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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2023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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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저냥 ㅏ랑 Jul 23. 2023

'한국(고전)영화'가 과연 말이 되나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운영하는 영화 전문 웹사이트 KMDB에 「말하자면 말이 안 되면서 되는 것」이란 제목의 짧은 에세이를 기고했다. KMDB는 이번에 '젊은' 평자와 연구자들 한국고전영화에 대해 갖고있는 생각을 들어보고자 '나의 한국고전영화'란 기획을 마련했으며, 이 글은 이에 따라 준비되었다. 여기서 나는 '한국고전영화'라는 명명이 어째서 어색하게 느껴지는지 따져보는 데서 시작해 한국영화사가 어떤 도착적 국면에 처해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한국(고전)영화'를 잠정적인 개념으로 만드는지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따져보려 했다. 절대적 부성상이 굳건해서가 아니라 자꾸만 무너지고 사라지기 때문에 생기는 '한국적인' 문제들. <경마장 가는 길>을 본 이후 한국영화에 대한 고민이 끊임없이 머리 속을 맴돌던 차에 타이밍 좋게 청탁을 받아 다행이었단 생각이 든다. 몹시 급박한 일정 속에서 몹시 짧은 분량을 의식한 채 쓰여졌고, 그래서 커다란 주제에 비해 주요 쟁점들을 (파고든다기 보다는) 숨 가쁘게 건드리고 지나간다는 느낌이 강해 다소간의 아쉬움은 남는다. (가령 출판사 사월의책의 편집장이신 박동수 선생께선 "다만 붕괴와 반복이 다소 헐거운 개념이라는 점에서, 한국영화뿐 아니라 한국적인 것의 어떤 것을 넣어도 대체로 성립이 된다는 점에서, 한국영화 특유의 습관의 반복을 덧붙여도 좋을 듯싶다. 좋은 습관이든 나쁜 습관이든 말이다."라고 비판적인 코멘트를 남겨주셨는데, 나 스스로도 개념 활용의 지나친 환유성 때문에 이 글이 다소 헐거워졌다 생각하기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글 안에서도 거론했듯 이 자체는 문학과 음악 그리고 나아가 '한국적인 것'의 존속 방식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런 만큼 이 글의 한계를 쇄신할 실증적이고 구체적인 작업을 나중에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하지만 한국영화사에 접근하는 데 있어 유념해야 할 쟁점들을 어느 정도 정리해 여러분께 제시했다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아래는 글의 링크이다.





"어쩔 수 없이 고다르를 베끼면서 얘기를 시작해야겠다. 우리들 사이에 '한국고전영화'란 대체 무엇을 지칭하는 걸까? 『한+ 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문화예술에서 논하는 고전이란 "시대를 대표하는 것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모범이 될 만한 가치를 지닌 사상집이나 문예 작품"을 일컫는단다. "모범"이란 표현에 딴지를 걸고 싶어지긴 하나, '세계고전문학'이나 '클래식 음악' 같은 말이 통용되는 바를 떠올려보면 그래도 말뜻에 납득이 가긴 한다. 그런데 '한국고전영화'라? 나로선 이 말을 기어이 꺼내려다가도 결국엔 어색해서 주춤하게 된다. 과연 한국영화에 있어 고전이란 무얼 지칭할 수 있을까. 아니, 과연 무엇이 고전일 수 있을까. 당신의 생각이 정말 궁금한데, 왜냐하면 나는 이 물음 모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1998년 필름 발굴 작업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국가가 일제강점기 때의 영화를 단 한 편도 소유하지 못했음을 알고 있고, 1970년 이후 외국영화 수입쿼터제를 충족하기 위해 수많은 한국영화가 제작되기'만' 했음을 알고 있으며, 제작이고 비평이고 무관하게 1980년대의 '신세대'들이 총체적인 고립무원의 환경에서 활동을 겨우겨우 이어갔음을 알고 있고, 같은 1980년에 공개되었음에도 (당시 국산영화 최대 흥행작이었던) 〈미워도 다시 한번 '80〉 대신 〈전원일기〉를 '옛날'의 지표로 흔히 떠올리고 있다. 역사의 연속이나 단절을 논하기도 전에 이미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받지 못해 독자적인 문화로 선 적이 없고, 그러니 (우스꽝스럽게도, 선후배의 엄격한 계열은 있어도) 스타일과 방법론에 있어 표준이나 관습으로 삼을 역사적 대상이 내부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영화에 고전기는 역시 없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옛날 한국영화를 새로운 고전으로 만드는 것은 결국엔 (결코 많지는 않은) 국내 시네필들의 몫일 터이다. 한데 그들이 영화 제작 환경에 편입되는 것도, 옛날 한국영화를 끈질기게 보러 다니는 것도, 아예 이런저런 극장을 다니며 영화 관람을 지속하는 것도 요원한 게 요즈음의 상황이지 않던가? 한국영화를 이루는 행위자들은 갈수록 서로 간의 마주침과 뒤섞임 없이 분열되기만 하고 있다. 이 행위자들에게 책임을 온전히 돌리려는 것도, 행위자들이 서로 반드시 마주치고 뒤섞여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지만, 이런 상황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게다가 대다수의 국내 시네필들은 (어느 시대의 작품이건 간에) 한국영화에 별다른 관심을 갖고 있지도 않다. (2010년대 전후로 한국영화사 연구의 헤게모니가 국문학과로 옮겨간 것은 그 결과이자 원인일 테다) 후기 자본주의 하에서 '국제적인 것'이 대도시와 대도시 간의 연결로서 블록으로만 환원되는 것과 유사하게, 국내 시네필들은 한국영화와 거의 단절된 채 '국제적인 것'에 스스로의 위치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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