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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금 Oct 19. 2023

마지막 목표를 향하여

정신없이 치렀던 프랑스에서의 DELF 시험




  프랑스에 있던 시절에는 성격이 급했다. 뭐든지 빨리빨리 하지 않으면, 빨리빨리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조급증에 시달려 스스로를 힘들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외국이다 보니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당연했는데 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목표지향적인 성향에 조급증은 치명적이었다.


  나는 최대한 빨리 프랑스 생활에 적응해 목표였던 공인 프랑스어 시험인 DELF B2를 따고 싶었다. 어학연수 2개월 반이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란 미친 생각에 무리해서 시험 준비반에 들어갔다. 당연하게도 나는 겉돌았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들어간 시험준비반은 혹독하고 긴장된 분위기였고, 내 모의시험 결과는 처참했다.


  담당 선생님은 엉망인 내 답안지를 채점하다 화가 났다고 정색하며 얘기했다. 듣기 영역은 최소 점수 5점도 안 되는 1.5점, 2점. 부끄러웠다. 도망가고 싶었다. 살인더위와 물갈이 때문에 몸 상태도 좋지 못한 데다 어학원 수업도 어려웠고 욕심으로 들어간 시험준비반은 괴로웠다. 내성적인 성향 때문에 말하는 것에 두려움도 있어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나는 최악이었다.








  그러다 프랑스에 온 지 100일이 되어가는 시기에 급성 장염으로 죽다 살아난 나는 180˚ 돌변했다. 먼저 질문하고 모르면 물어보며 적극적인 성향으로 바뀌었다.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었기 때문이다. 100일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전수업의 레벨은 2단계나 하락했다. 어학원에서는 오전수업반 레벨을 시험 난이도의 상중하로 나누었다. 나는 B1반에서 처음 시작해 B1+상급반까지 빠르게 올라갔다. 모두들 빠르게 치고 올라가는 나를 부러워했다. 실상은 실력에 비해 수업이 너무 어려워 따라가지 못해 매일이 울고 싶은 나날이었다. 아프고 난 뒤 어학원에 가니 무단결석한 것으로 인해 B1+하급반으로 추락했다. 나를 부러워했던 애들이 나보다 더 높은 반으로 갔고 자존심이 상했다.


  그렇지만 오히려 좋았다.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가 되는 편이 나았다. 2단계나 낮아진 반에서는 내가 잘하는 편이라 거기서 자신감을 얻었다. 2-3주 정도 지나자 이제 다시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음달 중순에 있을 시험을 보기로 결정하고 다시 시험준비반에 들어갔다. 다시 돌아온 시험준비반. 달라진 게 있다면 바로 적극적으로 변한 나 자신뿐이었다. 친한 한국인들도 많아서 수업이 편하고 학습 능률도 좋았다. 서로 정보도 공유하고 함께 공부하며 꼭 합격하자고 투지를 다졌다.


  또다시 듣기 영역에 발목을 잡혔지만 좌절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읽기, 쓰기, 말하기 영역에서도 준수한 성적을 낸다면 합격은 충분히 가능했다. 읽는 속도가 느리기에 읽기 영역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시험 부담감에 소화도 잘 못 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잤다. 만약 잠들면 시험 보는 꿈에 시달렸다. 합격이 간절했고, 정말 열심히 했다. 심지어 시험 보는 날까지 매일 무릎을 꿇고 합격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었다.



결연한 DELF B2 첫 도전



  어느새 이틀에 걸쳐 3시간 20분 동안 치러야 하는 시험이 다가왔다. 내가 그렇게 통과하고 싶었던 시험. 어학연수의 목표이자 내가 프랑스에 와있는 이유. 그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시험 직전 모의고사에서 가장 취약한 듣기 영역이 5.5점이 나왔다. 아차, 잘못하면 떨어지겠구나 싶었다.


  그때 나는 B1+상급반까지 올라온 상태였다. 한 친구가 전해준 얘기가 생각났다. 본인이 어학원 선생님께 들은 말인데 B2 합격률이 낮은 이유는 B1+상급반 학생들이 어설픈 자신감으로 B2 시험에 도전했다가 실력이 딸려서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약간의 낙담이 들었지만 내겐 간절함과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계속해야만 했다.


  말하기 시험을 첫날 오후에 보게 되었다. 긴장감에 공부는 하나도 되지 않았고, 오전 수업에 처음으로 지각했다. 머리에는 아무것도 안 들어오고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말하기 시험을 위해 시험 대기실 앞으로 갔다.


  내 이름이 호명되고 제비 뽑기로 말하기 주제를 하나 뽑아 진행위원에게 건네주었다. 진행위원은 그 주제에 관한 짧은 텍스트가 있는 종이를 내게 주었다. 이제 30분의 준비시간 동안, 이 짧은 글을 읽고 요약한 후 근거 몇 가지를 추려 내 의견을 정해야 했다. 준비하다 보니 눈 깜빡할 새 시험시간이 되었다. 나는 본격적인 말하기 시험을 위해 비장한 마음으로 시험장에 올라갔다.


  시험관인 레티시아는 정말 친절했다. 잔뜩 긴장한 날 풀어주려 따스한 얼굴로 경청하고 많은 리액션을 해주었다. 나는 짧게 자기소개를 한 뒤 준비한 모든 것을 천천히 이야기했다. 이제 내 의견에 반박하는 시험관을 설득해야 했다. 시험관이 내 의견의 허점을 짚으며 반박 질문을 했고, 나는 이를 최대한 보완하기 위해 노력했다. 15분의 말하기 시험시간은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너덜너덜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지만 퍼져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내일 있을 필기시험을 준비해야 했다. 쉬는 시간 없이 2시간 30분 동안 계속되는 시험을 위해서 공부는 물론이거니와 컨디션 조절이 필수였다. 잘 먹고 잘 자야 했다.


  다음날 이탈리아 청소년 무리와 함께 보게 된 필기시험. 2인용 책상에 앉아 시험을 보게 되었다. 내 옆에는 이탈리아 고등학생이 앉았는데 긴장을 했는지 달달 떨면서 시험을 봤다. 그 덕에 2시간 반 동안 책상이 달달 떨렸다. 굉장히 신경 쓰였지만 왼팔로 힘을 주어 떨리는 책상을 고정해 시험을 끝까지 치러냈다.


  시험장을 나올 때 같이 시험을 치른 한국인 친구들과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멘탈이 터진 상태로 웃으며 로비로 나와 2시간 내내 로비에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시험이 끝나고 긴장감과 중압감이 사라지니 즐거웠다. 그런데 양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왼팔은 책상 고정하느라 힘을 쓰고 오른팔은 답을 써내려 가느라 힘을 써서 과부하가 온 것이다. 다음날까지 근육통으로 꽤나 고생했다.


  시험결과는 일주일 뒤에 발표였지만 그래도 드디어 해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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