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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금 Oct 20. 2023

진짜 돌아와 버렸네

숨 가빴던 귀국기




  추워진 가을, 11월. VICHY에 도착한 지 6개월 차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흐른 걸까? 다시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한국에서 프랑스로 떠날 때 준비를 하던 것과는 달리 공허하다. 굉장히 한가하고 마음만 바쁘다.


  친했던 사람들도 거진 다 떠나고 자격증에도 합격해 목표도 달성한 데다 늦은 휴가도 다녀왔다. 3주 뒤면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붕 떠서 공부에도 집중이 안되고 마음은 불안정했다. 너무 외로워서 누구라도 만나고 싶었고, 혼자 있는 시간은 힘들었다.


  게다가 본격적으로 추워지기 시작해서 뭘 하기가 싫었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하녀방 스튜디오에 냉기가 스며들고 있었다. 나는 이불 위에 내려앉은 찬기가 제일 싫었다. 일주일 전에 다녀온 남프랑스의 햇볕과 따뜻함이 그리웠다.



적막하게 외로웠던 늦가을의 VICHY



  귀국 준비를 시작하니 낮시간은 분주해졌다. 은행계좌 해지, 집 보험 해약, 주택보조금 해지, 스튜디오 보증금 돌려받기, 우체국에 짐 부치기 등등. 부피를 많이 차지하는 이불은 버리고, 여름옷이나 무게가 있는 것들을 먼저 한국에 택배로 부쳤다. 편지를 써서 집 보험을 해약하고, 은행에 예약을 해서 계좌를 해지했다. 집주인 아저씨와 약속을 잡아 스튜디오 보증금을 돌려받고, 주택보조금도 해지했다. 다행히 귀국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남아있던 한국인 친구 3명에게 내 물건들과 한국음식들을 나누어 주며 아쉬운 작별인사를 했다. 곧 다시 보자 약속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생사도 모르고 산다. 인연이란게 그렇다.



25kg가 넘는 짐을 먼저 한국으로 부쳤던 건 현명한 선택이었다








  떠나는 날에도 방심할 수 없었다. 어학원에서 마지막 오전 수업을 마치고 스튜디오로 돌아와 32kg의 거대한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섰다. 다시 이 방에 올 일이 있을까? 마지막으로 문을 잠그며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집주인 아저씨와 약속한 대로 열쇠를 우편함에 넣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쌀쌀한 기운에 계절을 체감하며 열차에 올랐다. 아픈 탑승객이 있어 출발이 25분 정도 늦어졌고, 결국 파리에 35분 늦게 도착했다.


6개월 동안 살았던 집 열쇠 / 파리로 갈 열차를 기다렸던 VICHY역 플랫폼


  파리 기차역에 내리고 나니 금요일 저녁 퇴근 인파에 시내 도로는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편하게 공항버스를 타고 가려했지만 그랬다간 비행기를 놓칠 것 같아 공항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탔다. 30kg가 넘는 캐리어를 끌고 수없이 계단을 올라가고 내려가고. 나중에 확인하니 무릎이 죄다 멍들어 있었다. 간신히 체크인 마감 1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했고 부랴부랴 뛰어 탑승권을 발급받아 짐을 부치고 탑승구로 갔다. 급박하게 비행기 문이 닫히기 전에 인천행 비행기에 올랐고, 자리에 앉았다. 8시간 걸린 숨 가빴던 이동, 무사히 탑승한 것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제 하루면 모든 게 바뀐다.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학생에서 백수로, 꿈에서 현실로. 버티고 버텨서 대학원까지 가고 싶었지만 견딜 수 없이 외로웠다. 계속 아픈 것도 싫었고 더 이상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안락하고 따뜻한 집이 그리웠다. 하루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사람이 반겨주고, 따뜻함이 만연하고, 요리하는 소음과 구수한 냄새가 나고, 한국어로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한국. 그 지겨웠던 풍경이 미칠 듯 보고 싶었다. 한시라도 빨리 한국이 보고 싶어 착륙할 때 스크린을 통해 인천공항의 활주로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프랑스로 도망치듯 간 것처럼 한국에도 도망치듯 돌아왔다. 숨 가빴던 이동과 밤 비행에도 잠들 수 없었다. 착륙할 때 눈물이 흘렀다.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심란함과 버티지 못했다는 스스로의 나약함, 후회와 안도가 섞인 눈물이었다. 다시 프랑스에 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안고 내가 태어난 땅을 밟았다. 6개월의 프랑스 생활이 다 허상같이 사라졌다. 석양이 지고 있었다.



“진짜 돌아와 버렸네.”






  떠나기 전 유학원 원장님은 두 달이면 프랑스에 적응할 거라고 했다. 나는 세 달이 걸렸지만 원장님 말대로 두 달까지가 정말 힘들었다. 그렇지만 그땐 그렇게 못 느끼고 그저 내게 꿈같이 주어진 이 기회에 즐겁고 감사하기만 했다. 세탁기가 터져서 온 방 안이 물바다가 되어도, 수압이 약해 매번 일을 볼 때마다 2L 이상의 물을 변기에 부어주어야 해도, 샤워부스에서 물이 새도 난 좋았다. 인생의 황금기를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일로 채우고 싶지 않았다.


  내 인생의 모든 이벤트들이 한꺼번에 일어났던 소싯적 프랑스 소도시 VICHY 생활. 24주 6개월을 꽉 채웠다. 첫 외국인 친구를 사귀고, 북한 대학생들이랑 공연도 해보고, 해외 신문에도 나고, 급성장염에 죽다 살아나고, 툭하면 위장질환에 시달려 고생하고, 폭염 때문에 잠깐 홈스테이도 해보고, 치열하게 공부해 목표한 자격증도 따고, 꿈같았던 남프랑스 여행도 하고. 전부다 과거가 되어버린, 잊을 수 없는 많은 일들이 그곳에서 일어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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