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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금 Oct 20. 2023

지중해를 따라 가을 바캉스




  프랑스에 왔던 이유이자 어학연수의 목표인, DELF(공인 프랑스어 인증 시험) 시험이 끝났다. 이틀 동안 3시간 20분간 진행되는 DELF시험. 거대한 긴장감과 중압감 아래 치른 시험이었다.


  시험이 끝나고 이틀 뒤, 긴장이 확 풀려 흐물흐물한 상태로 7박 8일의 프랑스 남부여행을 떠났다. 함께 시험을 준비하던 한국인 언니가 제안해 가게 된 여행이었다. 어학연수 당시 돈이 궁한 처지라 여행은 꿈도 못 꾸고 살았지만 마침 아빠가 한 번쯤 여행은 해보라고 70만원을 보내주셨다. ‘옳다구나!’하며 같이 가겠다 했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중간중간 언니와 만나 여행일정을 짰고, 시험이 끝나자 바로 짐을 쌌다. 10월 중순이 훌쩍 넘은 늦가을에 바캉스를 가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지중해, 올리브 나무, 라벤더, 햇살이 내리쬐는 프랑스 남부 휴양지. 아무것도 몰랐던 채로 여행을 준비하며 알게 되었다. 엄청난 압박감을 주던 시험이 끝나 후련한 마음으로 출발했다. 부푼 기대감에 마냥 즐겁기만 했다. 내가 살고 있던 중부지방 VICHY에서 출발해, Lyon(리옹)-Nice(니스)-Antibes(앙티브)-Grasse(그라스)-Marseille(마르세유)를 지중해를 따라 여행하고 VICHY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긴 팔, 긴 바지 입던 10월 중하순이었지만 Nice니스에 도착하니 반팔 반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드넓게 펼쳐진 지중해. 감탄이 절로 나왔다. 10월 하순인데 햇볕과 바람, 기온은 모두 초가을의 것이었다. 심지어 수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유럽의 역사가 뒤엉켜 있는 지중해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따로 옷을 챙겨 온 게 없어 지중해의 바닷물에 발만 담가보았다. 동글동글한 돌멩이들 사이로 사라지는 물결, 많은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들이 이 바다에서 태어나고 죽었겠지. 부는 바람을 따라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온 역사도, 나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남부 특유의 노란 건물들이 좋았다. 내가 상상했던 유럽의 모습이 여기 있었다. 어딜 가나 사람이 많고 북적였다. 요새로 사용되었던 성에 올라 높은 전망대에서 니스 해변을 바라보았다. 초승달처럼 지중해를 감싸고 있는 해변을 보니 샤갈, 마티스, 피카소 등 많은 유명 예술가들이 왜 니스에 머물렀는지 깨달았다. 잘 모르는 나조차도 여태 그 아름다움이 기억난다. 어떻게 이 예술 같은 도시를 그냥 떠날 수 있을까? 프랑스 화가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에 동감하며 그가 니스에 대해 남긴 말로 프랑스 남부를 기억하고 싶다.


Tout était faux, absurde, épatant, délicieux.
모든 것이 거짓말 같고, 어이가 없고, 숨 막히게 매혹적이다.




  Nice니스에 머물며 근처의 소도시 Antibes앙티브와 Grasse그라스를 여행한 후, 마지막 도시인 Marseille마르세유에 도착했다. 여행 7일차, 그곳에서 세계 3대 수프 중 하나인 Bouillabaisse부야베스를 먹고 있었다. 갑자기 식사도중에 메일 알람이 울렸다. DELF 시험 결과였다!


  여행 중이라 잊고 있었는데 어느새 결과가 나온 것이었다. 자꾸 사그라드는 통신막대에 초조해하고 답답해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결과를 확인했다. 합격이었다! 그것도 같이 본 사람들 중에 제일 높은 점수였다! 밥 먹다 말고 일어난 일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너무 기뻤다. 프랑스에 온 지 4개월 반 만에 달성한 목표, 2년간 언어공부를 하지 않았던 무지의 상태에서 달성한 엄청난 성과였다.

 

  어둑해진 밤, 관람차를 타고 마르세유의 야경을 감상했다. 들뜨고 신나는 마음을 안고 숙소로 돌아와 노란 불빛으로 빛나는 도시와 저 멀리 차분히 보이는 대성당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도시 야경과 함께 여행의 마지막 밤이 저물고 있었다.





  여행 마지막 날, 아침에 일어나 짐을 정리했다. 같이 여행한 한국인 언니는 남프랑스의 한 도시, Montpellier몽펠리에로 이사할 겸 나와 함께 여행을 한 것이기에 숙소 앞에서 길지 않은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도착할 때와 다르게 홀로 Lyon리옹행 기차에 올랐다.


신기하게도 북쪽으로 갈수록 추워졌고, Lyon리옹에 도착했을 때는 꽤 강한 추위에 떨었다. 너무 달라진 기온에 7박 8일의 남부 여행이 마치 신기루 같았다. 리옹에서 다시 VICHY행 기차에 몸을 실으니 비가 내렸다.

 







  VICHY의 꼭대기층 작은 하녀방 스튜디오로 돌아와 짐을 정리했다. 이젠 이 도시가 고향 같고 내 집 같다. 거진 일주일 동안 아무도 없었을 집엔 냉기가 감돌았다. 거짓말처럼 VICHY에 다시 혼자 남겨졌다. 출출하고 심심하게 되어버렸다. 거진 5개월을 지내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었지만 거짓말처럼 모두 떠나가버렸다. 쓸쓸함이 감도는 늦가을, 난 너무 오래 머무른 걸까.


  다음날, 서머타임이 끝나고 L’heure d’hiver(겨울의 시간)이 시작된다. 이제 한국과의 시차는 1시간 더 늘어난 8시간. 새벽 3시에 시간이 바뀌는 걸 보고 자려했으나 여독 때문일까 그냥 잠들어 버렸다.


  또 다음날인 10월 30일, 첫눈이 내렸다. 그것도 세상을 덮을 정도로 많이. 붉은 단풍이 든 나무에 내린 눈, 상상하지 못했던 조합과 10월에 첫눈이 내린 것에 대한 놀라움도 잠시. 여름도 가을도 끝난 11월이 코앞이다. 이제 떠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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