의 증상을 경험하면 카페인 금단으로 진단된다.(연합뉴스. 2013/06/13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6313729?sid=103)
커피를 5일 동안 마시지 않은 상태에서도 잘 생활하고 있었다. 6일째 되는 날 병동의 환자가 커피를 사 주셨다. 6일 만에 입안에 들어온 '아아메'에 혀가 즐거웠고 혈관에 에너지가 차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카페인에 대한 역치가 매우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스스로가 우스웠다.
'아, 나도 커피를 마시면 잠이 안 오는구나. 그동안 누워서 휴대폰 보다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늦게 잔 것이 아니라 잠이 안 왔던 거구나.'
그 뒤로 또 4일 동안 커피를 마시지 않았고 유혹에 못 이겨 마신 날은 커피를 마신 지 이미 8시간 이상 지나고 있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젯밤에 출근하며 가져갔던 커피 때문에 잠이 안 오고 있다면 비약일까? 아침에 퇴근하고 한 시간 반 자고 깼는데 졸리지 않다. 이제는 커피를 마시지 말아야겠다.
(*커피에 대한 개인적인 취향을 존중합니다. 저의 몸에는 커피가 안 맞는다는 걸 이제 알게 됐어요. 그래도 커피 향과 그 맛은 그리울 거예요. 그럴 때는 카페인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디카페인으로 먹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