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스타벅스, 무인양품, 이케아라는 취향
바야흐로 취향 존중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런 시대에 브랜드들은 불특정 다수의 대중보다는 자신의 브랜드를 열성적으로 따르는 팬덤을 형성하는데 더 많은 힘을 쓰고 있다. 브랜드는 자신의 팬덤이 지속적으로 브랜드의 효능감을 느낄 수 있도록 기술을 개발하고 기업의 철학을 정비하며 브랜드의 정체성을 공고히 한다.
단순히 좋은 물건을 만들어 팔면 되었던 상점들이 점점 브랜드에 집착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새로운 상품을 계속 만드는 것보다 좋은 브랜드를 형성하는 것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더 높여주기 때문이다. 이는 상품 중심에서 문화 중심으로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이 바뀌고 있음을 뜻한다.
아이폰, 스타벅스, 무인양품, 이케아
이들 브랜드는 오랜 시간 독특한 감성과 뛰어난 브랜딩 전략으로 하나의 팬덤을 형성하였다. 이들의 열성적인 팬덤 활동을 통해 동일한 상품과 브랜드를 공유하는 사람들은 점차 늘어나 하나의 취향 집단 형성하였고 각 카테고리에서 독보적인 아이콘의 위치를 차지한다. 이들은 소수가 소유하는 값비싼 명품이 아닌 중산층이 선망하는 이상적인 상품을 만드는 곳으로 입지를 다졌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들은 소위 힙한 브랜드였지만 지금은 준 고급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의 표준이 되었다. 이 브랜드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해당 카테고리에서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명품보다 싸고 시장 평균 가격보다는 비싼 금액이다. 둘째, 각자의 방식으로 뛰어난 상품 밸런스를 갖추고 있다. 셋째, 다양한 상품군은 통일된 정체성을 가지며 브랜드만의 아우라를 가지고 있다. 넷째, 전통적인 가족 구성보다는 1,2인의 소가구에게 인기가 많다. 이 현상은 하나의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취향"이다. 그리고 취향은 곧 "계급"을 뜻한다. 오늘의 우리는 취향의 소비를 통해 계급 문화를 탐닉한다. 이번 글은 계급을 탐닉하기 위한 우리의 무분별한 소비를 지적한다거나 그런 소비욕구를 어떻게든 부추기려는 기업에 대해서가 아니다. 계급이 의미 없는 현대 사회에서 다시 계급을 떠올리게 되는 현상에 대해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남과 나를 구별하기 위한 장치 "사회 계급"
계급을 떠올리면 우리는 크게 중세시대와 프랑스혁명을 떠올릴 수 있다. 중세에는 혈통 중심의 왕과 귀족, 그리고 평민이 있었다. 18세기 근대에 들어 장사를 통해 부를 축적한 상인들은 도시의 영향력 있는 자본가로 변모한다. 하지만 귀족들은 상인을 여전히 천대하였고 과도한 세금을 징수했다. 그 피해는 상인과 상인 고용한 노동자들에게 전해진다. 이들은 결국 프랑스혁명, 영국의 시민혁명을 통해 부르주아라는 제3의 계급을 형성한다. 이들의 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다수의 임금 노동자들이 지지했기 때문이다. 노동자를 뜻하는 프롤레타리아는 국민의 대다수가 이 집단에 속할 정로도 커다란 그룹이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만들어 냈다. 커다란 집단의 의견을 모을 수 있는 프롤레타리아가 들고일어나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깨달은 상위 계급은 점점 드러나지 않음을 미덕으로 삼는다. 서로 부를 공유하되 티 내지 않았다. 또한 그들은 자본주의라는 개념 아래 누구나 열심히 살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작은 문을 만들어 놓았다. 그 문은 그들이 안전하게 부를 공유하는 안전장치가 된다.
"그래 너희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어"
현대에 들어 대부분의 계급 사회는 사라진다. 하늘 아래 있는 모든 인간은 국가의 제도와 헌법 안에서 공정한 평가를 받는다. 그러므로 딱히 내가 귀족인지 부르주아 인지 알 기회도 없고 혹은 내가 어떤 계급인지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단지 내가 가지고 있는 자본과 내가 소비하는 문화를 통해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 핵심은 바로 "구별 짓기"다. 계급의 경계는 허물어졌고 기술의 발달로 정보의 접근성도 한계가 없어졌다. 더 이상 사회에서 특정한 지위를 부여받지 못한 사람들은 스스로 높은 자존감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자존감은 사회적 영향력과 타인에 대한 인정 그리고 스스로 특별하다는 자의식에서 온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거나 특별한 집단에 속한 사람이어야 한다. 아니 적어도 "나"는 구분되어야 한다. 저 사람들 중에 한 명이 아니라 바로 저기 있는 "그" 사람이 되어야 한다.
현대사회에 계급은 사라졌지만 계층은 존재한다. 이 계층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출신과 환경에 따라 통상적인 등급이 구별된다. 상위 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학력 자본과 물질 자본을 통한 상위 계층과의 거래뿐이다. (그래서 그렇게 미친 듯이 사교육에 돈을 쓰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고 싶다는 향상성이 있는 우리들에게는 계층이 필요하고 계속해서 구별 짓기를 재생산해나갈 것이다.
남과 다름을 스스로 표현하는 현대판 구별 짓기 "브랜드"
중세시대의 구별 짓기가 고급문화를 소비하는 계층 간의 격차였다면 현대는 커머셜 브랜드를 소비함으로 취향을 구분 짓고 있다. 내적 취향은 짧은 시간에 쌓을 수 없고 인내가 필요한 반면에 외적 취향은 상품을 구매함으로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에는 외적인 취향과 내적인 취향이 있다. 외적 브랜드는 상품이고 내적 브랜드는 자기 스스로 브랜드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번 글에는 우선 외적 브랜드를 집중하여 풀어내었다.
외적인 취향 : 아이폰을 구매함으로 애플의 브랜드를 입는 것
내적인 취향 : 꾸준한 글 쓰기를 통해 작가가 되는 것, 롱보드를 타고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고효주
자신을 표현하는데 가장 빠른 방법은 외적인 취향을 걸치는 것인데 브랜드는 바로 그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브랜드는 체험이나 경험으로 습득할 필요 없이 바로 구매 가능한 취향을 제공한다. 브랜드는 단지 취향의 제공만으로 역할을 끝내지 않는다. 자신을 구매한 고객들을 한데 모아 취향 공동체로 엮어준다. 아이폰을 가진 사람들, 전자책을 보는 사람들, 같은 로고의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이러한 형태로 보이지 않는 클랜이 형성된다. 해당 클랜에 속하게 되면 동질감과 안정감을 느끼 것과 동시에 크 클랜에서 지향하는 하나의 계급을 얻게 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꽃
"내가 그 브랜드를 구매했을 때 그 브랜드는 나에게로 와서 취향이 되었다."
브랜드의 소비는 곧 내가 원하는 계급의 표현
우리가 브랜드를 소비하는 이유는 그들이 다가와 나의 취향 곧 계급을 표현해주는 대체물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고 가성비가 떨어지는 명품이 여전히 활기를 치는 이유는 바로 상위계층의 계급을 표현할 수 있는 귀한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중세시대 가문을 형성한 귀족은 몇 대에 걸쳐 축적된 가문의 부와 미술품 그리고 고유한 양식의 문장이 있다. (자수가 놓인 린네 손수건이나 특별한 비법의 잼 같은 것) 이러한 양식은 남들로부터 자신들을 구분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 고전적인 양식은 희석되었고 자본주의를 통해 형성된 신흥 귀족들은 그러한 양식을 쌓기에는 스스로의 역사가 매우 짧다. 고급 브랜드는 바로 그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최근 부상하는 힙스터 문화는 주로 돈은 없지만 잘 배운 젊은 노동자 계층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쌓아 놓은 부가 없기 때문에 상위 계급의 명품을 소비할 여유가 없다. 이들은 그들 나름대로 자신들이 경배할 수 있는 문화와 브랜드를 만들기 시작한다. 문화적 계층만이 그들이 스스로 특별해질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탐지한 것이다. 이들은 오랫동안 명성을 누려 온 명품도 아니고 값싼 공산품을 선택하지도 않는다. 적어도 내 일상의 한 부분을 환화게 비추어줄 좋은 것들을 선택한다.
브랜드는 어떻게 나의 취향이 되는가?
변하고 있는 브랜드의 가치
변화를 갈망하는 잘 배운 노동자 계층은 부유함을 천박함 혹은 어리석음으로 갈음하고 있다. 큼직한 구찌 버클 허리띠에 엔진이 요란한 포르셰를 타고 다니는 모습이 오히려 촌스럽게 다가오는 것이다. "힙"한 느낌은 살짝 가려진 본질 속에 세련된 느낌이 은은하게 흘러나와야 한다. 과거 우리에게 상품은 얼마나 많은 기능이 얼마나 작은 공간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들어가 있는지가 가치의 척도였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내게로 다가와 나를 더 특별하게 해 줄 수 있는 상품이어야 한다. 그 가치는 디자인(스메그) 일 수도 있고 분위기(스타벅스) 일 수도 있고 그 브랜드가 주는 영향력(아이폰) 일 수도 있다.
고객은 취향의 가치에 돈을 지불한다.
쿠팡, 위메프, 지마켓 등 이미 차고 넘치는 오픈 마켓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는 온라인 마켓이 있다. 바로 29CM이다. 오픈마켓은 정확히 내가 사고 싶은 것을 인지하고 최저가의 가격을 얼마나 빠르게 받아 볼 수 있느냐가 경쟁 포인트이다. 29CM은 여기에 함몰되지 않고 고객에게 세련된 취향을 선물한다. 가격은 다소 비싸지만 고객은 29CM의 아이템이 나에게 입혀줄 취향의 가치까지 계산하고 지불한다.
하비인더박스라는 취미 상품 배송 서비스가 있다. 한 달에 한번 취향을 받아볼 수 있는 구독 서비스다. 클레이 아트부터 가죽공방 그리고 핸드드립 커피까지 다양한 취향들을 적절한 가격에 경험할 수 있다. 하비인더박스에 담긴 취향들은 DIY 재료로서 어떤 브랜드를 대표하지 않는다. 만든 사람이 곧 브랜드가 된다. 29cm과 하비인더박스의 아이템들은 나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충만하게 해 줄 수 있는 상품을 제공한다. 이들은 단지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취향 큐레이터로서 오직 받아 보는 사람만의 경험과 브랜드 가치를 컨설팅한다.
취향은 노출되어야 한다.
새로운 계급을 디자인할 수 있는 곳 "SNS"
(인증샷 : 가상 계급의 표출, 헤쉬 태그 : 취향 공동체를 엮어주는 매개체)
인터넷과 SNS의 발달은 우리에게 제3의 공간을 조성해주었다. 이곳은 물질적 자본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한 곳이다. 학력 자본, 문화자본, 심지어 외모 자본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이곳에서 우리들은 계급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SNS 안에서는 내가 공유한 사진 내가 쓴 글을 통해 내가 원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귀한 사진 하나를 얻기 위해 저 멀리 있는 분위기 좋은 카페나 레스토랑 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최근 글 잘 쓰는 방법에 대한 책들이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이유도 SNS를 통해 영향력 있는 글을 남기고 싶어 하는 욕구와 맞닿아 있다.
상위계급의 취향을 매일 같이 소비할 수는 없지만 한순간을 소비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다. 그 조각(인증샷)을 담아 나의 SNS에 올리게 되면 그 문화자본은 곧 내 것이 된다. 아니 내 것인 것처럼 귀속된다. 우리는 그렇게 취향의 소비를 통해 계급을 꾸준히 사모으고 있다. 헤쉬 태그(#)는 취향 공동체를 구분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취향이야 독특할수록 좋지만 남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또 곤란하다. 취향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동질감을 느끼고 함께 연대할 수 있는 요소가 필요하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취향이어야 그 안에서 비교우위를 통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취향은 내가 누군지 알려주는 신분증과 같다. 때문에 노출될 수 있어야 하고 노출될 수 있을 만큼 눈길을 끌어야 하며 노출된 것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우린 만족감을 얻는다. 앞으로 SNS상의 인증샷은 단지 먹기 전 음식 사진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더 까다로운 편집과 디자인으로 하나의 작품을 공유하는 현상이 증가할 것이다.
나 아이폰 쓰는 사람이야 라는 말로 이 글을 대신하고 싶지 않았다. 왜 아이폰이고 왜 스타벅스였을까 왜 무인양품이고 왜 이케아였을까?
이들 브랜드는 결국 현대판 가문이 되었다. 아이폰을 쓰는 사람, 스타벅스 커피를 즐기는 사람, 무인양품의 심플함을 좋아하는 사람 이들은 스스로의 역사와 취향을 발전시키고 있다. 우리는 단지 이들을 소비함으로 그들이 형성한 가문과 계급을 취할 수 있다. 하나의 브랜드에 속하게 되면 개인의 취향과 공동의 연대감을 동시에 취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분명 기업에게는 기회다. 라디오 주파수와 같이 예민하게 소비를 파고 들어가면 브랜드 공동체를 형성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가문으로서의 브랜드가 되려면 해당 브랜드에는 철학과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소비자들이 공부할만한 가치가 있는 브랜드가 될 수 있도록 꾸준히 자신들의 역사를 스토리텔링 해야 한다. 소비자 또한 그럴 가치가 있는 브랜드를 선택하는 게 좋다. 어떤 영향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견고한 브랜드, 사회적으로 피해를 끼치는 브랜드는 피하고 선한 영향력을 확장해 나가는 브랜드를 선택하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브랜드는 단지 걸치는 양식일 뿐 나를 대신할 수 없다.
사회의식의 발달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누구나 자신만의 취향과 계급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의 시대가 열렸다. 열린 기회만큼 개개인의 책임이 더 커진 시기이기도 하다. 이럴 때 일 수록 개인은 앞으로 더욱 현명해져야 다. 커머셜 브랜드가 결코 당신 가문의 전부가 되도록 자리를 내어주어선 안된다. 취향이란 인간 고유의 향기이고 삶의 양식이다. 마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향수를 찾고 싶듯이 취향 또한 나라는 사람이 갖는 오직 하나의 것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브랜드에 잠식되게 되면 무분별한 소비를 할 수밖에 없고 그 브랜드의 흥망에 좌지우지될 수 있다. 브랜드로서 쌓을 수 있는 취향은 극히 제한적이다. 돈으로 살 수 있는 모든 취향은 정신적인 취향의 일부에도 미치지 못한다.
누구도 구매할 수 없는 나만의 브랜드
중세시대의 구별 짓기가 고급문화를 소비하는 계층 간의 격차였다면 현대는 자신만의 양식을 만들어 주변에 영향을 끼치고 확산시키는 문화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자신의 개성과 존재감을 찾고자 탐색하고 도전하는 순례자들을 많이 만나고 접하게 된다. 이들은 취향을 찾는 과정을 통해 결국 자신의 길을 만들었고 수많은 팔로워를 얻었다. 토지 자본, 물질자본과 상관없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속속히 드러나고 있다. 껍데기에 불과한 외적 브랜드의 구매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스스로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자신을 표현하는 키워드를 좁혀 나가다 보면 대표 키워드가 남게 되는데 해당 키워드가 당신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될 수 있다. 이 과정을 응축 및 확장하며 스스로의 브랜드를 조각해나가길 바란다.
당신의 생활양식이 바로 당신의 취향이다. 취향은 곧 그 사람의 계급을 반영한다.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옷이고 보이지 않는 주민등록증이다. 높은 수준의 취향은 걸치는 게 아니라 내재하여 은은하게 드러나야 한다. 취향은 곧 계급을 표현한다고 정의했다. 하지만 그 취향의 계급론은 단지 신분의 서열화를 뜻하지 않는다. 취향을 계급 표출의 욕구로 삼는 것은 일차원적이다. 나라는 사람의 향기가 얼마나 사회와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입체적으로 그려보자. 오직 나만의 취향, 나만의 영향력을 갖는 것이야말로 우리 삶의 중요한 목표다.
오늘도 나와 당신의 취향을 위한 하루가 되었기를 바란다.
<연관 브런치>
<참고도서>
피에르 부르디외 "구별 짓기"
송길영 "상상하지 말라"
예쁜 카페를 찾는 고단한 청년들에게 희망이 있기를
어느 날 한 기사를 보았다. "청년들은 왜 예쁜 카페에 집착하는가"
요점은 여유롭게 사색을 즐기고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예쁜 인증 샷을 남길 집이 없다는 것이다. 네모 반듯한 다섯 평짜리 방을 얻으려면 보통 1,000만 원가량의 보증금과 50만 원 정도의 월세를 내야 한다. (서울 도심 기준) 적지 않은 돈이지만 너무나도 작은 공간이다. 이곳은 단지 편히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지 일상을 소비할 정도로 넉넉하지 않다. 기사에서는 가질 수 없는 좋은 집에 대안으로 예쁜 카페를 찾는다고 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커피가 너무 맛있어서 카페에 가는 경우는 드물다. 커피는 그저 장소 이용료에 불과하다."
하지만 현상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청년들이 멋있고 예쁜 카페를 찾는 이유는 삶의 질뿐만 아니라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는 하나의 수단이다. 작가가 아니라면 세상과 단절된 5평짜리 공간에서 희망찬 꿈을 키우기는 어려운 일이다. 자신들이 아는 로컬의 예쁜 카페는 바로 그들의 자존심이고 꿈을 키우는 소중한 공간이다. 카페는 원래 그런 곳이다. 집을 벗어나 홀로 고민하고 결정을 하는 곳 또는 타인과 문화를 나누고 생각을 나누고 정서와 교감을 나누는 역할을 한다.
내게도 카페는 특별하다. 주말을 비롯한 휴일에 홀로 카페를 자주 찾는 편이다. 사색을 하고 사람을 관찰하고 계획을 짜고 독서를 하고 글을 쓰고 음악을 듣는다. 이곳 내 모든 자기 계발이 이루어지는 소중한 공간이다. 마지막으로 헤밍웨이 단편선의 한 구절을 나누며 글을 맺겠다.
"나는 카페에 밤늦게까지 머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편이야. 잠들기 바라지 않는 사람들, 계속 살아있고 싶은 사람들, 살아서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사람들" -헤밍웨이,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 (A Clean, Well-Lighted Pl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