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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길 Apr 25. 2022

제목 없는 소설

소은

소은


트로피가 왔다. 투명한 유리 트로피였는데 꽤나 무겁고 커서 좁은 집 어디에도 마땅히 어울리는 곳이 없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며칠간 사람들은 나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비난같은 축하의 말을 들으며 우아함을 상상했다. 진짜 축하가 아닐 것이다. 묘한 시샘이 섞여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고독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고독함. 그것은 트로피만큼이나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 촌스러움이다. 촌스러운 고독함을 생각하니 영애가 떠올랐다. 영애. 이름도 촌스러운 영애.

영애는 나의 수상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서로 겹치는 지인이 많으니 듣지 못했을 리가 없다. 당연스레 그애에게서 연락은 오지 않았다. 분노와 경멸을 넘어선 무시. 영애는 나를 무시하려 애쓰고 있을 것이다.


영애의 아버지는 부인을 무척 사랑해 자신의 딸 이름도 영애로 지었다고 한다. 영애는 촌스러운 이름이라며 툴툴거렸지만 나는 그애에게 무척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영애는 같은 학과 동기였다. 신문방송학이란 남들에게 소개하기 제법 그럴 듯한 학문이었고  수업도 대체로 재미있는 편이었지만 나는 그 속에서 미래를 그릴 수가 없었다. 글도 영상도 애매하게 따라가며 글이든 영상이든 깊고 좁게 배우는 학문을 택할걸 그랬나 싶었다. 불안한 마음에 아무 수업이나 더 듣자 싶어 복수전공으로 선택한 것이 문예창작이었고, 거기서 영애를 만났다.


영애는 문예창작학과 학생이었지만 신문방송학을 복수전공하고 있다고 했다. 왜 하고많은 학과 중에 신문방송이냐고 물으면 영애는 말했다.

“멋있잖아. 이상이 아니라 현실을 쓰는 것 같아서.”

영애가 말하는 현실과 이상이 무엇인지 구분할 수는 없었으나 굳이 말하자면 영애는 현실보다 이상에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영애는 퍽 글을 잘 쓰는 편이었다. 개성있고 톡톡 튀면서도 잘 읽히는 것이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영애와 닮아있었다. 그러나 내용은 대부분 로맨스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뻔하고 지루하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교수는 영애의 글을 좋아했다. 사랑을 말하는 방식이 독특하다나. 하루는 영애에게 연락을 해 학생들 앞에서 영애의 글을 발표하고 해석해줘도 되겠냐고 묻기도 했다. 영애가 연락을 받았을 때 나는 영애와 함께 학생회관에서 김밥을 먹고 있었다. 영애는 크게 기뻐했고 당연히 그래도 좋다고 말했다.


화분을 사랑한 아이 이야기였다. 화분에는 물을 듬뿍 줘야 한다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바닷물을 떠 줬는데 화분이 죽어버렸다는 바보같은 이야기. 그 이야기를 읽었을 때 나는 너무 비현실적인 이야기라 와닿지 않는다고, 다른 글을 내는 게 낫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바보같은

 글이 교수의 취향이었다니. 다음부턴 성적을 잘 받기 위해 무조건 사랑 타령이나 하는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은아 너는 애인 없어?”

사랑이 가득한 영애는 늘 이렇게 바보같은 질문을 던졌는데 그때마다 영애가 조금 미웠다. 영애는 전형적인 미인상은 아니었지만 예쁜 편이었다. 쌍꺼풀 없는 눈과 작고 오똑한 코, 두툼한 입술이 잘 조화되어 귀엽고 새침한 인상을 줬다. 그래. 너 예쁘지. 매력 있고 성격 좋지.

그때마다 내 모습이 창피해졌다. 힘없이 휘날리는 짧은 머리가, 구깃구깃하고 헐렁한 셔츠가, 까무잡잡한 얼굴이 어쩐지 공주같은 영애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애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했지만.


대학생활을 하며 영애랑 다니는 2년 동안 영애에게는 애인이 있었는데 내가 아는 것만 세명이었다. 영애는 그러니까 사랑이 가득한 영애는 내가 아는 한 애인이 없던 적이 없다. 영애가 노골적으로 애인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영애의 말 곳곳에는 그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어젯밤 애인과 술을 많이 마시는 바람에 속이 좋지 않아 해장을 해야겠다는 이야기나, 애인이 빌려준 목도리가 따뜻하다며 그 목도리 브랜드를 추천하는 식의 이야기가 그랬다.

“준이가 그러는데 오늘 눈이 올 거래.”

“준이가 누구야?”

“내 애인.”

영애는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듯 이야기했다. 영애에게 애인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존재라는 듯이.


애인은, 그러니까 사랑이 가득한 영애의 애인은 영애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듯 했다. 어쩌다 영애를 포함한 동기들과 술을 마실 때 시간이 늦어지면 영애는 중간 중간 자리를 비웠다. 화장실을 핑계 삼았지만 나는 그것이 애인과의 통화를 위해서라는 걸 진작부터 짐작했다. 영애가 왜 늦은 시간까지 술 마시는 일에 애인의 양해를 구해야 하는지, 얼마나 잘난 애인들이길래 그렇게 낮은 자세로 연애에 임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연애다운 연애 한번 해본 적 없는 내가 영애에게 이래라 저래라 말하기엔 비웃음만 살 것 같아 잠자코 있었다. 그래. 넌 사랑이 많지. 그런데 사랑밖에 없지. 그렇게 생각하며 말이다.


내가 아는 영애의 세 애인 중 영애가 마지막으로 사귄 애인은 특히 영애의 사랑을 받았다. 종종 나의 자취방에서 잘 때 영애는 꼭 밖으로 나가 애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경쓰지 않을테니 방 안에서 통화를 하라고 누차 말해도 영애는 괜찮다며 기어코 밖으로 나갔다. 너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내가 안 괜찮다고. 사람 신경쓰이게. 최고기온이 영하 8도인 기록적인 한파도 영애의 통화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 추운 밖을 돌아다니며 통화를 하다 돌아온 영애의  빨갛게 부르튼 손 한쪽에는 과자나 아이스크림같은 간식거리 한봉지가 들려있었다.

“이렇게 추운 날 너도 참 미련하다. 그렇게 애인이 좋디?”

내가 타박을 하면 영애는 배시시 웃고 말았다.


그 해 겨울, 그러니까 영애의 손을 부르트게 했던 유난히 추운 그 해 겨울, 나는 2학년 2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하려던 참이었다. 영애는 계속 학교를 다니며 최대한 빨리 졸업할 거라고 했지만 나는 휴학을 해 최대한 졸업을 유예하고 싶었다. 딱히 갖고 싶은 직업도, 가질만한 직업도 없던 터라 졸업을 한 후 삶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마지막 시험을 끝내고 동기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영애는 말했다.

“난 그냥 최대한 빨리 취업하고싶어. 돈 벌어서 안정적으로 결혼하고 살 거야.”

“결혼하면 안정적일까?”

“안정되고 결혼을 하는 거지. 결혼하고 안정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안정 절대 못돼. 난 그래서 결혼 안 할란다.”

“그건 인정. 그런데 나는 결혼 할 거야.”

결혼할 거라는 말을 하고 영애는 또 다시 꽤 오랜 시간동안 화장실로 사라졌다. 결혼한다는 그놈의 애인이 잘나지 않기만 해봐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소주를 털었다.


자리가 마땅치 않아 결국 트로피를 다시 케이스에 넣고 트로피를 넣은 케이스를 택배상자에 넣었다. 가지고 있기는 마땅치 않고 버리기엔 아까운 물건. 그런 물건이 생긴다는 건 귀찮은 일이다. 앞으로 또 트로피를 받을 일이 생길까. 이런 귀찮은 물건이 또 생긴다면 그건 정말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받지도 않은 트로피를 감당할 생각을 하는 내가 웃기네. 벌써.


방학을 하고 나면 동기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아르바이트를 집중적으로 하기도 하고, 본가에 들어가 휴식을 갖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자취방에 혼자 남아 글을 썼다. 쓰다가 지우고, 쓰다가 지우고. 그러고 나면 남는 글은 없었다. 나는 먹고 살 수 있을까. 숨이 턱턱 막히는 날들이었다. 영애도 본가에 가지 않고 자취방에 남기로 했다. 이번 방학엔 정말 글을 많이 쓸 거라고,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쓸 거라고, 그런 생각을 하니 벌써 신이 난다고 영애는 말했다. 그렇게 철없이 살면 살아남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영애처럼 살고싶었다.


영애와 나의 자취방은 그리 멀지 않아서 우리는 자주 서로의 집을 드나들었다. 같이 주제를 정해 글을 쓰는 날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주제를 정하지 않고 떠오르는대로 글을 써 바꿔 보았다. 영애에게 보이기 위해 억지로 쓴 글들은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쓰레기같은 글들이었지만 영애는 내 글을 보며 늘 좋다고 칭찬했다.

“우리 얼른 문예 당선되어서 등단했으면 좋겠다. 나란히 등단하면 참 좋을 거야.”

“그런 날이 오긴 할까?”

“그럼. 소은이 네 글이 얼마나 좋은데. 넌 꼭 등단할 거야. 나도 그렇고.”

영애는 내 글이 좋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점이 좋은지 말해주지는 않았다. 나도 굳이 묻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영애가 내 글을 좋아했던 이유를 알지 못한다. 어쩌면 그냥 빈말이었을지도 모르지.

영애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따지자면 영애를 좋아하는 편에 가까웠는데 그래서 자꾸만 심사가 꼬였다.


영애의 연애는, 그러니까 내가 아는 세번째 애인과 영애의 연애는 꽤 오래 지속되는 편이었다.

“내일은 만나기가 어려울 것 같아. 준이랑 일주년 파티를 하기로 해서.”

영애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내가  영애를 만난지도 이년이 다 되어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애가 세번째 애인과 파티를 하기 전날, 나와 영애는 나의 자취방에서 함께 글을 썼다. 밤까지 글을 쓰다가  딱 한캔씩만 마시자며 사왔던 맥주가 그날따라 달았고, 술을 더 사러 가자며 영애와 집을 막 나섰던 참이었다. 그애, 준이, 그러니까 영애의 애인에게서 연락이 왔고, 영애는 먼저 편의점에 가있으라고, 나를 따라 금방 편의점으로 가겠다고 했다.


편의점에서 맥주를 샀다. 영애가 어떤 맥주를 좋아할지 몰라서 그냥 캔이 예쁜 맥주들을 여러가지 골랐다. 맥주를 다 고르고 계산을 할 때까지도 영애는 오지 않았고, 영애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중이었다.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되돌아가는 길목에 영애가 있었다. 전화기를 붙잡고. 하얀 입김을 불면서. 어쩐지 영애의 통화가 끝날 때까지 영애를 마주치면 안될 것 같아서 나는 다시 모퉁이를 돌아 편의점으로 향했다가 집쪽으로 걷기를 반복했다. 하얀 입김을 불면서. 어쩌면 영애에게 아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했다. 종일 전화기를 붙잡고 있는 영애를 그런 식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었다.


“소은아. 나는 있지, 사람이 정말 좋아. 그런데 그게 너무 무섭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는 내가 싫어.”


며칠 후 영애를 본 건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였다. 이제 막 목욕을 마치고 머리를 말리며 대선 후보들의 토론을 보고 있던 참에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최소은씨 되시나요?”

침착한 목소리와 어울리지 않는 소식. 영애가 응급실에 실려왔다는 소식. 보호자 연락처를 물었더니 내 연락처를 부르더라는 소식. 모든 게 아이러니한 소식.


택시를 타고 응급실에 갔을 때 영애는 침대에 비스듬히 앉아 나를 맞았다. 영애의 뒷통수 한 가운데 반창고가 붙어있었다. 머리에 반창고를 붙이고 나를 보며 웃는 영애. 그 역시 아이러니한 모습이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 나의 말에 영애는 밤늦게 오게 해 미안하다며 택시비는 얼마가 나왔냐고 물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잖아.”

“별 거 아니야. 그냥 사고가 좀 있었어.”

정신이 없어 전화기를 잃어버렸고 기억나는 번호가 내 번호밖에 없었다고 영애는 덧붙였다. 전화기를 잃어버렸다고? 영애가 전화기를 잃어버렸다고?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도 모르게 의문이 튀어나왔다.

“혹시 네 애인이 이런 거야?”

영애의 눈이 커졌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아냐는 듯이. 소은이 네가 그걸 도대체 어떻게 아냐는 듯이.


“준이가 요즘 좀 아파. 그래서 준이를 말리다가, 아픈 준이를 내가 말리려다가, 바보같이 넘어졌는데, 내가 좀 운이 나빴어, 지금은 괜찮은데, 그러니까 준이가 그런 건 아니고.”


영애의 말에는 맥락이 없었지만 나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영애에게 있었던 건 아이가 아니었다.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들을 겨우 참으며 영애를 데리고 택시를 탔다. 우리는 택시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영애의 집앞에서 함께 내렸다.


영애만큼 체구가 작은 여자 하나가 영애 집 건물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를 본 영애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을 때, 그의 손에 깨진 스마트폰 하나가 들려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의 목에 붙어있는 반창고가 띄었을 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준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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