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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몽슈 Apr 30. 2024

흙,손일기 #1

흙 만지고, 꽃 키우고, 그림 그리며 시골 사는 이야기


어린 시절, 내 마음의 벗은 빨간 머리 앤과

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리아였고,

스무 살 시절 내 영혼의 뮤즈는 타샤튜더였다.

막연히 꿈꿔왔던, 내 깊은 곳에 깊이 간직해 왔던 그 꿈.

그 꿈을 간직하고, 꿈은 꿈일 뿐이라 여긴 채 나는 막연한 동경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제주도와

경북 영주를 오고 가는 삶을 살게 되었고,

제주와 영주를 오고 가던 3년의 시절을 보내고

경북 영주에서 정착하게 되었다.

경북 영주에 정착하게 된 이유는

농사짓고 싶어 하던 신랑에게

농사 지을 수 있는 땅이 생겨서였다.

낭만적이고 시골과 도시가 공존하고,

문화적인 삶을 향유할 수 있었던 제주가 더 좋았지만

시골이 없이 자라, 시골여자랑 결혼하는 것이

꿈꾸던 신랑의 꿈을 이뤄주고자

경북 영주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게 되었다.



경북 영주에 귀농하여 농사짓고 산지 10년 차 되어가지만

나는 아직도 농부라는 이름이 어색하기만 하다.


어린 시절 내 앞의 수식어는 늘 꿈꾸는 자였고, 만년 소녀였다.

소녀시절을 벗어나서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이라 불리워지는 일을 하였고,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 그림만 그리겠다고 한 뒤로 작가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이런 내가 농부가 되다니.

어린 시절부터의 나를 아는 사람들은

시골 가서 농부가 되었다는 말에 믿을 수 없어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림 그리고, 책 보고, 글 쓰고, 멍떄리고 산책하는 걸 좋아하는

한량이었기 때문이다.

노동의 가치를 알지 못했고, 땀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글로만 알던 나였다.

타샤튜더의 삶을 동경했던 이유도, 그가 3만 평 정원을 가꾸기 위해 흘렸던 땀의 가치에 대한 것보다는

그가 지어 입는 옷의 아름다움이나, 고요하고 온유한 그의 일러스트 작가의 삶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그 막연한 마음을 가지고 시골에 갈 때도 나는 타샤튜더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지

농사의 농자도 관심이 없었다. 농사가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

어린 시절 내가 봤던 농부의 모습은 늘 까많고, 막걸리를 드셨고, 땀에 젖어계셨던 모습이었다.

그러나 제주와 영주를 오가던 3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도시에서만 30년을 살았던 도시 바보였던 나는 흙에 대한 가치를 알게 되었고

무농약, 무비료, 무제초제 농사를 짓게 되었다.

고추농사, 하늘마농사, 얌빈농사... 여러 농사를 거치면서 나는 잠시 내가 되고 싶었던

타샤튜더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농사는 시골에서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 되었고, 그로 인해 지쳐갔다.

처음 가지고 왔던 낭만과 자본은 이미 땀과 함께 뒤범벅된 채로 공기 중에 흩날려 가버렸다.

아이도 태어나고, 생계에 고민하던 시점에서 신랑은 비교적 시간을 유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에어컨 분해청소를 겸해서 일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청년창업농이란 정책이 생겼는데, 사업자가 있어서 창업농을 할 수 없었던 신랑 대신

내가 본격 농부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는데, 그때 내가 신랑에게 선포한 말은..

" 내가 농사를 지어야 한다면, 예쁜 농사를 짓고 싶어,

  꽃을 키울꺼야!" 라고 선포했다.  

그렇게 그림을 그리면서 할 수 있는 농사를 찾았고 , 창업농의 도움으로 땅 2400평을 구입하게 되고

하우스를 짓고 본격적으로 4년 전부터 꽃 농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꽃농사라고도 불리우기도 부끄러울 수준의 꽃을 재배 하지만 말이다.

제대로 꽃농사를 하시는 분들처럼, 꽃을 대량으로 생산해서 새벽에 절화 해서 시장에 올려 보내고.. 하는 일들은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불가능하기도 했고, 반복되는 삶에 매몰되어질 내가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것이 드라이 플라워였다.

키우는 꽃들이 그냥 시들어서 사라져 버리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고,

꽃을 오래 향유하고 싶었다.

꽃 농사를 하기 전부터, 아니 시골에 내려오기 전부터 좋아했기도 했다.

드라이플라워는 먹는 농사는 아니지만, 우리 손으로 조물락 거리고

그 손은 다시 입으로 가기도 할 것이기에..

농약을 칠 수가 없다.

친정아버지는 아직도 풀약이라도 쳐야 한다 말하시고

동네 어르신들도 약 안치면 안 돼~라고 하시지만..

나의 신념은 확고하다.

먹는 농산물은 씻어서 먹기라도 하지, 드라이플라워는 그대로 말려서 사용하기 때문에

더더욱이 농약을 치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우리가 만지고, 밟고 , 호흡하는 공간에 독을 바르지는 않지 않는가

그래서 지금까지 농약과 비료 제초제를 치지 않는 꽃농사를 하고 있다.

무농약, 무비료, 무제초제의 농사는 일반 농사보다도 할 일이 더 많다.

한 여름 잡초와의 전쟁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나는 잡초를 좋아하고, 잡초를 활용하는 걸 정말 신나 한다.

좀 더 잡초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어서, 잡초에 대해서 많이 공부하기도 한다.

이렇게 농부가 되어 갈수록 깨닫게 되는 진리가 있다.

흙의 소중함에 대해서다.  


요즈음, 금수저, 흙수저, 다이아몬드 수저..등 온갖 수저들이 난무하고

금손,..흙손등 손으로 사람을 나누지만 그래봤자 땅에서 나오는 것들로

무언가 계급을 나누는 것 같은 웃기는 시대이다.

어차피 우리는 다 흙에서 왔고, 다시 흙으로 돌아갈 것인데..

흙손,흙수저는 마치 가장 하층민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그 시대의 풍조가 참 마음이 아프다


사실, 우린 모두 흙에서 시작되어졌는데, 태초에 우리를 만드실 때부터 우린 흙으로 빚어진 존재들이고

우리가 먹는 모든 것들, 입는 것들, 잠을 자는 공간까지도 모두 흙이 아니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가장 고귀하고 소중하며 가치있는 "흙"이 왜 이렇게 가치 절하를 당해야하는지 모르겠다


흙손은, 다른 어떤 손보다 가치있는 손이며 생명이 시작되는 손이고, 고귀한 손이다.

흙을 만지고 일하다 보면, 떄로는 손톱의 때처럼 흙이 끼기도하고 거칠어지기도 하지만

나는 그것이 절대 부끄럽지 않다.

일하다보면 바지나 신발에 흙이 묻은채로, 급하게 어딜가게되어도 나에게 묻어있는 흙이 결코 창피하지 않다


흙에는 많은 생명이 호흡하고 있으며 가열차게 살아나가고 있는 공간이다.

그 흙을 맨손으로 만지며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손이 거칠어지기도 하고 까맣게 되기도 하지만


흙,손

나에게는 너무나 아름다운 손이다

나는

경상북도 영주의 작은 드라이플라워 꽃농장에서 흙을 만지며, 꽃을 키운다,

꽃을 키우며 아이들도 키우고 , 꿈도 키워나간다

자칭 감성 꽃농부 로몽슈의 흙손일기를 이제 시작해나가려고 한다.


ⓒ romongshu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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