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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웅 Dec 18. 2017

취향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

취향 학자 부르디외가 말하는 계급 사회

어렸을 적 아파트 단지에 사는 친구들과 그렇지 않은 친구들로 구별되었다. 중학생이 된 친구들은 학원으로 끌려가기 바빴고 운동장에 남아있는 친구들과 학원에 가는 친구들로 구별되었다. 고등학생이 되니 학교가 인문고인지 실업고인지에 따라 구별되었고 대학생이 되니 대학의 소재지에 따라 구별되었다. 켜켜이 쌓여온 사회적 구별되기는 우리의 문화적 취향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고급문화란 무엇일까? 내가 고상한 클래식을 처음 접한 것은 중학생 때였다. 1년에 20시간이라는 문화활동시간을 의무적으로 채워야 했는데 클래식 공연이나 연극 등을 보고 확인서를 받아야 했다. 친구들과 나는 시간을 채우기 위해 근처 시민회관에서 하는 클래식 연주회를 종종 가곤 했다. 물론 제대로 감상하기에는 인내심이 부족한 나이였고 듣고 있는 곡을 해석할 능력도 없었기 때문에 지루하기 그지없었다. 공연이 끝나면 같이 참석했던 친구들과 놀러 갈 궁리만 가득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 스스로 여행을 떠나 본건 대학생 때였다. 학교를 휴학하고 아르바이트한 돈을 모아 유럽 배낭여행을 갔다. 유럽의 도시 곳곳은 예술로 가득했다. 나 또한 여느 배낭여행객처럼 수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을 돌아다녔다. 오스트리아에서 본 구스타프 클림프의 키스를 보고 경외감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 외 수많은 진품들 앞에서 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우두커니 쳐다보기만 했다. 그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나는 다시 학교에 복학하고 서양미술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을 듣게 되었다. 이 수업을 듣고 나서야 내가 가서 봤던 미술품들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여행을 가기 전에 이 수업을 듣지 못한 게 아쉬웠다. 당시 내게는 유럽의 예술을 해석할 능력이나 지식이 현저히 부족했다. 대학의 교양과목은 내게 문화를 해석할 줄 아는 식견을 키워주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나의 취향 감각을 키워주는 활동은 여기까지였다. 대학 졸업부터 사회초년생까지의 나는 변변한 취미를 키우지 못한 채 성인이 되었다. 취향에 관한 책의 한 부분을 들춰보면 나 또한 취향에 대한 로망이나 들뜬 로맨스가 하나 정도 있어야 했나 싶기도 하지만 삶의 균형이 무너진 채 취향을 탐하는 것은 내게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노가다' 판에서 일하는 가난한 청년이 어느 날 라디오에서 나오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에 꽂혀, 그날부터 차비와 점심값을 아껴가며 중고 클래식 LP를 사모을 수 있다. 결국 취향이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기호나 규율이 아무리 방해해도 자기만의 경험을 통해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어 그것들과 함께 삶을 더 잘 즐기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 김경"

물론 하루 세끼 라면만 먹으며 LP판을 수집할 수도 있지만 난 그 당시 취향보다 조금 더 인간적으로 사는 것을 선택했다. 스스로 여유가 없는 사람이 취향을 키우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다. 나는 스타트업에서 오랫동안 일해왔는데 굉장히 낮은 급여에서 시작해 연봉 증가율이 높은 편이었다. 연봉의 앞자리가 바뀔 때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문화적 취향은 다양해졌다. 나의 취향은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취미를 갖느냐에도 영향을 미쳤지만 결국 얼마를 소비하는지가 가장 큰 요인이었다. 나는 나의 취향이 변화하는 과정을 궁금해하는 중에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 짓기>를 만나게 된다.


취향의 차이가 사회적 신분을 구별 짓는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취향의 차이가 사회적 신분을 구별 짓는다고 주장한다. 정확히 말하면 사회적 신분이 개개인의 취향을 폭력적으로 통제하고 있지만 교묘하게 행해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인 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어나갈 이야기는 부르디외의 실증적 연구와 저서들에서 밝힌 취향의 사회학에 관한 것이다. 아래의 차례를 통해 차근차근 안내하고자 한다.


1. 너와 나를 구별 짓는 취향

  - 아비투스 (Habitus) : 취향, 습관, 삶의 양식

  - 취향은 개인의 문화 DNA

  - 취향은 이성적 선택보다 본능적 행동에 가깝다.

  - 취향은 계급적이며 사회적 관계를 취한다.

  - 더 이상 스타벅스를 마시지 않는 사람들

2. 취향 학자 부르디외의 실험

  - 취향 학자 피에르 부르디외

  - 프랑스의 취향을 수집한 부르디외

3. 취향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

  - 경제 자본(돈), 문화자본(학위), 사회자본(관계)

4. 너에겐 취향 나에게는 폭력

  - 상징 자본+상징 권력 = 상징 폭력

  - 브랜드는 어떻게 상징이 되는가?

  - 인스타그램은 어떻게 폭력이 되는가?

  - 선물은 어떻게 폭력이 되는가?

  - 은근하게 스며드는 상징과 권위

5. 취향에 권위를 부여하는 공인인증단체 "장"

  - 권력과 차별을 위해 필요한 그들만의 필드

6. 교육이 불평등을 강화한다.

7. 스스로 삶의 대가로서 살아가는 법




1. 너와 나를 구별 짓는 취향

- 아비투스 (Habitus) : 취향, 습관, 행동양식

(이 글에서 아비투스는 편의를 위해 취향으로 명명하겠다.)


클래식 보단 제즈를 좋아한다. 홍차보단 커피를 좋아하고 소주 보단 소맥을 좋아한다. 아침은 먹지 않고 약속이 없는 저녁은 샌드위치를 먹는다. 주말 한산한 시간에 영화관에 가는 것을 즐긴다. 추리소설 보단 세계문학을 좋아하고 종이책보다는 전자책을 주로 이용하는 편이다. 아날로그는 수집하고 디지털은 소비한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걷기를 좋아한다. 저녁보단 아침에 하는 운동을 좋아한다. 낮보다는 밤의 감성을 밤보단 새벽의 고요함을 좋아한다. 뜨거운 탕 안에서 몸을 녹이는 느낌을 좋아한다. 달콤한 커피보다 쓴 커피에 초콜릿을 녹여먹는 걸 좋아한다. 뜨겁고 격렬한 온도보다 따듯한 찻잔의 온도를 선호한다. 겨울이 오면 머스크 향과 비누향을 좋아한다.


취향은 개인의 문화 DNA

좋아하는 향기, 좋아하는 패션, 좋아하는 취미, 좋아하는 이성, 좋아하는 음식 등 다분히 개인적인 성향들이 한 사람의 취향을 구성한다. 취향은 버릇 즉 습관(habit)이다. 한 사람의 삶 속에 녹아들어 있는 문화적 양식이 표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취향 속에서 많은 상징 정보를 얻어낼 수 있다. 아래의 예를 통해 취향 A와 취향 B의 삶을 살펴보고자 한다.

 

취향 A : IT회사 마케팅 담당자 / 국내 대학 / 32살

그는 아침에 출근하는데 수많은 카페를 지나처 굳이 붐비는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신다. 지하철 입구에서 나눠주는 전단지를 받지 않을 뿐 아니라 최대한 몸을 틀어 마주치는 것을 피한다, 잦은 야근으로 귀가가 늦은 편이며 드라마 한 편정도 보고 씻고 자기 때문에 주중에는 자신을 위한 시간은 없다. 운동을 할 여유는 없고 비용이 부담스러워 포기한다. 회사에선 정장을 입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청바지나 운동복을 주로 입는다. 편안한 옷은 많은데 데이트를 위한 깔끔한 옷은 한벌 정도 준비되어있다. 점심은 회사 근처 카레집으로 향한다.(3일 전에도 갔었다.) 그는 금요일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불금을 즐긴다. 그에게 금요일 밤은 고된 노동의 끝을 알리는 크리스마스이브다. 한 달에 한 번 자전거 동호회에 참석하고 격주로 열리는 직장인 사교모임에 종종 참석한다. 그의 집에는 디지털 프린트된 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이 걸려있다. 그의 모든 생활패턴이 월급날을 기준으로 정렬된다. 각종 공과금부터 친구와의 약속을 월급날 기준으로 잡는다. 월급날 보름 전부터 생활비가 떨어져 스타벅스 옆에 있는 저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 간다.


취향 B : 작곡가 / 버클리 음대 / 34살

대중으로 붐비는 주말보다 주중에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들려 영감을 얻는 편이다. 일은 주로 오후 한 시부터 아홉 시까지 하는 편이지만 고용주가 없기 때문에 자유로운 편이다. 아침엔 가벼운 조깅을 하고 저녁엔 개인 트레이너와 함께 몸을 가꾼다. 옷은 오랫동안 이용해온 해외 명품 편집샵을 애용한다. 오전에는 주로 케냐 더블 A를 마시고 오후에는 예가체프를 마신다. 그는 누군가 전단지를 나눠주면 대부분 받는 편이다. 동물보호단체에 가입하고 동물의 학대와 관련된 기업의 상품은 구매하지 않는다. 직접 찾아다니는 동호회는 없고 지인 소개로 참석하게 와인 모임과 문학을 읽는 모임에 참석한다.


취향 A와 취향 B의 라이프스타일 살펴보았다. 우선 취향 A는 고상한 것보단 대중적인 것을 즐긴다. 식습관이나 취미를 살펴보면 1인 가구인 것을 알 수 있고 간편식을 먹는데 운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체형 관리가 어렵다. 집에 걸려있는 유명 작가의 그림은 예술의 해석이라기 보단 집을 꾸미기 위한 상품일 뿐이다. 월급날에 바짝 긴장하는 것으로 보아 월급 외의 자본이 거의 전무한 것으로 보인다.

그에 비해 취향 B는 모든 면에서 여유로운 생활을 보여준다. 주중에 미술관에 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직업적으로 얽매이지 않는 것을 의미하고 오랫동안 애용한 편집샵이나 커피의 취향 등이 지켜졌다는 건 경제적 변곡점이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지하철의 전단지를 받고 동물보호단체를 지지하는 건 자신의 삶 외의 타자의 삶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여유를 보여준다. 이처럼 한 사람의 행동과 취향을 통해 그 사람의 문화 DNA를 예측할 수 있고 나아가 사회적으로 어떤 위치에 속해있는지 알 수 있다.


취향은 이성적 선택보다 본능적 행동에 가깝다.

부르디외의 취향(아비투스)은 습관이나 관습을 넘어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삶의 양식이라는 포괄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는 보통 살아온 삶의 양식이 몸과 행동에 녹아들어 어떤 의도나 계산 없이 바로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매 순간 꽤 이성적인 판단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종종 온라인 쇼핑몰에 있는 20만 원이 넘는 신상 운동화를 사면 당장 보름 정도는 저녁을 굶어야 한다고 걱정하면서도 이미 결제를 마치고 해맑게 운동화를 들고 있는 내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있다. 오늘은 다이어트를 해야 하니 치킨을 먹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누군가 다정하게 치킨을 먹자고 하면 세상 환한 웃음으로 고개를 끄덕일 때도 있다. 이처럼 선택의 순간 나의 이성이 반대편에서 더 효율적인걸 고르라고 소리를 쳐도 결국 취향에 따른 무의식적 선택에 의해 채워진다. 자신의 삶의 과정 속에서 다른 선택지들은 따로 존재하지 않았고 사회도 딱히 다양한 선택권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취향은 스스로의 선택이지만 그 이전의 선택권은 사회가 제공하기 때문에 사회적 배경이 그 사람의 취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취향은 사회적 관계에서 계층을 구분한다.

우리는 보통 취향을 "나"라는 주최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본 것처럼 취향은 무의식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과거부터 체득되어온 사회 환경에 의해 너무나 쉽게 영향을 받는다. 사회에서 어떤 계급에 속해 있었냐에 따라 나의 취향이 물드는 것을 의미한다. 특정한 교육과 사회적 규범은 계속해서 개인의 취향을 침범하고 형성한다.

위에 언급한 취향 A와 취향 B를 각각의 사람으로 보면 굉장히 다른 개인의 취향으로 보인다. 만약 취향 A와 취향 B를 각 취향을 대표하는 계급으로 본다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A와 B로 구분될 수 있다. 개인과 개인의 비교에서 계층과 계층 간의 비교로 옮겨오는 것이다. A는 우리가 흔히 만날 수 있는 민중 계급 즉 노동자들의 모습이고 B는 문화적,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중상류층의 모습이다. 이처럼 취향은 각 계급의 특성이 녹아들어 하나의 계층을 만들어낸다. 노동자는 노동자의 취향이 생기고 학자는 학자의 취향이 생기며 자본가는 자본가의 취향이 생기는 것이다.

아비투스는 일종의 버릇이다. 버릇은 실천을 낳는다. 그런데 그 버릇은 사회적이다. 사회적이라는 것은 집단적이라는 것이며, 계급적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성적 주체가 아니며, 나의 행위 역시 합리적 선택이 아니다. 나라는 존재와 나의 행위는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된 버릇에서 비롯되었다. 이 사회적 버릇은 개인으로서 나와 계급을, 행위와 구조를 매개한다. "피에르 부르디외 (커뮤니케이션북스, 김동일)"


더 이상 스타벅스를 마시지 않는 사람들

- 벗어나려는 자와 합류하려는 자

한국에서 스타벅스는 1,000호점을 돌파하며 명실공히 카페 브랜드 1위를 차지한다. 마치 아끼던 인디밴드가 공중파 스타가 되어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닌 느낌을 받을 때 상실감을 동반하는데 스타벅스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과거 스타벅스가 카페베네를 뚫었듯이 스타벅스는 블루보틀에게 고급이라는 타이틀을 점점 넘겨주고 있다. 국내 1,000호점을 이미 돌파한 스타벅스는 더 이상 나만의 취향을 대변할 수 없다. 구별 짓기를 위한 브랜드는 향유하는 사람이 소수여야만 특별해진다. 사람들은 취향을 타인과 나를 구별 짓기는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상류 계급은 남들과 다른 취향 혹은 조금 더 소수가 영위할 수 있는 취향을 고집한다. 반면 민중 계급은 실용적이고 가성비 좋은 취향을 선택하고 또 남과 다르기보단 우선 남과 비슷한 취향을 통해 안정감을 찾고자 한다. 이런 차이로 우리 생활 전반의 서비스와 브랜드 재화에는 이런 계급의 특성이 반영되어있다.


사회 각 계층에 속한 사람들의 취향이 어떻게 계급으로 구별되는지 알려주겠다는 사회학자가 있다. 그는 대규모 취향 조사를 통해 중상류층 사람들이 대중적 취향과 구별해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에 우월한 문화적 가치의 ‘아우라’를 부여하고자 한다는 걸 발견했다. 부르디외는 이런 현상을 구별 짓기 혹은 드러내기 (distinction)라고 칭한다. 이 연구는 바로 남과 나를 혹은 계급과 계급을 구별 짓는 취향의 차이를 설명한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부르디외 실증조사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취향의 사회학을 알아보자.




2. 취향 학자 부르디외의 실험


취향의 차이가 사회적 신분을 구별 짓는다.


취향 학자 피에르 부르디외

피에르 부르디외는 취향의 계급화를 주장한 프랑스 사회철학자다. 그는 수많은 사람의 취향을 조사해 분류했고 사회적 계급이 어떻게 취향을 형성하고 관리하는지 증명한 학자로 유명하다. 본격적으로 이야기에 들어가기 앞서 한 가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그가 사람들의 기호를 계급 단위로 구분하는 조사를 한 이유는 단순히 사람들의 취향을 고급과 저급으로 재단하고자 함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의 취향이 스스로의 선택보다 사회에 의해 자연스럽게 강요된 것일 수 있고 그 취향이 결국 계급적 구별 짓기에 남용되는 것을 깨우치고자 함이다.


그는 사회 변혁에 대한 열망을 품고 행동하는 지식인의 대열에 합류한다. 특히 교육의 평등과 혁신을 부르짖었는데 결국 교육이 모든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핵심 기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은 프랑스 5월 혁명으로도 이어져 프랑스 명문 대학 중심의 서열 제도를 타파하고 모든 대학을 공립학교로 바꾸어 평준화한 뒤 학교 제정은 정부가 직접 담당하도록 하는 새로운 교육 제도를 만들어내는데 일조한다. 그의 많은 유산 중에 가장 유명한 저서는 바로 "구별 짓기" 다. 다양한 사회 계층의 사람들을 표본으로 조사하여 취향의 계급화에 대해 논리적으로 풀어낸 책이다. 그의 연구가 흥미로운 건 시간이 지나도 문화 취향의 계급적 구분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취향을 수집한 부르디외

"그는 1967년~1968년 사이 프랑스 3개 지역 도시에서 1,200명을 대상으로 실증 조사를 했다. 대상자는 다양한 사회적 대표성(성별, 소득별, 지역별, 학력별 등)에 따라 선발하였다. 부르디외는 수많은 질문들을 25개 항목으로 나누어 영화, 음악, 미술, 독서, 음식, 의복 스타일, 실내장식, 스포츠, 휴가지 등과 관련된 선호도를 조사했다. 그는 이 조사를 통해 개인의 취향이 단지 개인에만 머물지 않고 하나의 사회 계층을 형성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즉 계급별 사회적 취향이 개인의 취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질문 예시)

1.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특히 자주 듣는 것은?

2. 집에 손님을 초대할 때 어떤 음식을 대접합니까?

3. 당신이 좋아하는 옷 스타일을 고르시오.

4. 클래식에 관한 내용 중 당신의 의견과 가장 가까운 것은?

5. 영화를 볼 때 특히 무엇에 흥미를 느끼는가?

6. 다음 중 좋아하는 종류의 책을 골라주십시오.

7. 다음 이름 중 좋아하는 화가 3명을 고르시오.

8. 다음 곡들 중 알고 있는 작품을 고르고 작곡자 이름을  답하시오.

9. 박물관에 간 적 있습니까? 간다면 얼마 동안 머무르는지 답하시오.

민중 계급 : 22분 /중간계급: 35분/상류계급 47분

10. 아래의 사진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설명하시오.

민중 계급

"맙소사 어떻게 저렇게 손이 삐뚤어질 수 있나!"

"저런 노파의 손을 봐야 한다니 딱히 기분이 좋지만은 않군"

중간계급

"노동에 의해 닳고 닳은 손"

"사진으로 찍은 듯한 그림이군. 실제로 그림처럼 아름답군요."

"초기 반 고흐의 그림에 나오는 손, 즉 감자를 먹는 늙은 노인네의 손과 비슷하네요."

상류계급

"너무 일을 많이 한 사람의 손으로 아주 힘든 손 노동을 한 모양이군요."

"아주 아름다운 사진입니다. 노동의 상징 자체라고 할 수 있죠. 한때는 인간적으로 보였을 사람의 모습을 노동과 가난이 그토록 비참하게 뒤틀어버리다니 참으로 끔찍하군요." (답변 발췌 - 취향의 정치학, 홍성민)


위 사진에 대한 답변을 살펴보면 민중 계급은 여타의 상징과 비유 없이 직선적인 답변을 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에 중간계급과 상류계급은 단순히 사진이 풍기는 외적인 것 외의 숨겨진 의도나 뜻을 찾으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반 고흐의 그림을 운운하는 건 재밌는 답변이지만 그는 자신의 답변이 특별해 보이거나 의미 있어 보이길 원했을 것이다. 이렇듯 취향은 계급의 위치를 드러내 주는 좋은 기재가 되어주었다. 너무 일반화되어있다거나 연구를 위해 극단적 답변을 사용했다는 비평도 있을 수 있지만 학계가 납득할만한 보편성을 획득한다.


(본 답변은 1960년대의 프랑스 시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나온 것을 부르디외가 자신의 책을 기술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적절한 답변을 기술했을 것이다. 민중 계급이 모두가 저렇게 생각한다는 오해는 하지 말자. 표본적 오차는 존재한다.)


3. 취향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

부르디외는 위와 같은 실험을 통해 실험 대상자들의 문화적 취향을 범주화시키고 계급별로 구분 지었다.

위와 같은 사회 계급은 당장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러 자본에 따라 나뉠 수 있는데 부르디외가 말하는 자본의 종류에는 경제 자본(돈), 문화자본(취향, 학력), 사회자본(관계) 이렇게 세 가지 자본이 있다.



경제 자본 : 경제 자본은 우리가 익히 아는 돈이나 부동산처럼 경제적 가치를 갖는 모든 금융 자본을 뜻한다. 즉각적으로 화폐의 기능을 할 수 있으며 문화자본과 사회자본으로 치환할 수 있기 때문에 현대 계급사회에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자본이다.

문화자본 : 문화적 지식과 제도적인 학위 그리고 자격증 등을 뜻한다. 비싼 수업료를 내고 대학을 졸업하고 관람료를 내고 미술관을 찾고 비용을 지불하여 좋은 디자인 굿즈를 사는 등 주로 경제 자본 즉 돈을 희생하여 문화 자본을 취득한다. 문화자본은 서비스를 판매하여 경제 자본을 취득할 수도 있고 학력이나 경력을 인정받아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기도 한다.

사회자본 : 경제 자본과 문화자본을 비롯하여 주체자가 동원할 수 있는 사회적 지위, 직책, 인간관계 등을 뜻한다. 국회의원에게는 정치자금을 대주는 기업인이 사회자본이고 인플루언서에게는 팔로워가 사회자본이고 개인에게는 가지고 있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지인의 연락처가 사회자본이 될 수 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나오는 최민식은 "이게 얼마짜리 수첩인 줄 알아? 이게 바로 10억짜리 전화번호 수첩이야" 각계 인사의 명단이 적힌 수첩을 무기처럼 휘두른다. 이는 관계가 돈이나 주먹보다 세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한 장면


상류계급 (미와 여유로운 삶을 추구)

거대 자본가, 대기업 경영인, 과거의 유산을 대량 상속받은 상속자

공간 : 이들은 개인의 물리적 공간이 넓고 외부에는 항상 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있다.

취미 : 명성 있는 음악가의 클래식 공연, 요트, 펜싱, 골프, 수집, 학습 등

체형 : 잘 가꾸어진 체형을 유지하고 전문가에게 꾸준한 관리를 받는다.

음식 : 가공음식은 기피하며 잘 요리된 음식을 섭취한다. 신뢰할 수 있는 원산지를 선호한다.


중간계급 (절제를 미덕으로 하고 배움을 추구)

지식인, 예술가, 법률가, 고위 행정직, 전문직

공간 : 혼자만의 공간을 확보하는 편이다. 대체로 집을 소유하고 있다.

취미 : 연주음악 감상, 문화 공연 감상, 독서, 검도, 수영, 악기 연주 등

체형 : 대체적으로 잘 가꾸어진 체형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음식 : 요리된 음식을 선호하지만 필요에 따라 가공식품이나 간편식 샐러드를 선호한다.


민중 계급 (스타일이 무시되고 가성비를 추구)

임대수익이나 금융자산이 거의 없고 수당을 받는 임금 노동자

공간 : 자가 소유는 없고 집에 머무는 비용을 지불함

취미 : 여가 시간이 짧음, 축구, 농구, tv 시청, 복권

체형 : 체형관리가 잘 되지 않는 편이다.

음식 : 가성비다. 싸고 맛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딱히 가리지 않는다.


부르디외의 연구를 보면 이처럼 유사한 취향을 공유한 집단이 동일한 ‘계급’을 형성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계급 차이는 곧 취향의 차이며, 이는 곧 생활방식의 차이로 나타난다.

중간계급인 대학교수, 예술가, 문화 유통자는 자본의 대부분을 문화자본의 형태로 취득하므로 경제 자본이 빈약한 편이다. 이들은 체스를 하고, 오페라를 관람하며 미술관을 방문한다, 또한 <르몽드>를 읽는다. 앤디 워홀, 반 고흐를 좋아하고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를 듣는다. 반면 상류계급인 자본가와 기업 경영자들은 자본의 대부분을 경제 자본의 형태로 소유하며, 고가의 미술품 수집, 골프, 요트를 즐기고 경매를 통해 골동품을 구입하거나 호텔에서 휴가를 즐긴다. 민중 계급인 농민이나 노동자는 승마가 아닌 경마를 즐기고 클래식보다는 민중가요를 선호한다. 미술관은 그들에게 흥미를 주지 않지만 유명화가의 그림이 프린트된 머그컵은 가지고 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자본의 양이 빈약하다. 다른 자본을 늘리기 위해 하나의 자본을 희생해야 하는데 희생시킬 수 있는 자본이 없다 보니 다른 자본을 늘리 것조차 불가능하다.

중간계급 이상부터는 예술에 대한 해석 능력이 발현되어 미술관, 박물관에 취미를 가지는 반면 중하위 계급으로 내려갈수록 노동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는 가벼운 문화를 선호한다. 민중 문화는 즐기는데 필요한 노력이 덜한 대중문화, 매스미디어, 도박, 중독성 있는 게임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이는 결국 사상과 이념의 자율성이 스스로 실종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상류와 중간 그리고 민중은 편의를 위해 나눈 계급의 분류이지 정확한 경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현대에 들어서 이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로를 중화시키고 있다. 민중이 상류의 문화를 탐하기도 하고 상류도 민중 문화에 빠지기도 한다. 중간계급은 끊임없이 민중과 상류를 오가며 엘리베이터 현상을 겪고 있다.

 



4. 너에겐 취향 나에게는 폭력
-상징 자본+상징 권력 = 상징 폭력 (violence symbolique)

(위 그림은 쉬운 예를 들기 위한 허구입니다. 실제 명칭의 관계자분들에게 사과드립니다. 이 또한 상징으로 사람을 재단하는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상징 자본은 카리스마와 같다. 그 사람이 직접 자신의 계급을 표현하거나 말하지 않지만 그 사람의 행동양식 가지고 있는 소지품, 패션 등으로 은근하게 나타낸다. 위에 그림은 허구의 인물이지만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현대판 계급이다. 좋은 학위와 풍부한 유산들 그리고 그 뒤를 든든히 받쳐주는 관계들이 하나의 자본을 형성하는데 이를 바로 상징 자본이라 부른다. 이 자본은 굳이 나타내지 않아도 말하기 좋아하는 누군가를 통해 전파된다. 이러한 상징 자본은 자신과 같은 부류의 클럽에 속하기 위한 일종의 출입증 역할을 하고 그 상징으로 인한 권위를 부여받기도 한다. 그 권위를 누군가에게 휘두르거나 혹은 누군가가 스스로 그 권위에 복종하게 되면 상징 폭력이 된다.


상징 폭력은 비판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상대적 이기 때문에 옳고 그름이 없다. 젓가락을 쓸 줄 모르는 외국인에게 강제로 젓가락을 쓰게 하는 것과 도구가 있어야 밥을 먹는 사람한테 손으로 먹으라고 강요하는 것도 상징 폭력이다. 재즈를 싫어하는 사람한테 너는 나의 연인이니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너도 좋아해야 한다고 우기는 것도 상징 폭력이다. 나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취향이라고 해서 동일한 문화적 경험이 없는 상대에게 강제할 경우 폭력이 되는 것이다.


브랜드는 어떻게 상징이 되는가?

브랜드는 곧 외부에 나타나는 상표다. 그 상표 안에는 기업의 이미지, 윤리의식, 대중적 인식 등이 녹아들어 있다. 사람들은 각자에게 어울리는 취향의 브랜드를 소유하는 것으로 물질세계에 자신을 나타낸다. 텔레비전이나 세탁기는 이미 기술들이 완성된 상태이다. 어떤 브랜드의 제품을 사던 결국 예상할 수 있는 성능이 나온다. 초기의 기업은 가전제품의 크기를 키우는데 집중했다. 눈에 띄는 차별화는 바로 몸집을 키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지고 만다. 남들보다 큰 물건을 갖는 건 고급 취향이 아니라 저속한 몸집 불리기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소비자 스스로가 인식한다. 여기서부턴 브랜드와 디자인의 힘이 크게 작용한다. 기본적인 신뢰를 비롯해 해당 브랜드의 가전기기를 사용하는 고객에게 긍정적인 한꺼플의 이미지를 제공해주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https://brunch.co.kr/@soulstory/36

저번 글에도 남겼듯이 최근 브랜드들은 튼튼한 것을 싸고 많이 파는 전략에서 소비를 적당히 억제하며 취향을 고급화시키는 전략을 펴나가고 있다. 소수의 고객만으로도 비즈니스가 되려면 가격과 품질을 동시에 높여야 하고 대중 고객보다 충성고객에 더 집중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는 브랜드보다 중요한 건 모든 사람이 그 브랜드를 인식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 브랜드를 소비하는 사람들을 특별하게 만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브랜드를 명품이라고도 부른다.


최근 우리는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용어를 많이 쓰는데 "삶의 방식"이라는 표현보다 더 나은 아우라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라이프 스타일에 북유럽식 이케아식 무인양품식을 붙이면 브랜드는 곧 취향이 된다. 우리가 이런 취향 동경의 문화를 쫒는 것은 각 계급이 상위계급의 취향을 동경하기 때문이다. 귀속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동질성으로 인한 안정감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에 삶의 한 부분을 고급스럽게 꾸미곤 한다.

브랜드를 통해 자신의 취향을 표현하는 건 가장 편리한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브랜드에 서열을 매겨 자신의 브랜드 취향을 가늠하곤 한다. 브랜드를 소비한다는 것은 곧 그 상품을 소유하는 만족감을 얻는 것인데 사실 이 만족감이 돈을 지불하면 언제든 즉각 얻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지 다른 데에서(여행, 대화, 운동) 오는 만족감보다 질이 떨어지고 만족감의 유지기간도 짧다. 그 이유는 상품의 구매에 매력적인 스토리가 없기 때문이다. 내 취향에 따라 그냥 사고 싶어서 산 물건이므로 구매의 경험이 드라마틱한 경우가 없다. 이런 이유로 최근 기업들이 자신의 상품에 혹은 회사 브랜드에 스토리를 입히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단순히 제품의 구매자를 만들겠다는 목표가 아니라 제품의 취향을 노래해줄 팬을 만들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별도의 브런치 칼럼에서 다룰 예정이다.)


인스타그램은 어떻게 폭력이 되는가?

인스타그램이 폭력이라고?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는 게 당연하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상징 폭력은 은근하고 지배적 이기 때문에 폭력을 당행도 그걸 깨닫기 어려운 특징이 있다. 플랫폼의 권위, 친구의 권위, 유명인의 권위에 자연스럽게 수긍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인스타그램은 페이스북을 비롯한 모든 SNS를 뜻한다. 소셜 플랫폼들은 기본적으로 인맥을 기반으로 연결되어있다. 그러므로 좋든 싫든 나와 관계있는 사람들과 연결되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친구라서 연결되었지만 어떤 사람은 일적으로 연결되었고 또 어떤 사람은 정보 교환 차원에서 연결되어있다. 그러므로 나와 다른 취향의 지인들이 올리는 포스팅 속에서 그들의 주장과 사상 그리고 일상에 노출되어야 한다.

페이스북은 사진보다 글이 많아서 집중하지 않고 스킵할 수 있지만 인스타그램은 기본적으로 이미지로 소통하는 곳이다. 게시물에 이미지가 없으면 포스팅이 되지 않는 구조이면서 자신의 팬시한 일상을 나누는 플랫폼이므로 온갖 상징적 이미지로 난무한다.

이렇게 이해해보자. 자신이 지난 일주일 동안 겪었던 가장 팬시한 경험, 고급진 분위기, 특별한 느낌을 선별하고 편집하여 작품을 올린다. 그곳은 항상 행복이 넘치고 섹시한 편집샵의 느낌을 뿜어낸다. 추천 이미지를 둘러보니 자신이 그동안 검색했던 혹은 좋아요 했던 키워들 중에 가장 인기가 많고 선정적인 이미지를 추천하여 보여준다. 내가 일상에서 영위할 수 없는 삶을 살짝 훔쳐보는 건 동경과 부러움을 일으키지만 계속되는 이상적 취향의 노출은 삶과 일상의 괴리로 인한(팩폭) 과도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이미지에 나타난 저들의 삶 자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이 안되는데 우리는 우리의 삶이 너무나도 비참하다며 한탄하는 것과 같다. 한번 되돌아보자 지금 자신의 SNS 계정에 올라가 있는 삶이 진정 나의 삶인가 내가 보여주고 싶은 편집된 삶인가?


선물은 어떻게 폭력이 되는가?

선물을 나눈다는 건 설레고 기쁜 일이다. 누군가 나를 생각해 자신의 자본을 줄여 어떤 가치를 전달하는 예쁜 마음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관계에 있다. 주는 사람의 경제적 자본이 한참 상위에 있어 가난한 사람에게 3,000만 원짜리 명품 시계를 선뜻 선물했다고 가정해 보자. 주는 사람에게는 부담이 되지 않지만 받는 사람에게 그 시계는 1년 치 연봉일 수 있다. 여기서 받는 사람의 갈등이 시작된다. 선물을 받은 자는 답례에 관한 부채의식을 갖게 되며, 이 부채 의식은 일종의 지배나 종속, 감사 혹은 자발적 순종의 마음으로 표현된다. 이로 인해 선물을 준사람은 상징 권력을 획득하게 된다. 이해를 돕기 위해 큰 금액으로 예를 들었지만 모든 선물은 예외가 아니다.


김영란법에 대한 왈가왈부가 많았다. 3만 원짜리 밥 한번 먹을 수 있는 것 아니냐 조금 고급스러운 초콜릿 하나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 말할 수 있지만 받는 순간 부채의식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음이다. 물론 몇만 원 선이야 흔들리지 않고 잘 관리할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번 스며들면 결국 젖어드는 건 시간문제다. 나라서 받는 선물인지 나의 위치 때문에 받는 선물인지 이 선물이 내게 부채가 될지 또는 서로 기분 좋게 웃을 수 있는 수준인지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선물을 주는 사람 또한 이 선물이 앞으로 받는 사람에게 어떤 부담과 책임을 지어줄 것인지 신경 써야 하고 상호 간의 관계가 수평에서 상하로 위치 변동이 있을 수준인지 잘 고려해야 한다. 선물도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다.


은근하게 스며드는 상징과 권위

상징 폭력의 특징은 은근하다는 점이다. 위에 언급한 선물처럼 구체적인 대가나 권력을 요청하지 않고 자발적인 따름과 마음의 부채가 동반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징 폭력(상징 권력)은 앞으로 소개할 "장"이라는 곳에서 치열한 투쟁이 벌어진다. 결국 사회는 물질로 이루어진 물리적 공간이라기 보단 상징에 대한 해석의 공간이다. 사회에 나타나는 다양한 사기꾼들이 자본 없이도 큰 도둑질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상징을 교묘하게 이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징 자본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자본으로 비싼 브랜드를 칭칭 감거나 권위 있는 단체에 들어가 희소성 있는 타이틀을 차지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된다. 아비투스의 취향과 그 취향을 인정해줄 수 있는 장(소속)이 만나 결국 상징 자본을 만들어내는 이치이다.




5. 취향에 권위를 부여하는 공인인증단체 "장"

- 장이론과 계급 분석 (champ, field) : 권력과 차별을 위해 필요한 그들만의 영역

장은 재미있는 표현인데 보통 영역, 집단, 소속으로 해석할 수 있다. (편의를 위해 집단이라 칭하겠다.) 우리는 사회 안에서 무수히 많은 집단 속에 속하게 된다. 나의 가족에게 속하고 거주하는 지역에 속하고 학교에 속하고 회사에 속하고 활동하는 동아리에 속하며 앞으로 맺어나갈 무수히 많은 관계들의 모임에 속하게 된다.


하나의 집단이 형성되면 초기 멤버가 구성되고 그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명성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아붓는다. 그렇게 형성된 집단의 상징 자본은 점차 사회적 영향력을 갖게 된다. 영향력이 커지면 이후부터 집단에 가입하는 사람들의 적격여부를 판단하게 되고 전통과 규율과 책임을 만들어 지키도록 한다. 이렇게 생겨난 무수히 많은 집단들이 모여서 하나의 카테고리를 형성하고 카테고리들이 모여 사회를 형성하는 것이다. 취향은 중매쟁이처럼 어울리는 색깔을 가지고 있는 천생연분인 사람들을 맺어준다. 이러한 친화성은 사회적으로 불편할 수 있는 관계들은 억누르고 잘 어울리는 관계를 조성하며 사회적 일치를 유도하는 기능이 있다. 군대라는 집단(장)에서 관계로 인한 인적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이유는 내 취향의 사람들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선 보통 사회적 동물로서 스스로 길들여지던가 군대라는 장을 부정하며 극단 사고를 일으키는 선택을 한다.

 

집단(장)의 대표적인 예로는 동일한 학문을 전공한 박사들의 학회, 각 산업을 대표하는 협회, 체육연맹, 비평가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로터리클럽 등과 같은 단체가 대표적이고 가볍게는 학교 동아리, 직장 내 소속 팀, 다니고 있는 영어학원 등도 하나의 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인정해주며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밀고 당겨주는 공동체의 면모를 보여준다. 개인은 힘이 약하지만 집단으로서의 목소리는 공적인 힘이 실리게 되고 집단의 대외적 신뢰가 높을수록 강한 여론을 발생시킨다.


과거의 집단은 오랜 전통과 튼튼한 집단의 경제 자본을 위시하여 권력을 키우는 경우가 많았다면 현대에 이르러 sns를 통해 사상과 취향, 취미 등으로 무수히 많은 집단들이 생겨나가고 있다. 이들의 목적은 비교적 단순하고 단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보수적인 집단들보다 민첩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특성이 있는 반면 원하는 것을 쟁취하고 빠르게 해산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장의 긍정적 기능은 작은 개인들이 모여 큰 사회적 공동체로서 역할을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반대로 부정적 기능은 낡고 오래된 곳일수록 부정부패와 내부 갈등이 심각하고 순기능을 잃어 사회적 차별을 생산하는 기관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앞으로 수많은 장들이 몰락할 것이고 또 탄생해야 할 것이다.


아래 두 영화는 장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클립이다.


영화 바람 中

- 씬 1: 여자 친구 문제로 상대 학교의 일진들과 시비가 붙는다.

- 씬 2: 자기 학교의 일진 선배에게 알려 도움을 청한다.

- 씬 3: 개인의 싸움은 학교라는 장으로 들어와 학교대 학교가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nw6OmuiHUrM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씬 1: 전통적인 장의 면모를 보여주는 웰튼 남자 사립학교

-씬 2: 웰튼을 졸업했지만 4차원 열린 교육으로 학생들의 지지를 받는 교사 키팅 

-씬 3: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동아리를 동경해 다시 부활시키는 학생들

-씬 4: 웰튼이라는 전통의 장안에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새로운 장을 만들어 자유를 만난 학생들

https://www.youtube.com/watch?v=zCxKc3M8BU8

계급은 유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유사한 조건에 위치하고 있으며, 유사한 유형의 상황 속에 종속되어있어서, 유사한 성향과 이해 관심을 가지고, 유사한 실천을 생산하며, 유사한 자세를 취하는 온갖 기회를 갖는 행위자들의 집합이다. 피에르 부르디외 (커뮤니케이션북스, 김동일)



6. 교육이 불평등과 몰취향을 강화한다.

지금까지 아비투스와 상징 자본 그리고 장에 대해 알아보며 취향이 사회에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알아보았다. 이 키워드들의 공통점은 바로 학력 자본 즉 교육과 민감하게 엮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교육을 어떻게 받았는지가 매우 중요하며 이에 따라 한 사람의 사회적 위치가 어떻게 결정되는지 우리는 알 수 있다. 교육은 마치 누구에게나 평등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보이지 않는 단단한 벽이 가로막고 있다.


부르디외가 유독 프랑스 사회에서 교육의 평등화를 부르짖은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와 같다. 교육이 마치 평등 산물인 것처럼 홍보되어 왔지만 사실상 계급의 차이를 키워내는 역할을 하고 있던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는 기득권이 그 지위를 공개적으로 자식에게 물려주는걸 어렵게 한다. 그러자 상류층은 더욱 교묘하게 고등교육기관을 이용해 계급의 장을 만들어 낸다. 비싼 수업료 혹은 그에 준하는 자본이 투여되어야 키울 수 있는 재능 등을 통해 계급의 꼭대기에 있는 교육기관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들은 이 기관이 자본으로 들어오는 곳이 아니라 공부에 대한 개인 역량으로 들어오는 곳이라 소개하지만 그곳엔 민중의 아이들이 없다. 학교와 학급에 석차를 두어 교육적 위계질서를 만들고 사회적 위계질서를 생산하는 데 성공한다.


우리는 흔히 공부머리를 개인의 노력 혹은 선척적 결함으로 치부하기 때문에 대중은 이에 동조한다. 부모가 능력이 부족해 학원 하나를 덜 보냈다고 자책하기도 하고 학업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을 선천적으로 재능이 없는 불쌍한 아이로 치부하는 것이다. 부르디외는 잘 정비된 문화적 계급 환경에 의한 차이가 개인의 의지에 따른 성실성의 차이를 압도한다는 주장을 한다. 현대에서 노동자들이 뼈 빠지게 일해서 자식의 교육에 투자해서 보낼 수 있는 건 비싼 학원 한 두 개가 전부다. 교육을 모두 학교와 학원에 맡기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은 학원 하나로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릴 적 여유로운 가정환경부터 책 읽는 습관, 문제풀이에 대한 즐거움, 다양한 경험에 대한 통찰 그다음에 추가적인 학습이 선행되는 것이다. 즉 부모 스스로가 교육자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차이는 사회적 여유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노동자의 가정은 그런 여유를 유산으로 물려주지 못했고 그들조차도 물려받지 못했다.


학교는 이미 사회적 기능에 충실하게 학생들을 표준화를 시키고 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상급으로 올려 투자하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직업적 한계를 예단하고 진학할 수 있는 학교를 끼워 맞춘다. 결국 현대의 학교는 심지어 대학교 조차도 말 잘 듣는 똑똑한 노동자 생산소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듣는 처지에 이르게 된다. 질문이 없는 학교, 칠판을 따라 필기하는 소리만 울리는 학교, 삶에 철학이 없는 학교를 부르디외는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혁은 학교 현장부터가 아니라 가정교육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학원 한 두 개 더 보내서 자식을 귀족 만들 생각에 들뜨지 말고 부모 스스로가 취향 있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수많은 길 위에 서있는 그와 그녀를 존중해줘야 한다.




7. 스스로 삶의 대가로 살아가는 법

만약 당신에게 어떤 일이 즐겁다는 것은 기쁘다는 것이고, 쾌락을 가져다주는 일이기 때문에 더 자주 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쾌락과 중독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사용할뿐더러 즐거움마저 스스로에게 낯설기만 하다. 한정된 삶을 사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즐겁고 유쾌한 일을 지향하며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방해되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가치다. 그 소중한 가치는 바로 개인의 취향이다. 부르디외는 우리가 스스로 삶의 대가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삶의 대가는 스스로의 취향을 명확히 인지하고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사람을 말한다. 취향은 서로 부딪치기도 하고 융화되기도 하며 또 분리되기도 하는데 이 모든 상황을 아름답게 연주하는 사람이 바로 삶의 대가이다.


1. 자신의 취향과 타인의 취향이 잘 어우러지도록 삶을 연주할 것

2. 스스로 취향을 추구하는 데 있어 삶의 적정한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

3. 세속적 가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행과 도전 그리고 배움을 일삼을 것

4. 타인의 가치를 짓밟지 말아야 하고 또한 자신의 가치를 소중히 할 것

5. 질문할 것! 옳은 일인지 정당한 일인지 정의로운 일인지 질문할 것

6. 가공된 음식 가공된 사진 가공된 뉴스에 사로잡히지 말 것

7. 큰 집단의 권위에 기대지 말고 작은 집단의 큰 목표를 존중할 것

8. TV를 끄고 취향을 킬 것


앞으로도 문화자본 즉 학력 자본이 계속해서 계급을 생산하게 될 것인가? 이 물음에 난 답할 수가 없다. 그 이상의 세계를 배우거나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견고한 계급의 늪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것만은 피부로 느끼고 있다. 학업이나 자본으로 성취하는 행복이 아닌 스스로의 삶을 찾아가는 순례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자유를 만끽하는 그녀도 길거리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그 소년도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스스로의 목표를 위해 다들 괴롭다고 아우성치는 스타트업을 창업한 사람이 있고 그 작고 희망찬 스타트업에서 부품이 아닌 주체적인 기획자로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결국 사회적으로도 인정을 받고 또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한 시대를 증명하고 투쟁하며 살아간 부르디외처럼 삶을 철학적으로 살아가길 바란다. 구별 짓기를 통해 차이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려 하기보다는 스스로를 삶의 대가로 인식하고 가장 나다운 삶을 살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완벽한 삶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삶이 가장 완벽한 삶이다. 취향이라는 이름의 도끼로 꽁꽁 얼은 사회적 관념을 깨트리자.


이 글의 끝은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이 인용한 휘트먼의 시로 마무리 짓고자 한다.

휘트먼의 시를 인용하자면
오 나여! 오 삶이여!
수없이 반복되는 질문들
신뢰할 수 없는 것들이 꼬리를 물고
어리석은 이들로 가득 찬 도시들
이런 곳에 좋은 게 있기는 한 걸까?
오 나여! 오 삶이여!
답은 한 가지!
네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
삶이 존재하고
화려한 연극은 계속되고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너는 과연 어떤 시가 될까?


참고문헌 (타이틀 / 저자 / 출판사)

-구별 짓기 (상) / 피에르 부르디외 / 새물결

-구별 짓기 (하) / 피에르 부르디외 / 새물결

-취향의 정치학 / 홍성민 / 현암사

-취미와 예술 / 김정락 / 방통대

-자본주의의 아비투스 / 피에르 부르디외 / 동문선

-학벌은 계급, 체면은 자본 / 강준만 / 개마고원

-피에르 부르디외와 한국사회 / 홍성민 / 살림

-피에르 부르디외 / 김동일 / 커뮤니케이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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