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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령견 꼬맹이의 마지막 목욕.

by 보니또글밥상

치매가 온 이후 꼬맹이 너를 목욕시키는 일이 언니한테는 아주 큰일이 되었어.

꼬맹이 네가 태어나서 수백 번이나 했었을 목욕.

목욕하는 것을 썩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목욕을 시키면 얌전했던 꼬맹이 너였는데


네 몸이 아파서인지 짜증도 많이 늘었고 내가 네 몸을 만지는 것을 싫어했었어.

그러다 보니 이빨을 닦아주기 위해서는 너에게 물리지 않기 위해 제법 용기와 아주 재빠른 손동작이 필요했고

너의 발톱들을 깎기 위해서도 적절한 기회를 엿보는 눈치와 그 기회를 재빨리 포착해서

네 발톱들을 깎아야만 했었지.


그뿐만이 아니라 꼬맹이 네 귀가 접히는 귀였기에 통풍이 잘 되지 않아 귀에 염증도 종종 생기곤 했었어.

그래서 내가 수시로 네 귓속을 들여다보고 킁킁 거리며 냄새가 나는지 맡아보고 약을 넣어주곤 했는데

너도 눈치가 생기니 나의 어떤 행동에 내가 너에게 어떤 행동을 할지 알아채더라.


녀석... 똑똑하지는 않았어도 그런 눈치는 있었네. 날 닮아서 그랬나?

여하튼 사진 속에서 너는 곤히 자고 있구나.


꼬맹이배.jpg

저렇게 자고 있는 너를 목욕시키고 나서 난 완전 넉다운이 되었어.

내가 그렇게 지쳐있든지 말든지 넌 그냥 잠만 자더라.


그래도 네가 곤히 자고 있는 모습을 보니 너를 목욕시키면서 힘들었다는 생각이 그냥 사라졌어.

사진 속의 볼록한 꼬맹이 배.


배가 갑자기 불러온다는 생각이 들어서 며칠을 지켜보다가 꼬맹이 너를 동물병원에 데려갔었어.

동물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엑스레이도 찍었었지.


검사 후 다소 심각한 수의사 선생님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수의사 선생님이 네 몸에 암이 퍼져있어서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고 더 큰 병원에 가더라도 꼬맹이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하시더라.


그러면서 꼬맹이 네가 원래 예상했던 생존 기간보다 2년을 더 살았으니...

오래 살았다고 그러면서 수의사가 조심스럽게 안락사를 권했었어.

네가 많이 고통스러울 거라고 그리고 많이 아파하고 있다고 하시면서

꼬맹이 네가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이면 안락사를 하는 게 꼬맹이 너를 편하게 해주는 거라고 하셨어.


그 뒤로 다시는 널 목욕시킬 수가 없었지.

다시 목욕을 시키기도 전에 넌 네 별로 영영 가버렸거든...


만약 저 때가 마지막 목욕일 줄 알았더라면

너한테 짜증 내지 않고 좀 더 다정하게 말하면서 목욕시킬걸...


만약 저 때가 마지막 목요일 줄 알았더라면

기특하게도 목욕 잘했다고 말해주며 네가 그렇게도 좋아했던 닭고기를 더 많이 줄걸...


만약 저 때가 마지막 목요일 줄 알았더라면

귀청소도 더 꼼꼼하게 해 주고 이빨도 더 잘 닦아줄걸...


만약 저 때가 마지막 목욕일 줄 알았더라면

발톱 깎을 때 신경질 내지 않고 좀 가만히 있으라고 소리치지 않았을 걸...


난 왜 너에게 그렇게도 부족하고 모자란 보호자였을까...?

굳이 변명하자면

나에게 있어 꼬맹이 너는 처음이자 마지막의 노령견이었고

너에게 있어 나라는 여자인간은 처음이자 마지막 보호자였으니

서로 서툴렀던 게 당연한 거겠지...?

에구.. 구차한 변명이다...


그래도 꼬맹이 네 기억 속에는 지구별에서 보낸 기억들 중 좋은 기억이 최소 51%는 되었으면 좋겠다.

그 정도는 되어야 언니가 안심하고 나중에 널 보러 갔을 때 마음이 아주 조금은 편안할 것 같아...

언니보다 너그러운 마음을 가졌을 꼬맹이 너니까 언니 많이 이해해 줘, 알았지?


오늘도 바쁜 시간들 속에서 수없이 꼬맹이 너를 생각한 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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